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B ‘탄소나노튜브 섬유’, 누리호 5차 발사로 우주 궤도 진입…첨단소재 우주 실증 본격화
국내 소재 전문기업 DRB(디알비)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탄소나노튜브(CNT) 섬유를 우주 궤도에 올리며 첨단소재 분야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DRB는 지난 10월 7일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5차 발사를 통해 자체 합성·생산한 탄소나노튜브(CNT·Carbon Nanotube) 섬유가 우주 궤도에 진입했다고 12일 밝혔다. 이번에 발사된 CNT 섬유는 우주방사선 차폐 전문기업 스페이스앤빈이 개발한 큐브위성 ‘SD-1 SAT’에 시편 형태로 장착됐으며, 목표 고도 약 579㎞의 태양동기궤도에서 위성이 정상 분리됐다.
이번 프로젝트는 지상에서 개발한 첨단소재를 실제 우주 환경에 노출시켜 성능과 내구성을 검증하는 우주 실증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1945년 고무사업으로 출발한 DRB가 축적해 온 소재 기술을 바탕으로 항공우주 분야까지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탄소나노튜브 섬유, 극한 우주 환경에서 성능 검증
이번 우주 실증의 핵심 소재인 CNT는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구조로 연결된 나노미터 단위의 원통형 물질이다. 높은 기계적 강도와 우수한 전기전도성을 동시에 갖추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가벼운 무게를 특징으로 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차세대 항공우주 소재와 전자부품, 고성능 복합재료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다.
DRB는 부유촉매 화학기상증착(FC-CVD·Floating Catalyst Chemical Vapor Deposition) 방식의 합성 설비를 구축하고, 반응로 조건 최적화 등 공정 고도화 연구를 통해 CNT 섬유 개발에 성공했다. FC-CVD는 고온 반응로에 탄소원과 촉매를 함께 주입해 기체 상태에서 탄소나노튜브를 합성하는 기술이다. 반응로 내부에서 형성된 CNT 집합체를 연속적인 섬유 형태로 생산할 수 있어 대량생산에 유리한 공정으로 평가된다. CNT 섬유는 구리보다 밀도가 훨씬 낮으면서도 우수한 강도와 전도 특성을 구현할 가능성이 있어, 무게 절감이 중요한 우주산업 분야에서 관심을 받고 있다.
위성의 경량 케이블과 전자파 차폐재, 구조 보강재 등으로 응용할 수 있으며, 향후 실제 우주 환경에서 확보되는 실증 데이터가 상용화 가능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가 될 전망이다.

고도 579㎞에서 우주방사선·고진공·온도 변화 시험
DRB의 CNT 섬유가 탑재된 ‘SD-1 SAT’은 스페이스앤빈이 개발한 큐브위성이다.
이 위성의 주된 임무는 지구 자기장이 상대적으로 약해 우주방사선의 영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남대서양 이상대(SAA·South Atlantic Anomaly)의 방사선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다. 위성에 탑재된 방사선 차폐 소재는 실제 우주방사선 환경에 노출되며, DRB의 CNT 섬유 역시 궤도상에서 고진공과 극한의 온도 변화 등 다양한 환경 조건을 경험하게 된다.
DRB는 이러한 환경에서 소재의 물리적 특성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확인하기 위한 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다.
우주산업에서는 지상 실험만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환경적 요인이 존재한다. 강한 방사선과 급격한 온도 변화, 진공 상태 등 복합적인 조건에서 소재가 안정적인 특성을 유지하는지가 중요한 기술적 과제로 꼽힌다.
따라서 실제 우주 환경에서 운용·검증한 이력을 의미하는 ‘우주 헤리티지(Space Heritage)’ 확보는 새로운 소재가 우주시장에 진입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 발사를 통해 DRB는 자체 개발한 CNT 섬유의 우주 실증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으며, 향후 시험 결과에 따라 항공우주용 첨단소재의 활용 가능성을 구체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위성의 정상 분리와 소재의 우주 환경 성능 검증 완료는 구분되는 단계로, 소재의 장기적인 안정성과 성능은 후속 실증 결과를 통해 확인될 예정이다.
81년 소재 기술의 축적…고무산업에서 우주산업으로
DRB의 이번 우주 실증은 기존 제조업의 기술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첨단산업 영역에 도전한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갖는다.
1945년 창립한 DRB는 국내 최초로 고무벨트를 국산화하며 산업용 고무제품 분야에서 성장해 온 기업이다.
이후 자동차용 고무부품과 해양, 교량, 철도, 건축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사업을 확대해 왔으며, 러버트랙 분야에서는 글로벌 OEM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1990년에는 로봇자동화 사업을 시작하며 비고무 분야로 영역을 확장했고, 2021년에는 헬스케어 분야에도 진출했다. 최근에는 기존 제조업 중심의 사업구조를 넘어 차세대 첨단소재와 미래 기술을 발굴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DRB는 2022년부터 조직의 자율성과 실험적 연구개발을 강조하는 새로운 기업 운영체계를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내 실험조직 ‘퓨처랩스(Future Labs)’와 2024년 개소한 ‘DRB-KAIST 스케치더퓨처 연구센터’를 중심으로 로봇용 소재, 고분자 복합기술, 미래 첨단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번 CNT 섬유의 우주 실증 역시 이러한 기술 혁신 활동의 연장선에 있다.
DRB 관계자는 “1945년 고무사업으로 출발해 81년간 쌓은 소재 관련 기술과 경험이 실제 우주 환경에서 검증받는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이번 실증 데이터를 바탕으로 CNT 섬유를 비롯한 고부가가치 소재 분야의 연구개발을 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항공우주 등 첨단 기술 분야로 영역을 넓혀 가겠다”고 밝혔다.
‘DRB 스페이스 챌린지’ 통해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 조성
DRB는 첨단소재 개발과 함께 민간 우주산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2023년부터 매년 개최하고 있는 ‘DRB 스페이스 챌린지’는 우주산업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우주 개척과 관련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특히 우주산업 분야의 새로운 사업 기회를 탐색하고 스타트업 창업을 촉진하는 등 민간 중심의 우주산업 기반 확대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전통 제조업에서 축적한 소재 기술과 연구개발 역량을 활용해 미래 우주산업으로 진출하려는 DRB의 행보는 국내 기업들의 산업 전환과 기술 고도화 측면에서도 시사점을 제공한다. DRB는 지난해 창립 80주년을 맞아 이러한 변화와 혁신의 과정을 담은 도서 《동일고무벨트 방식: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회사 만들기》를 발간하기도 했다.
이번 CNT 섬유의 누리호 탑재는 단순한 위성 발사 참여를 넘어 국내 기업이 자체 개발한 첨단소재의 우주 환경 적용 가능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실제 우주 환경에서 확보할 실증 데이터를 기반으로 CNT 섬유의 안정성과 활용 가능성을 검증하고, 이를 산업적 경쟁력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