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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동 시집 『활, 그 치명적인 유혹』 출간

류우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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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궁의 은유로 삶과 윤리의 긴장을 끝까지 밀어붙이다

정희동 작가의 신작 시집 『활, 그 치명적인 유혹』이 출판사 반달뜨는꽃섬에서 출단됐다. 이번 시집은 국궁(國弓)이라는 전통적 행위를 매개로 인간이 삶의 선택 앞에서 취해야 할 윤리적 자세와 존재의 긴장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시집은 국궁(國弓)이라는 전통적 행위를 매개로 한 인간이 삶의 선택 앞에서 취해야 할 윤리적 자세와 존재의 긴장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품이다
국궁(國弓)이라는 전통적 행위를 매개로 한 인간이 삶의 선택 앞에서 취해야 할 윤리적 자세와 존재의 긴장을 끝까지 밀고 나간 작품을 모은 시집

시집의 출발점은 언제나 ‘설자리(射臺)’다. 그러나 이 설자리는 단순한 활터를 넘어 일상의 은유로 확장된다. ‘황학정의 사계’에서는 계절이 자연의 묘사가 아니라 활꾼의 몸과 마음이 반응하는 리듬으로 감각화된다. 겨울의 긴장, 여름의 무력, 가을의 관조, 봄의 회복은 곧 삶이 통과하는 내적 상태로 드러난다.


정희동은 활터의 전문적 언어를 숨기지 않고 시 속에 담아낸다. ‘만작’, ‘발시’, ‘잔신’, ‘홍심’, ‘습사무언’, ‘동진동퇴’ 같은 용어들은 주석과 해설을 동반하면서도 시의 긴장을 해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낯선 언어들은 삶의 특정 국면을 정확히 겨냥하는 개념어로 기능한다. 특히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잔신’은 화살은 떠났으나 마음은 떠나지 않는 상태, 결과 이후에도 태도를 거두지 않는 윤리로 현대 사회에서 희소해진 덕목을 환기한다.

또한 시집은 개인의 수행을 공동체의 윤리로 확장한다. ‘집궁례’, ‘삭회’, ‘동진동퇴’ 같은 작품에서 활터는 하나의 사회로 읽히며, 함께 들어가고 함께 나서야 하는 규칙은 공동체적 질서의 은유로 작동한다.
 

시간에 대한 감각 역시 단단하다. ‘집궁회갑’, ‘납궁’, ‘쏜 살’ 같은 작품은 삶을 화살에 빗대는 진부한 비유를 넘어, 닳아버린 궁대와 무뎌진 촉, 익숙해진 설자리 등 몸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구체적으로 드러낸다. 이는 마모를 부정하지 않고 끌어안는 태도에서 시집의 성숙을 보여준다.
 

문체는 군더더기 없는 직진성과 긴장감을 유지하는 밀도로 특징지어진다. 활을 당기는 동작처럼 문장은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다가 정확한 순간에 풀리며, 짧은 시편은 가볍지 않고 긴 시편은 늘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시집은 삶을 위로하기보다 바로 세우려는 책이다. 독자는 편안함 대신 스스로의 설자리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무엇을 겨누고 있는가, 그리고 쏘고 난 뒤의 마음을 책임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집은 명중의 환희가 아니라 끝까지 서 있는 인간의 형상에 도달한다.
 

정희동의 『활, 그 치명적인 유혹』은 활의 과녁을 넘어 독자의 삶을 겨누며 묻는다. 지금 당신의 삶은 과연 ‘만작’에 이르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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