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이호석의 "고양이 제사"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7 ]
고양이 제사
이호석
우리 집 어딘가에 고양이 식구가 살고 있었대요. 어느 날 고물 더미 쌓인 담벼락에서 며칠째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는데, 아마 어미가 새끼를 물고 담벼락에 오르다 놓친 것 같았대요. 그러자 잠을 설치는 통에 귀찮았던 아들은 이렇게 말했대요. 새끼 고양이가 배고픈 거 같은데 우유 좀 사다 주세요. 그래서 새끼 고양이를 구해 주려 했지만 꼭꼭 숨어 버려 나오지를 않았대요. 할 수 없이 당신이 먹다 남긴 밥과 조기를 밀어 넣어 주셨다는데, 이후로 새끼 고양이 울음소리는 잦아들고 밤마다 어미가 들락달락거렸대요. 그러다가 며칠 후부터는 아주 조용해졌대요.
툇마루에서 새하얀 이불보를 갈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이불 한가운데 놓인 새끼 고양이 털과 발자국
다시 봄이 찾아오니 어머니는
담벼락에 우유 한 접시 놓고
제문처럼 이렇게 읊조리셨대요
양이야 양이야
미안허다 미안허다
내가 죽일라고 한 건 아닌디 내 땜에 죽었다
불쌍한 네 새끼는 내가 죽였나 보다
좋은 곳으로 가라고 기도하마
부디 용서해라 편해져라
—『여름에게 부친 여름』(걷는사람, 2023)에서

[해설]
고양이 새끼를 애도하는 마음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어느 날부터 단지 내 고양이 너덧 마리가 일거에 사라졌다. 이런 경우 미관상 좋지 않다는 민원을 핑계로 경비원이 약을 놓아 죽이는 수가 있다. 다른 경우, 돌림병 때문에 여러 마리가 한꺼번에 황천으로 가기도 한다.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딱 한 번 모습을 보인 뒤에 사라져 버려 단지 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는데 끝끝내 보이지 않는다. 상가나 아파트를 새로 지을 경우, 그 동네의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들이 수난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나 너무나 안타깝다. 이런 경우 개나 고양이에게까지는 신경을 쓸 수 없는 것일까.
이 시에 나오는 아들은 시적 화자인데 시인 자신 같기도 하다. 어미가 새끼를 물고 가다 담벼락 홈 사이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화자의 엄마는 새끼를 안 굶기려고 밥과 조기를 틈새로 밀어 넣어 주었는데 아뿔싸, 실수한 것이었다. 고양이 새끼가 조기를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렸는지, 아니면 굶어서 기력을 잃었는지 며칠 뒤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어미 고양이만 들락날락하지만 결국 새끼 고양이는 영영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어느 날 묘한 일이 일어난다. 어머니가 툇마루에서 새하얀 이불보를 갈다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이불 한가운데 놓인 새끼 고양이 털이 놓여 있고 고양이 발자국도 찍혀 있는 것이다. 어머니가 새끼 고양이에 대해 죄스런 마음을 갖고 있음을 어미 고양이가 짐작이라도 한 듯이, 너무 그렇게 안쓰러워하지 마시라고 표시를 해둔 것일까? 아아, 모성은 모성을 알아본 것일까? 고양이를 키워본 사람은 알겠지만 참으로 영물(靈物)스럽다. 볼 때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강아지와는 달리 영물스럽고 의뭉스럽다.
화자의 엄마는 내가 고양이를 죽였다고 생각하고는 담벼락 앞에 우유를 제수(祭需)인 양 갖다놓고는 제문을 읊조리듯이 몇 마디 한다. 양이야 양이야 미안허다 미안허다 하면서. 그런데 마지막 연의 앞부분은 어미 고양이가 죽은 새끼 고양이한테 하는 말인 것도 같다. 그나저나 고양이 새끼의 죽음과 어미의 슬픔을 애달파하는 화자 어머니의 마음이 내게 감동을 준다.
[이호석 시인 프로필]
2018년 계간 『문예바다』 시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다. 2023년 경기문화재단 우수작품 발간사업에 선정되어 첫 시집 『여름에게 부친 여름』을 출간했으며, 이 시집으로 2024년 김만중문학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자음과모음, 국일미디어, 실천문학사를 거쳐 지금은 천년의시작 편집부에서 일하고 있는 전문 편집인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