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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 양동환의 "바둑돌"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 양동환의 "바둑돌"

이승하 시인
입력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39] 

  바둑돌

 

  양동환

 

  차고 매끈하고

  묵직한 감촉

  반상에 떨어지면

  살아 숨쉰다

  말없이 받아들이는

  바둑판의 진동에 깨어나

  살아 숨쉰다

 

  흑백이 어우르면

  서로 생동한다

  생동하는 돌은

  흑백 음양의 흡인에 따라

  생체반응을 일으키고

  율동하며

  가락을 타고 돈다

 

  또한 바둑돌은

  자율을 타고난

  여유와 여백을 바라는데

  돌과 마음을

  사람들은 잘 모르면서

  안다고 떠들어댄다

  바둑돌은 외롭지만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통 속에 묻혀 산다

 

  ―『목놓아 빈 가슴이어』(민서, 2003)

 

  [해설

  바둑돌이 주인공인 시

 

  바둑은 정말 오묘하다. 나무 위에 19줄의 선이 가로와 세로로 그어져 있는데 교차점에다 흰색과 검은색 돌을 놓으면서 대결한다. 바둑판의 규격은 가로 42.42cm, 세로 45.45cm라고 한다. 집을 많이 가지면 이기는데 반집 승의 의미를 바둑을 둘 줄 모르는 나는 전혀 알 수 없다. 상대방과 바둑을 두어 이겼다고 수억을 받기도 하니, 이 또한 신기한 일이다.

 

  이 시의 표현 대상은 바둑돌이다. 돌 하나하나가 숨쉬고 있다. 죽어 있는 바둑돌이 바둑판 위에 놓이는 순간, 숨을 쉬기 시작한다. 이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돌과 마주 놓이면서 서로 생동한다. 또한 생동하는 돌은/흑백 음양의 흡인에 따라/생체반응을 일으키고/율동하며/가락을 타고 돈다고 한다. 마치 어항 속 물고기처럼 살아서 숨을 내쉬는 생명체가 된다.

 

  바둑돌은 숨만 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갖고 있다. “자율을 타고난/여유와 여백을 바라는데사람들은 돌의 마음을 전혀 모른다. 그래서 외롭다. 하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서 오늘도 대결이 끝난 뒤 통 속에 들어가 다음 대결을 기다린다. 마치 경마를 끝낸 말이나 투우를 끝낸 소가 숨을 쌕쌕 내쉬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영화 <승부>를 보았다. 바둑을 둘 줄 안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테지만 몰라도 아주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조훈현 역을 맡은 이병헌이나 이창호 역을 맡은 유아인이나 연기를 정말 잘했다. 각본도 연출도 훌륭했다. 제자한테 패하기 시작하는 스승. 마침내 스승의 집을 떠나게 된 이창호가 트럭 앞 좌석에 앉아 눈물을 흘리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반상의 전투―참 멋진 대결이 아닌가. 이번 대통령선거도 멋진 대결이 되면 좋겠다. 제비와 전신(戰神, 싸움의 신)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조훈현과 돌부처와 신산(神算, 신의 계산)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이창호의 대결처럼.

 

[양동환 시인]

 

  양동환 선생은 바둑과 함께 한 생을 사셨다. 충북 보은 태생으로 충남대 법학과를 나왔고 청주여상에서 교편생활을 하다 80년대부터 바둑전문 관전 기자로 일했다. 월간 『바둑』 출판부장과 ()조치훈후원회 사무국장을 역임했고 명지대와 상명대에서 바둑과 문학 강의를 하기도 했다. 바둑 관련 저서로는 『현대의 명국』『이것이 접바둑이다』『고전명국해설』 등이 있다. 바둑 관련 시들을 모아 2003년에 시집 『목놓아 빈 가슴이어』를 내놓으며 등단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2011년에 향년 77세로 별세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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