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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당, 지워진 빛을 다시 바라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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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미당, 지워진 빛을 다시 바라보다

이민호 칼럼니스트
입력
그를 말하려다, 시 앞에 멈춰 선다

한국 현대시를 돌아볼 때, 미당 서정주의 이름은 늘 조심스럽다. 그의 시를 이야기할 때마다, 작품의 아름다움과 함께 지울 수 없는 삶의 흔적들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언어의 깊이에 이끌리다가도, 그의 모순과 고통이 조용히 떠오른다.

 

미당 서정주는 너무도 아픈 시대를 살았다.


정치와 이념이 삶을 지배하던 시간 속에서, 그는 문학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려야 했다.
문단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정신의 병과 고립감 속에서 스스로를 소진해 갔다는 증언이 곳곳에 남아 있다. 

▲ 미당 서정주의 이름은 늘 조심스럽다
▲ 미당 서정주의 이름은 늘 조심스럽다

그의 시는 아름다움과 슬픔을 품고 있지만, 그것이 단지 시적인 표현으로만 느껴지진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시대의 절망과 개인의 붕괴를 감내하며 끌어올린 어떤 내면의 목소리였을지도 모른다.

 

생전에 그는 비난과 찬사의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친일 논란과 문학적 성취라는 상반된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그 두 시선은 서로 충돌하기보다는, 한 사람을 둘러싼 진실의 다른 면처럼 보인다.

 

어쩌면 그런 복잡성 자체가, 서정주라는 이름을 쉽게 단정지을 수 없게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의 시가 한국 문학사에 남긴 흔적은, 오랫동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다.


 

고통 속에서 한 시대의 정서를 건져 올린 시인

 

미당 서정주 시인 [ 이미지: 류우강 기자]

「국화 옆에서」, 「무등을 보며」, 「풀리는 한강가에서」, 「학」 같은 시들을 떠올릴 때면,

슬픔과 기다림, 그리고 위로의 감정이 언어 너머에서 천천히 밀려오던 기억이 따라온다. 시를 읽었다기보다는, 그 여운에 강하게 붙들렸던 느낌에 더 가까웠다. 아마도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끝내 놓지 않으려 했던 어떤 마음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그의 진심이, 그가 안고 있던 결점들까지 감싸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결점들이 그의 시까지 지워야 할 이유가 될 수 있을지는 선뜻 말하기 어렵다.

 

모순과 고통 속에서 한 사람이 건져낸 언어들 속엔, 여전히 들여다볼 가치가 있는 무언가가 남아 있다.

 

한국어로 쓸 수 있었던 가장 깊은 정서들, 그리고 무너진 시대 속에서 겨우 건넨 위로의 말들. 그런 것들마저 함께 사라진다면, 그건 너무 아픈 일처럼 느껴진다.

 

서정주라는 이름 앞에서 떠오르는 감정은 좀처럼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  사랑과 실망, 감탄과 분노가 뒤엉켜 남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그런 혼란 자체가, 그를 더욱 인간적인 시인으로 남게 만드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 한 줄이 떠오를 때면, 이해보다 먼저 마음이 움직인다.


 


▲한 송이에 담긴 말의 깊이
▲한 송이에 담긴 말의 깊이를 기리며

 

민가, 「오래 아픈 미담」


그의 노래는 맑았다


목소리엔 진심이 요동쳤다

한 송이 국화꽃이 피기까지,

가사는 모든 것을 울리었고

계절은 제 마음대로 바뀌었다

 

감히, 어떻게 피었는지 묻지 않았다

 

그의 노래는 국화 옆처럼 아름다웠다

음정 하나로 화사하게 풍경을 접었고,

숨 하나로 고요한 자화의 시간을 벌렸다

문보다 더 먼저 열린 외로운 공간으로

듣는 이를 순수한 기도로 추천하기도 했다

 

그는 가끔, 낯선 걸음에 악보를 얹었다

 

그때마다,

그의 발성은 의도가 되었다

고통 위에 박자를 걸쳤고

폭력보다 잔인한 가사는

침묵을 정교하게 흔들었다

깃발이 노래보다 높은 계절이었다


국화는 그 계절 속에서 시들었다

 

그 자리에, 질문이 남았다

누구도 그를 향하진 않았다

환호를 되묻지 않는 일처럼

박수는 방향을 잃었다

 

오직, 공허만 그의 것이었다


모든 결함을 씻지 못한 진심

변명도 증언도 아닌 채

시든 자리를 고백한다

그 자리가

이렇게 따뜻했다고

이렇게 아픈 것이라고


노래가, 끝내 사람을 지우지 않았다고


 

*이 시는 미당이라는 시인을 오래 담아 두며 써 내려간 글입니다.

 


▲이민호(民歌) 칼럼니스트
▲이민호 칼럼니스트

 

민가(民歌)

시인, 칼럼니스트, IT AI 연구원 , KAN 전문기자   

문학과 기술, 사람의 이야기를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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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시인#이민호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