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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쓴 시, 기계가 옮긴 노래 - 이민호의 뮤직비디오 공개

류우강 기자
입력
이민호 시인의 「내가 없는 방」, 활자에서 노래로 다시 화면으로

한 사람이 시를 쓴다. 그 시를 기계가 노래로 만들고, 다른 기계가 화면으로 옮긴다. 그리고 누군가 그 영상을 보다가 마음이 움직인다.

 

곡을 만든 프로그램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화면 속 인물은 실재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감상자에게는 분명히 무언가가 도착한다. 사람이 쓴 정서가 AI를 거쳐 다른 매체로 번역된 결과다.

 

시인 이민호(호 民歌)의 시 「내가 없는 방」이 뮤직비디오로 제작돼 공개됐다. 작곡과 보컬, 영상과 등장인물까지 전 과정을 AI 도구로 만들었고, 기획과 편집은 시인 본인이 맡았다.

▲ 시 「내가 없는 방」 뮤직비디오 컨셉 이미지 (AI 생성)

원작은 16행의 짧은 시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내가 없는 방」

 

내가 있었지만
내가 없었다

 

살아있다는 증거로
아파야 한다면
차라리
침묵이기를 바랬다

 

좋은 사람이고 싶어서
속여야 한다면
차라리
분노이기를 바랬다

 

문이 없는 방에서
오래된 비명이
새어나왔다

 

외로움은 소음이다

 

끄는 법을 모르는
아픔처럼
 


정서가 곡이 되고 화면이 됐다. 뮤직비디오는 시가 품은 정서를 영상이라는 감각으로 통과시킨다. 그렇게 원작과는 다른 결을 가진 창작물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번역이라는 말이 이 작업에 들어맞는다. 정서는 옮겨지지만 그것을 실어 나르는 수단은 매체마다 다르다. 시에서 그 일을 하는 것은 행갈이와 여백이고, 노래에서는 박자와 목소리가, 영상에서는 흐르는 시간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같은 정서가 세 번 서로 다른 몸을 입는 셈이다.

 

그 사이마다 사람이 개입한다. 생성 도구는 요청하는 만큼 얼마든지 만들어낸다. 그중 무엇을 남길지 고르는 자리에서 25년간 시를 써온 사람의 감각이 작동한다.

 

작업은 컨셉 디자인에서 시작됐다. 인물과 화면의 방향을 먼저 잡고, 곡과 보컬을 만든 다음, 그에 맞춰 영상을 생성해 하나로 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도구가 쓰였다.

 

컨셉 디자인 : ChatGPT·Gemini
작곡, 보컬 : Suno
영상 클립 : Veo·Seedance·Tunee
영상 편집 : CapCut

 

▲ 시 「내가 없는 방」 뮤직비디오. 열여섯 행의 시가 노래와 영상으로 옮겨졌다.

 

10년 전이라면 이 작업에 작곡가와 촬영팀, 배우와 편집자가 필요했다. 지금은 시인 한 사람이 도구들과 마주 앉아 끝낸다.

 

AI가 만든 것이 예술이 되는지는 사람의 감각이 얼마나 담겼는지에 달려 있다. 이 작업의 출발점에는 사람이 쓴 열여섯 행이 있었고, 그 정서는 노래와 화면을 거치는 동안에도 시인의 손 안에 있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그것을 보는 또 다른 사람이다.

▲이민호 시인 (호: 민가/民歌)

이민호 시인은 호를 민가(民歌)로 쓴다. 2001년 계간 『문학21』 시 부문으로 등단해 25년째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사)창작문학예술인협회 정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코리아아트뉴스와 오마이뉴스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고, 광명영화인협회 운영위원을 맡아 지역 영상문화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공공지능형빅데이터·AI 분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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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시인#민가#내가없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