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7】김영숙의 "절규"

절규
- 호랑지빠귀
김영숙
입밖에 내지 못해 쪼글한 그 이름을
새벽마다 숨어서 부르는 그 이름을
야아앙 방자아부지 칠십 년을 불렀지
'수형인 김 아무개 대구형무소 사망'
아니라 아닐테주 내뿜는 담배 연기
갈 곳을 잃은 눈빛도 그 동굴 코발트빛
온다 간다 말없이 오지 않는 사람을
툭하면 산 쪽으로 비명처럼 불렀지
익어서 까만 눈물을 검북낭에 매단 새
사방이 캄캄해야 어어이 어~이
툭하면 마을을 향해 늦은 대답 어~이
들을 이 이제 없어도 참꽃처럼 우는 새
<제주4·3 76주년 추념 시화전> (2024년)
제주의 사월은 붉다. 나무도 붉고 땅도 붉고 가슴도 붉다. 죽음을 밟지 않고 제주에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여섯 집만 건너면 4·3의 희생자며 유족들이 산다. 이웃에게 보리쌀 한 됫박 준 죄, 이웃과 말 섞은 죄 그 모든 것들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했다. 이념과 상관없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형무소에 가둬 모진 고문을 가하거나, 바다나 들에서 마구잡이로 죽이는 세상이었다. 젊은 남성들은 예비검속을 피하기 위해 낮에는 산에 숨고 밤에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가 잡히면 집안이 풍비박산이 났고 주민 명부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고, 군경에 의해서도 온 가족이 죽임을 당했다.
한동안 4·3에 연루된 사람의 이름과 그 가족이라고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시절이 있었다. 부르고 싶어도 부르지 못한 이름, 입 밖에 내지 못해 쪼글한 그 이름, 새벽마다 숨어서 부르는 그 이름을 호랑지빠귀가 울어준다고 김영숙시인은 말한다.
사방이 캄캄해야 어어이 어~이
툭하면 마을을 향해 늦은 대답 어~이
들을 이 이제 없어도 참꽃처럼 우는 새
지금 어디선가 어두워지면 울고 있을 호랑지빠귀 울음은 4·3 희생자들의 절규이며, 망각의 봄을 깨워주는 울음이다.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죽음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다. 제주에서는 죽음을 껴안지 않고 다닐 수도, 떠날 수도 없지만 사월은 그렇게, 또 그렇게 꽃눈 올려 꽃을 피운다.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강영임의 시조 읽기" 코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