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50년 사진 여정으로 담아낸 인간의 순간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이 기업인의 자리를 잠시 내려놓고 사진가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첫 개인전 ‘휴먼 모먼트(Human Moment)’가 서울 피크닉에서 16일 막을 올렸다.

이번 전시는 그가 반세기 동안 카메라로 기록해 온 인간과 풍경의 순간들을 집약한 자리로, 1971년부터 촬영해 온 방대한 필름 중에서 엄선된 80여 점의 작품이 공개된다.

박용만의 사진 여정은 고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오래된 ‘아사히 펜탁스’ 카메라와 “날씨가 좋으면 125분의 1에 조리개 11을 놓고 찍어라”라는 조언이 그의 첫걸음을 이끌었다. 소풍길에서 눈물을 흘리며 유리병을 줍는 아이를 찍은 사진으로 교내 공모전에서 가작을 수상하며, 그는 사진의 세계에 깊이 매료되었다. 이후 대학과 일본 유학 시절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기업 경영으로 바쁜 나날 속에서도 해외 출장지에서 홀로 남겨진 시간을 활용해 거리로 나서며 셔터를 눌렀다.0

이번 전시는 관람객이 사진을 오롯이 감각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작품의 시기나 장소 설명을 배제했다. 작가는 “장소를 알게 되면 선입견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저 시각적으로 보고 공감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시장 초반에는 사람의 뒷모습과 풍경이 주를 이루지만,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인물의 얼굴과 표정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관람객을 점차 인간의 내밀한 순간으로 끌어들인다.
그의 사진에는 빨간색 모티브와 ‘프레임 안의 프레임’ 구도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종로 재개발 이전의 풍경, 천안문 사태 이전의 중국, 노르웨이 피오르, 뉴욕과 파리의 거리 등 세계 곳곳을 담은 작품들은 시공간을 초월해 ‘인간다움’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수렴된다. 전시 후반부에는 사회적 약자와 양극화 문제를 다룬 흑백 사진들이 배치되어, 낙산 언덕의 적산가옥이나 가난한 이웃들의 모습이 따뜻함과 동시에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박용만은 기업인과 사진가의 삶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는 “사진가라는 삶과 기업인이라는 삶이 공존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고 회상하며, 한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진에 전념할 뻔했지만 가족을 위해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와 함께 출간된 사진집에는 전시작을 포함해 200여 점의 사진이 실렸으며, 그는 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사진을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냉정한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고 밝혔다.

서울 피크닉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2월 15일까지 이어지며, 관람은 무료다. 기업의 수장이 아닌 인간의 찰나를 기록해 온 한 노련한 관찰자의 진심 어린 시선을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