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의 아내'보다 빛나는 30년 연출 내공… 송현옥 연출의 대표작 <의자 고치는 여인>
한 사람이 평생 하나의 의자를 고친다면, 그 의자에는 무엇이 남을까. 낡은 나무와 삐걱거리는 소리 너머에는 어쩌면 한 사람의 사랑과 기다림, 그리고 지나간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을 향한 사랑은 어디까지 삶이 될 수 있을까.
그리고 오랜 기다림 끝에 남는 것은 사랑일까, 아니면 그 시간을 견뎌온 한 사람의 삶일까.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이 오는 9월 18일부터 20일까지 나루아트센터 대공연장 무대에 오른다. 프랑스 문학의 거장 기 드 모파상의 동명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한평생 한 남자만을 향해 조건 없는 헌신을 바친 여인의 55년 간의 일생을 그린다. 한 여인의 긴 삶을 통해 사랑과 기다림, 희생과 인간의 선택을 바라본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배우자라는 수식어 뒤에 가려져 있던 30년 내공의 연출가 송현옥 (세종대 교수·극단 물결 예술감독)의 대표 레퍼토리이다.
정치인 가족이라는 배경은 예술계에서 때로는 도움보다 더 엄격한 잣대와 무거운 편견으로 작용하곤 했다. 하지만 송현옥 연출은 일체의 후광없이 오직 '작품성'과 '신체 언어의 독창성'만으로 묵묵히 자신의 예술적 영토를 일궈왔다.
특히 송현옥 연출의 무대는 해외 유수 페스티벌에서 먼저 진가를 인정받았다. 막심 고리키의 고전을 독창적으로 재해석한 연극 〈밑바닥에서〉는 2018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유스 시어터' 초청에 이어, 2019년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열린 '제9회 고리 키 국제 연극 페스티벌' 개막 초청작으로 공식 무대에 올랐다.
당시 러시아 현지 비평가들로부터 "원작의 사회적 리얼리즘을 인간 실존의 처절한 몸부림과 시적 감각으로 승화 시킨 놀라운 무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몸의 리듬과 조형미로 원작의 정수를 구현해낸 독창적 미학"이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 밖에도 체코 브르노 페스티벌, 모스크바 루니 시어터, 카자흐스탄 국가 EXPO 공식 초청 국제연극제 등을 잇달아 섭렵하며 K-피 지컬 씨어터의 위상을 높여왔다. 이번 서울 공연 역시 이러한 국제적 명성에 힘입어 20 여 개국 주한 외교 사절단 및 각국 대사들이 대거 공연장을 찾아 관람할 예정이다. 이번에 선보이는 〈의자 고치는 여인〉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9 아르코 공연예술창 작산실 - 올해의 신작'에 선정되어 2020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작 품이다.
송 연출은 고전을 박제된 형태로 재현하는 대신 해체와 재구성을 통해 '오늘의 인간'을 집요하게 탐구한다.

작품의 중심에는 ‘의자’를 고치는 여인이 있다. 그러나 무대에서 의자는 단순한 물건에 머물지 않는다.
무대 위 수많은 폐의자를 수리하는 여인들의 정교하고 역동적인 군무와 서사를 이끄는 사회자의 독창적인 구성을 통해, '의자를 고치는 행위'는 단순한 노동을 넘어 잊힌 상처와 기억, 존재의 가치를 복원하는 신체적 고백으로 확장된다.
오랜 시간 사용되며 닳고 흔들리는 의자는 한 사람의 삶과 닮아 있다. 고장 난 부분을 고치고 다시 사용하는 과정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한 여성의 삶을 단순한 사랑 이야기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다림과 헌신이 한 인간에게 어떤 의미로 남는지를 차분하게 들여다본다.
특히 이 작품은 전통적인 대사 중심의 연극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물의 삶을 바라본다. 배우의 신체와 움직임, 무대 공간과 오브제를 활용해 한 여인의 긴 시간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대사만으로 이야기를 전달하기보다 움직임과 장면의 변화 속에서 인물의 감정과 시간의 흐름을 관객이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낡은 의자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 기억과 삶의 흔적을 상징한다.
영문학자이자 드라마투르기로 출발해 오랫동안 언어의 힘을 탐구해 온 송 연출은 "영화와 드라마가 일상에 자리 잡은 시대에 연극이 같은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라며 "말이 시작되기 전에도 이미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배우의 몸'과 공간, 음악, 오브제가 결합된 총체 예술(Gesamtkunstwerk)로 관객과 만나야 한다"고 무대 미학을 밝혀왔다.
이러한 무대적 접근은 모파상의 고전적 서사를 현재의 관객에게 새롭게 연결하는 장치가 된다. 오래된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대신, 한 인간이 살아온 시간을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의자 고치는 여인》이 던지는 질문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오래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고치며 살아가는가.
망가진 의자를 고치듯 관계를 고치고, 지나간 기억을 다듬고, 때로는 상처 입은 자신의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하지만 모든 것이 처음처럼 돌아갈 수는 없다. 고친 흔적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그 물건과 사람의 역사가 된다.
《의자 고치는 여인》은 결국 의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고장 난 것을 고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이야기이며,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이 자신의 삶에는 어떤 의미였는지를 되묻는 작품이다.
송현옥 연출은 "한 사람만을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간 여인의 삶에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이것은 숭고한 사랑인가, 아니면 어리석은 집착인가? 우리는 타인의 삶을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라며 "연극은 정해진 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남기는 예술이다. 무대에서 시작된 질문이 객석으로 건너가 공연이 끝난 뒤 관객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낡은 의자를 고치는 손길처럼 시간은 조금씩 흔적을 남긴다. 그리고 무대는 그 흔적을 다시 꺼내 관객 앞에 놓는다. 55년이라는 긴 세월을 지나온 한 여인의 삶이 이번 공연에서 어떤 모습으로 되살아날지 주목된다.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는 오브제와 배우들의 폭발적인 신체 에너지를 통해 언어 이상의 감동을 선사할 연극 〈의자 고치는 여인〉은 광진문화재단과 극단 물결의 공동기획으로 진행되며, 예매는 광진문화재단 홈페이지 및 NOL 티켓에서 가능하다. 공연 시간은 약 100분이며, 9월 18일은 오후 7시 30분, 19일과 20일은 오후 2시와 6시에 공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