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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77] 김규화의 "떠돌이배"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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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돌이배

 

김규화

 

나는 자그마한 떠돌이배

30억 나이의 내 유전자 싣고

먼 은하계 샛길을 흘러내려

망망대해에 이르는

 

때론 원시의 푸른 연못에서

실컷 곤죽을 먹으며 살았던

10억 나이의 내 단세포가

몹시 궁금한

 

그동안 돌연변이를 거듭했지

하마터면 은하 바다에 풍덩 빠져 죽을 뻔도 했지

새와 나무의 겉옷을 영원히 벗기까지는

 

거미줄로 얽혀 굳은 내 근육의

껍질을 깨뜨리면 눈물뿐

80해에서 매듭이 생기고

유전자는 어느 항구에

닿으리

 

하역(荷役)을 서두르는 나는 지금

밑도 끝도 없는 은하 바다에서

불타는 태양의 궤도를 도는 떠돌이배

30억 나이의 살아 푸르른

 

—『떠돌이배』(시문학사, 2006)  

떠돌이배_ 김규화 시인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김규화(19392023. 2. 12) 시인이 작고한 지도 3년이 다 돼간다. 단정하고 깔끔하고 차분한 분이었다. 경우에 어긋나는 언행은 절대로 하지 않았고, 작고하는 그 순간까지 편집인과 문학인의 도리를 다했다. 월간 《시문학》을 19737월호(통권 24)부터 20232월호(통권 619)까지 발간했으니 그 세월이 50년이다. 어제 문학의집ㆍ서울에서는 제11회 문덕수문학상(수상자 강연호 시인) 시상식에 앞서 문덕수 시인과 김규화 부부 시인의 문학세계를 조명하는 기념 포럼이 있었다.

 

  ‘지구를 탈출하자는 것이 수많은 SF 문학의 주제이고 할리우드에서 만든 우주 영화의 주제이지만 실감이 나지 않고 공허하게 느껴진다. 미세먼지 농도부터 낮추는 것이 급선무지 외계로 나가서 사는 것이 대세인 양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든다. 그런데 김규화 시인은 인류의 일원으로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자그마한 떠돌이배인데 30억 나이의 유전자를 싣고 먼 은하계 샛길을 흘러내려 망망대해에 이르렀다고. 시인의 우주적 상상력이 광대무변해 놀랍다.

 

  지구의 역사가 30억 년이고 지구상에 등장한 생명체의 역사가 10억 년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주선이 이 지구를 찍은 사진을 보면 푸른색에 가깝다. “불타는 태양의 궤도를 도는떠돌이배인 지구를 지킬 수 있는 것은 우리 인간뿐이다. 그런데 인간이 지구를 괴롭히고 있다. “10억 나이의 내 단세포가란 시구로 보아 생명체가 이 지구에 출현한 것이 대략 10억 년 전인가 본데 21세기인 지금 모든 생명체가 심각한 위기상황에 이르러 있다. 인간 때문이다.

 

  지구의 역사, 지구 위 생명체의 역사, 인류의 역사가 21세기에 이르러 있는데 과연 75년 뒤에 22세기를 맞이할 수 있을까? 시인은 이 점이 아무래도 의심스러웠나 보다. 나도 일엽편주 떠돌이배이지만 이 지구도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떠돌이배이다. 지구가 자전과 공전을 영원히 계속할 것인가? 나도 수명이 있을 테고 지구도 수명이 있을 텐데 인간이 이렇게 계속해서 욕망과 쾌락과 편리를 추구하면 자연의 반란인 폭풍우에 침몰하고 말 것이다. 이 시는 그러니까 인류가 이제부터 생존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큰코다칠 거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김규화 시인]

 

  1966년 《현대문학》천료로 등단. 시집 『이상한 기도』『노래내기』『말··말』 외 다수. 시선집 『초록 징검다리』『서정시편』, 영시집 『Our Encounter, 불어시집 『Notre Rencomtre』을 냄. 한국문학상, 펜문학상, 현대시인상, 동국문학상, 순천문학상, 매계문학상, 도천문학상 등 수상.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국제펜한국본부 고문, 한국여성문학인회 자문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명예이사장 역임. 월간 《시문학》 발행인 역임.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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