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78] 이명애의 "밥 먹었소?"
밥 먹었소?
이명애
죽기 아니면 살기로
주린 배 부여잡고
무턱대고 강을 건넌 탈북자
불빛 환한 집 찾아 들어간다
문 열고 내다보던 집주인
강 저편 사람임을 단번에 알아보고
얼른 들어오우 밥 먹었소?
우리 엄마 말고 어느 누가
밥 먹었냐 물어본 적 있었던가!
돼지고기 숭숭 썰어 냄비에 넣고
달걀 아낌없이 툭툭 까서 지지고
시뻘건 양념의 김치
김이 물물 나는 하얀 쌀밥
생애 처음 받아본 진수성찬에
눈앞이 흐려진다
주인이 꺼내준 옷으로 변장하고
변방대를 피해 산길로 접어든다
시내를 향해 밤낮을 걷다
또다시 밀려드는 허기 이길 수 없어
마을 귀퉁이 작은 대문 조심히 두드린다
그 주인 역시 꺼낸 첫 말
밥은 먹었소?
배고파 탈북하는 사람
수없이 맞고 보냈을
옛 고구려 자손들의 따뜻한 한마디
자기 배도 채우기 힘든 저쪽 세상엔
오래전 사라져 버린
우리 민족의 정다운 인사말
—『환승』(곰곰나루, 2025)

[해설]
북한의 안타까운 식량 사정
탈북인 이명애 시인이 2006년 8월에 대한민국에 왔으니 20년이 다 돼 간다. 2권의 시집을 냈지만 아직 하지 못한 북한 이야기, 탈북 과정 이야기, 남한 정착 과정 이야기가 있기에 3권째 시집을 냈다. 한결 세련되고 부드러워졌다. 전에는 아주 날카로웠고 거칠었고 직설적이었다. 그래도 여기 와서 시집을 접해보았나 보다.
탈북인들은 중국과의 국경을 넘어선 이후 ‘재중국 조선족’의 은밀한 도움을 받지 않으면 대한민국으로 올 수 없다. 이른바 조선족 브로커들이 있는데 그들 중에는 착한 사람도 있고 못된 사람도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조선족은 탈북인을 보자마자 “박 먹었소?”라고 묻는 착한 사람이다. 직접 밥을 해주는데, 탈북인에게는 ‘생애 처음 받아본 진수성찬’이다. 감격해서 눈앞이 흐려진다.
또 다른 조선족 집에 갔을 때도 그 집의 주인이 똑같이 “밥은 먹었소?”라고 물어본다. “배고파 탈북하는 사람”의 사정을 잘 알고 있기에 “수없이 맞고 보냈을/ 옛 고구려 자손들의 따뜻한 한마디”에 화자는 감격한다. 북한에서 “밥 먹었소?”나 “진지 드셨습니까?”란 말이 사라졌나 보다. 북한에는 ‘미공급 시기’라고 부른다는 ‘고난의 행군’ 시기에 5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는데 그만큼 많은 사람이 치료를 받지 못해 그 시기에 죽었다. 북한도 그 시기에는 탈북인들을 잡으려 하지 않고 관대하게 대했다고 한다.
‘변방대’는 한ㆍ중 국경 지역에서 국경 경비와 치안을 담당하는 중국의 국경경비대다. 이들에게 뇌물을 바쳐 탈북에 성공한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중국 전역에 아주 촘촘한 전산망이 깔렸고 그 여파로 근년에는 탈북인들이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경상도에서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의 인사말이 “니 밥 무운나?”였는데 북한 국경을 벗어나서 “밥 먹었소?”를 듣게 되었으니 북한의 식량 사정이 가슴 아프다. 북한은 우리 동포가 사는 곳이다. 우리가 매년 버리는 음식쓰레기를 생각하자. 밥과 반찬을 우리는 종종 남기고 있는데 북한에서는 배가 너무나 고파서 국경을 넘고 있다.
[이명애 시인]
1965년 8월 평안북도에서 태어나 1981년 8월 평안남도 개천시 룡암고등중학교를 졸업했다. 2006년 8월 대한민국으로 입국했고, 2016년 2월 숭실사이버대학 방송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7년 12월 《K-스토리》 신인상으로 등단. 2020년 12월 첫 시집 『연장전』, 2022년 10월 둘째 시집 『계곡의 찬 기운 뼛속으로 스며들 때』를 출간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