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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25] 문형렬의 "어머니 기다리시네"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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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기다리시네

 

문형렬

 

형의 인생을 바다에 뿌리고 온 새벽,

비싼 양복에 빨간 넥타이 매고

좋은 곳으로 간다며

형이 인사하러 왔더라고

어머니는 환하게 꿈 이야기를 하신다

기다린 지 십 년이 넘었는데

이렇게 좋은 꿈은 처음이니

오늘 틀림없이 찾아올 거라고,

중풍에 굳어버린 오른손을

왼손으로 붙잡아 흔들고는

돌아앉아 손수 기저귀를 차고

출근하는 길에 아파트 입구 계단에

내려달라고 밥꽃처럼 웃으신다

어머니를 업어 계단에 내려두고

양산을 펴 왼손에 쥐여 주던 늦봄,

출근해서 회의하고 손등에 내려앉는

벼락처럼 사설 하나 써 넘기고

아파트 놀이터 등나무 그늘에 서서 본다

양복 입은 사람이 지나가면

어머니는 입을 벌리고

먼저 보고 싶어

엉덩이를 들었다가 놓는 사이로

햇빛은 자꾸 붉어지는데,

파도에 흩어진 형을 모아

빨간 넥타이를 맬 재주가 없으니

나는 저 기다림으로 들어설 재주도 없다

좋은 꿈은 사흘이 간다고

사흘 내내,

가루가루 눈부신 봄날이

사흘 건너 또 십 년이 지나가는 사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어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소식이 왔느냐고

물으시면 기다렸다는 듯

잘 있다는 연락이 왔다고

나도 따라 흰쌀밥처럼 웃는다

들킬 리 없건마는

기다림은 만 리 밖까지 걸을 수 있으니

알고 있으면서 모른 체하시는지,

돈 많이 벌어서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나도 철석같이 믿어버렸는지,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기다리는 일이 바빠서

슬퍼할 겨를이 없다

 

—『너의 이름만으로 행복했었다』(도서출판 두엄, 2023)  

어머니 기다리시네 _ 문형렬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인생은 비극인가 희비극인가

 

  이 시의 내용 중 몇 프로가 허구이고 몇 프로가 상상일까? 짐작하건대 거의 다 사실에 근거한 것이라고 본다. 시인 혹은 시적 화자의 형이 죽었다. 어머니는 치매가 심해 형의 죽음을 모르고서 마냥 기다린다. 꿈에 네 형이 나타났다면서 이제 곧 올 거라고 말씀하시니 울음을 애써 참아야 할지 모른 체해야 할지 미소라도 지어야 할지.

 

  어머니의 상태는 중풍에 굳어버린 오른손” “돌아앉아 손수 기저귀를 차고정도였는데 세월이 더 많이 흘러 다시는 일어설 수 없어/ 요양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소식이 왔느냐고/ 물으시면 기다렸다는 듯/ 잘 있다는 연락이 왔다고/ 나도 따라 흰쌀밥처럼 웃는다에 이르면 눈물 난다. 10년이 넘도록 큰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그 간절한 소망이 가슴을 후벼 판다.

 

  형은 외항선을 탔는가 보다. 돈 많이 벌어서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나도 철석같이 믿었는데 형은 뼛가루가 되어 바다에 뿌려졌다. 나는 어머니에게 형이 잘 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고 거짓말을 때때로 한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나는 나대로/ 기다리는 일이 바빠서/ 슬퍼할 겨를이 없다는 결구는 차라리 희극이다. 어머니는 형의 귀가를 간곡히 기다리고 있고, 그것이 삶의 이유다. 나는 사는 일이 바빠서 형에 대한 슬픔에 계속 잠겨 있을 수 없다. 나의 죽음, 우리의 죽음도 다 그런 것이 아닐까. 생명체이니 때가 되면 응당 죽게 마련인 것. 오늘도 열심히 일을, 인간을, 문학을 사랑하며 살아감으로써 존재 증명을 하는 수밖에 없는 것!

 

  [문형렬 시인 겸 소설가]

 

  1955년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영남대 사회학과 및 동대학원 철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와 소설이 당선되었고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동화와 소설이 당선되었다. 소설창작집 『언제나 갈 수 있는 곳』『슬픔의 마술사』, 장편소설 『바다로 가는 자전거』『아득한 사랑』『눈먼 사랑』『연적』『굿바이 아마레』『어느 이등병의 편지』 등과 시집 『꿈에 보는 폭설』『해가 지면 울고 싶다』 등을 상재했다. 한국 장편소설 최초로 『바다로 가는 자전거(Bicycling Over the Ocean)』가 영어 오디오북(러닝타임 6시간 30)으로 뉴욕에서 제작, 영어번역판 eBook과 같이 아마존 등 영어권 온라인서점에 올라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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