[시 해설] 문정영의 "붉은 콘돔"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17 ]
붉은 콘돔
문정영
지구를 살리는 7가지 불가사의한 물건들 중에 콘돔이 있다
매년 늘어나는 8,300만 명의 지구 인구, 전 세계적으로 하루 1억 쌍이
사랑을 하고, 그중 100만 명의 여성이 임신하고, 반은 원하지 않는 아이다
바다가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등이 가벼워진 것들
가벼워지고 싶어 가벼워진 등은 없다
그녀를 업고 그녀가 나를 받쳐주었을 때
얼마나 따뜻한 관계였던가
갑각류의 등껍질이 허물어지듯 얇아진 것도
우리의 등으로 서로를 짊어질 수 없기 때문
바다거북은 바다가 뜨거워지면 암컷 새끼를 더 많이 부화한다
질주하는 붉은 캥거루의 두 발처럼 생긴 콘돔을 쓰자
태평양 작은 섬나라의 인사말 ‘마우리’가 물에 잠기기 전에
키리바시에 가자
지구가 부양할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ㅡ『술의 둠스데이』(도서출판 달을 쏘다, 2024)에서

[해설]
지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시인
이 시는 충격적인 정보 전달에서 시작한다. 우리나라는 인구가 줄고 있어 앞날이 걱정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는데 시인의 관점은 거시적이다. 지구환경을 인간이 오염시키고 있으므로 이대로 가면 감당하기가 어려울 거라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시의 전반부는 <춘향전>의 첫날 밤 풍경을 연상시킨다. 남자가 어화둥둥 여성을 희롱하고 한 몸이 되어 즐거워한다. 그리하여 하루에 100만 명의 여성이 임신하고 매년 8,300만 명씩 인구가 늘고 있는 이 지구의 미래는?
시인은 태평양상의 작은 섬나라 키리바시를 언급하고 있다. 3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로서 인구가 130만 명인데 엄연히 독립국가다. 이 나라의 이름을 거론한 것은 아마도, 지구온난화의 결과 남극과 북극이 지금의 속도로 녹는다면 물속으로 잠기게 될 대표적인 나라여서일 것이다. 이런 나라가 어찌 키리바시뿐일까. 시인은 마지막 연에 가서 절규한다. “지구가 부양할 수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고. 콘돔 사용을 전세계적으로 권장해야 한다고. 이제 각국은 국익의 관점이 아니라 지구촌의 관점에서 미래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런데 미국은? 러시아는? 중국은? 강대국들이 생태환경, 기후환경의 문제에는 눈을 질끈 감고 있다.
날이 좀 풀리면 곧바로 미세먼지 농도가 급상승한다. 맑은 실개천, 맑은 공기, 맑은 하늘……. 우리가 후손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은 이런 것들이 아닐까. 인류가 21세기를 넘어 22세기를 과연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문정영 시인은 이 땅의 시인 중에서 희유하게 지구촌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문정영 시인]
문정영 시인은 전남 장흥에서 출생해 건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월간문학』으로 등단한 후 시집 『더 이상 숨을 곳이 없다』 『낯선 금요일』 『잉크』 『그만큼』 『꽃들의 이별법』 『두 번째 농담』 『술의 둠스데이』 등을 냈다. 계간 『시산맥』, 계간 『웹진시산맥』을 내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