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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최웅식의 "4월의 우물"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최웅식의 "4월의 우물"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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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34 ]

4월의 우물


최웅식


 

구름을 비추지 않는 우물이 있어요

엄마의 눈을 닮은 아기가 가라앉아요

 

물을 들어낼 수 없어요

젖먹이를 우물에 빠뜨린 엄마는 웃었어요

 

동굴에 숨어 지내도 첨벙 소리가 나요

엄마는 어둠 속에서 아기를

놓은 손을 오랫동안 쳐다보았죠

 

입을 가리고 울다 보니 웃음이 나오나 봐요

울음소리가 나면 모두 죽는 거래요

나뭇가지처럼 숨은 총들이 사라졌어요

 

불타버린 집들이 보여요

4월의 우물은 검어요

 

예전처럼, 예전으로

따위의 말은 없으니 하지 말아요

 

그녀의 눈에 도깨비꽃이 피었어요

고인 우물처럼 빠져나가지 않아요

폭우가 와서 우물에 있는 물이 넘쳐흘렀어요

손톱이 빠질 만큼 물을 헤쳐도 속이 보이지 않아요

마을 사람들이 요동치는 그녀의 팔과 다리를 잡아요

우물을 빨리 메워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요

 

문을 잠그지 말아요

아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그녀는 힘없는 이빨로

방을 동여맨 줄을 끊어요

 

아기의 눈동자에 검은 물이 들어가요

그녀는 웃으며 우물 주위를 돌아다녀요

울음소리를 내몰 수 없는 남편은

한라산에 낮게 깔린 안개를 보곤 했어요

 

엄마의 눈물을 받아내는

우물이 있어요

 

―『제주작가』 신인상 수상작

4월의 우물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그해 43일 제주도에서는

 

  194843일부터 제주도에서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의 발단, 전개, 결말을 글로 쓰면 책 한 권은 족히 될 것이다. 제주도 43사건을 총체적으로 다룬 재일 조선인 작가 김석범의 『화산도』는 12권짜리 대하소설이다. , 한두 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운 사건이다. 그럼에 불구하고 몇 마디 해본다면,

 

  광복 이후 외지에 나가 있던 이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식량은 부족해지고 민심도 흉흉해진다. 때마침 194731일에 도민을 향한 경찰의 발포사건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도화선이 된다. 경찰의 말발굽에 깔려 죽은 아이를 보고 항의하는 도민들을 폭도로 오인해 발포, 6명이 죽고 8명이 크게 다쳤다면 사과를 단단히 해야만 했다. 그런데 친일 경력이 있는 경찰들의 대처는 도민들을 동포가 아닌 적으로 대했으니 최초의 원인 제공자는 경찰이었다.

 

  남로당 제주도당과 인민유격대가 좌에 섰고 서북청년단과 군경토벌대가 우에 섰다. 우가 좌를 토벌하는 과정에서 대대적인 양민 학살이 이뤄진 것은 제주도당 인사들이 민간에 숨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군경토벌대는 사람들 표시가 안 난다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을 자행, 제주도민의 1/8이 죽는 참사가 그해 43일부터 시작된다.

 

  시인은 이 사건을 아기를 우물에 던져 넣은 어머니의 심정으로 풀어낸다. 실제로 아기의 울음소리가 온 가족의 목숨을 빼앗아가기도 했었는데, 김종삼의 「민간인」을 보면 이런 참상이 여실히 나타나 있다. 제주도 도처에서 무조건, 온 마을 사람을 잡아가서 한꺼번에 다 죽이는 학살극이 전개되었다. 아이의 입을 틀어막아도 막을 수 없는 것이 울음소리였다. 그렇게 아이를 죽인 이후 엄마의 삶에 시인은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기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잠시 고통스러워하다 죽었겠지만 살아 있는 엄마에게는 저주스러운 것이 목숨이었다. 미쳐버리면 살 수 있을 테고 안 미치면 자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당시에 있었던 수많은 참상 중 하나를 다루고 있는 이 시의 강점은 시인이 개입하여 애통해 하거나 역사를 해석하지 않은 데 있다. 사건의 일면을 보여준 뒤에 시의 종반부에 가서 환상적으로 처리함으로써 시의 문을 열어놓게 하였다. 43의 비극은 그 시절에 끝난 것이 아님에 초점을 맞춘 이 시는 오늘 우리 모두를 고뇌하게 한다. 그 당시 제주도에서 일어난 동족상잔의 비극을 생각하면서 오늘 하루를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야겠다.

 

[최웅식 시인]

 

  최웅식은 제주도 출신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경희대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경희대 대학원과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예창작전문가과정을 수료했다. 2013년 기독신춘문예 소설이 당선되었고 2017년 제2회 전국 직장인 신춘문예에 소설이 가작으로 뽑혔다. 2023년 아르코 창작기금에 선정되었고 2024년 『제주작가』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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