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 해설] 김민정의 "누가, 앉아 있다"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57]
누가, 앉아 있다
김민정
돌밭에서 내가 만난 몽돌 속 저 한 사람
고단한 삶 언저리 휴식을 취한 사람
우리들
어머니처럼
아니, 나의 어머니가
깨어지고 엎어지고 상처에 얹힌 딱지
아프고 가려웠을 시간을 견뎌 가며
진동과
파장을 건너
닿은 꿈이 있었을까
손발을 쉬지 않고 바쁘게 달려왔을
장터 어디 쪽의자에 한 생을 내려놓고
뭐라고
말문을 뗄 듯
머뭇대고 있는 사람
―『누가, 앉아 있다』(고요아침, 2017)

[해설] 어머니의 자리
이 시조의 모티브는 수석이다. 동해 바닷가에서 발견한 돌에 새겨져 있는 것이 꼭 장터 한구석에 앉아 있는 아낙네 같다. 김민정 시인은 수석 사진을 왼편에 제시하고 오른편에 시조와 영역시를 제시하는 시조집 『누가, 앉아 있다』와 『함께 가는 길』을 펴낸 바 있는데, 이 수석들이 본인이 채집한 것이며 소장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니 여러 번 놀라게 된다. 일찍이 박두진 시인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수석을 모아 그 낱낱을 소재로 시로 써 『수석열전』이란 시집을 낸 적이 있었는데 김민정은 2017년과 2020년에 2권의 시조집을 냈다. 『수석열전』에는 수석 사진이 나와 있지 않은데 김민정 시인의 이 2권 시집에는 칼라로 선명하게 찍은 사진이 나와 있어서 요즘 유행하는 디카시집이 그렇듯이 사진과 활자를 함께 볼 수 있게 편집하였다.
시장에서나 가게에서 일하는 상인 중 여성을 볼 때면 종일 서 있는 것 같다. 손님이 없을 때 잠시 앉아 쉬지만 손님이 오면 금방 벌떡 일어난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고단한 삶 언저리 휴식을 취한 사람” “깨어지고 엎어지고 상처에 얹힌 딱지/아프고 가려웠을 시간을 견뎌 가며” “손발을 쉬지 않고 바쁘게 달려왔을”이라고 묘사하였다. 그 시절 우리의 어머니는 생애 내내 효도관광이나 해외여행 같은 것은 꿈도 못 꾸었다. 한두 주일이라도 쉬는 날이 있으면 좋을 텐데, 어머니는 편히 쉴 날을 가져보지 못하였다.
세 번째 수가 참 인상적이다. 중장과 종장이 “장터 어디 쪽의자에 한 생을 내려놓고/뭐라고/말문을 뗄 듯/머뭇대고 있는 사람”인데 이렇게 쓴 이유는 어머니가 아마도, 푸념이나 하소연을 하려다가 말문을 닫고 만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함이리라. 어머니들은 그 시절, 노동의 현장에서 묵묵히 인내하면서 자기희생의 나날을 살아갔다. 그러니까 이 한 편의 시조는 기나긴 세월, 수많은 어머니의 초상이 돌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그 희생의 역사를 그린 가편이다.
내 어머니도 30년 동안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점을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식구들이 먹을 밥과 국과 반찬을 다 만들어놓고 막 등교하는 아이들을 맞으러 가게로 갔다. 일반 잡화까지 취급하여 저녁 늦게까지 가게를 보았다. 귀가하여 저녁을 준비해야 했으니 가혹한 노동의 나날이었다. 이런 고생을 내 어머니만 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것이 풍요라면 그것은 우리들의 어머니 덕분이다.
[김민정 시인]
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1985년 《시조문학》 창간 25주년 지상백일장 장원 등단. 시조집 『나 여기에 눈을 뜨네』『지상의 꿈』『사랑하고 싶던 날』『영동선의 긴 봄날』『백악기 붉은 기침』『바다열차』『모래울음을 찾아』『창과 창 사이』『꽃, 그 순간』『펄펄펄, 꽃잎』, 수필집 『사람이 그리운 날엔 기차를 타라』. 평설집 『모든 순간은 꽃이다』. 논문집 『현대시조의 고향성』 외 다수 발간. 나래시조문학상, 시조시학상, 김기림문학상, 열린시학상, 월하문학상, 성균문학상, 한국문협작가상 등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