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산 책다락 20)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

●책 소개
현대문학의 기념비적 단편집으로, “20세기 소설의 문을 연 작품”이라 불립니다.
이 책은 화려하지 않지만, 인간의 무기력·자각·내면의 순간적 깨달음(에피파니, epiphany)을 가장 섬세하게 포착한 걸작입니다
18세기 중반 더블린은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당시는 아일랜드 왕국이었고 자체의회도 더블린에 있었다. 귀족과 상류층이 도시 개발에 많은 투자를 했으며, 트리니티 칼리지는 최고의 명문 대학이었고, 더블린 성, 국립 극장이 교육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더블린항을 통해 영국, 유럽, 식민지와의 무역이 활발했다. 그러나 19세기 초 영국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 의회가 해산되고 상류층이 떠났으며 경기도 침체하기 시작한다.
19세기 중반에는 7년이나 계속된 감자 역병은 아일랜드 인구를 4분의 1이나 줄이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만든다. 영국은 기근을 아일랜드인의 게으름 탓으로 돌리며 구제하지 않았다. 농촌은 붕괴하고 공동체가 해체되었으며 도시는 슬럼화되고 그들의 언어인 게일어도 거의 사라질 운명에 처한다. 이에 따라 반영감정과 독립에 대한 의지는 더 강해진다.
이러한 상황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더블린 사람들』의 배경이 되는 20세기 초 더블린은 실업과 빈곤의 도시였다. 더블린항은 아일랜드 남쪽의 코크나 북쪽의 벨파스트에 밀려 쇠퇴를 거듭했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카톨릭도 부패하거나 세속화 된다. 『더블린 사람들』은 이러한 상황에 처한 인물 군상들의 갖가지 모습들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15편의 단편소설은 유년기에서 시작해서 청년기 성년기 공공 생활까지 이어지는 전방위적인 스펙트럼을 보여주며, 첫 작품에서 죽음으로 시작해 마지막 작품도 누군가의 죽음으로 끝나며 이어지는 정교한 구조를 보여준다.
성실하게 살아도 패배하는 사이 무력감에 빠진 사람들은 한탕주의에 빠져 남의 집 하녀의 돈을 갈취하거나<두 한량>, 허영심에 이용당하는지도 모르고 영국과 프랑스 것이라면 무엇이든 숭배한다.<경주가 끝난 후> 소풍 나온 아이들을 붙들고 추잡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어른도 있고,<우연한 만남> 그 와중에도 아이들은 자라고 첫사랑도 겪기도 한다.<애러비>
이 세속적인 속물들의 내면에는 스스로도 자각하지 못하는 깊은 수치감이 자리한다. 이런 오욕에 젖어 사는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는 것이다. 그래서 술 생각만 한다. 술을 왕창 마시면 뱃포가 커지며 잠시 동안 자신의 부끄러움을 잊을 수 있다. 술로도 어쩌지 못하는 울분은 아이를 두들겨 패는 것으로 분풀이를 한다.<분풀이> 이 속에서 자랐을 19살 처녀 이블린은 이 모든 것에서 탈출할 기회가 왔지만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다. 필시 움직인들 이 누추하고 속된 삶에서 벗어나기도 어렵다.<이블린>
그러나 삶은 지속되고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한다. 무늬부인은 방탕한 남편을 내보내고 하숙집을 꾸린다. 그리고 성실한 하숙생과 혼기가 찬 딸의 관계가 무르익기를 기다렸다가 덜미를 잡는다. 아마도 그녀는 딸을 시집보내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보다는 더 조건이 좋은 조건의 키어니 부인은 아일랜드 독립을 향한 열망이 뜨거워지면서 민족주의 운동이 일어나자 시류에 편승해 자녀들에게 게일어를 가르치며 자녀의 출세의 도구로 삼는다. <어머니>
이 환멸스러운 세계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인물이 있으니 <가슴 아픈 사건>의 더피씨다. 격정이나 갈망을 모르는 모든 질척거리는 관계와 선을 긋고 수도승처럼 사는 더피씨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 모든 것이 삶이라는 것을 그가 소설의 말미에 깨닫게 되는 것은 자신이 삶의 향락에서 추방된 자이며 철저하게 혼자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은총>에서 구식 외판원 커넌씨의 친구들은 어려운 처지에서도 커넌씨를 도우려고 한다. 함께 간 카톨릭 교회에서 지극히 세속적인 강론을 함께 듣기는 하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려는 마음이 이미 은총 아닐까.
소설 속의 인물들이 각자의 생활에 쫓겨 살더라도 언제나 하나로 모아지는 꿈이 있다. <의원실에 담쟁이 날>에 선거사무실에 모인 사람들은 각자 세속적인 이해관계와 정치적 지향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 파넬을 기억하기위해 담쟁이 빼지를 달고 있다. 아일랜드 자치 운동의 상징인 파넬의 죽음을 기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파넬은 자유에 대한 꿈을 상징한다. 결말에서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는데, 그 마음 자체가 이미 희망이다.
파넬의 죽음 뿐만이 아니라 그 땅에서 살다가 이름 없이 죽어간 모든 사람들, 앞으로 죽을 사람들까지 추모하는 소설이 마지막 작품 <죽은 사람들>이다. 주인공 가브리엘은 적당히 소심하고, 적당히 속물적이며, 적당한 육체적 갈망을 가지고 있으며 적당하게 허영을 가진 남자다. 소설 초반 가브리엘은 자신에게만 몰두해있다가 서서히 타인에게로 마음이 열린다. 아내의 추억과 슬픔을 통해 알게 되는 타인의 신비, 베일에 싸인 영역에 대한 경애의 마음이 차오른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모든 것을 관대하게 용서하는 이해의 눈이 마치 은총처럼 내린다.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가브리엘이라는 것도 의미를 갖은 것으로 보인다. 가브리엘은 구약에서는 지상의 참상을 보고하는 천사이다. 주로 하느님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달하는 전령으로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의 잉태를 알리기도 하고,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라. 주님이 너와 함께 계시다. 이슬람교의 무함마드에게 나타나 꾸란을 계시하기도 한다.
사람이 사는 모습이 너무 비슷해서 놀랍다. 더블린은 120년전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듯한 도시 더블린이기도 하고, 일본의 식민지 조선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도망칠 수 없고, 다른 장소도 없다. 땅에서 넘어진 자 그 땅을 짚고 일어설 수밖에 없다. 우리는 관습에 물들고 일상에 메몰되어 살아간다.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을 조망하게 한다.

□시놉시스
마비된 영혼들의 도시, ‘더블린’을 비추는 거울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은 20세기 모더니즘 문학의 출발점에 놓인 걸작이다. 이 작품은 겉으로는 평범한 15편의 단편집이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내면과 사회적 마비 상태를 통찰하는 거대한 정신의 지도(地圖)가 숨겨져 있다.
조이스는 ‘더블린’을 단순한 도시가 아니라 **정신적‧도덕적 마비(paralysis)**의 상징으로 그린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살아 있지만 살아 있지 않고, 꿈꾸지만 결코 실행하지 못하며, 말하지만 결코 변화하지 않는다.
아이에서 노인에 이르기까지 각 인물들은 타성에 젖은 일상 속에서 스스로의 운명을 깨닫는 짧은 ‘순간의 각성(epiphany)’을 맞이하지만, 그 깨달음은 대부분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반복되는 ‘깨달음과 무력’의 구조가 조이스가 말한 현대인의 실존적 정체성을 드러낸다.
가장 널리 읽히는 마지막 단편 「죽은 사람들(The Dead)」은 전체를 아우르는 정점이다. 주인공 가브리엘은 아내의 과거 사랑 이야기를 듣고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적 무능을 자각한다. 눈 내리는 더블린의 겨울밤, 그는 인간 존재의 유한성과 죽음의 평등함을 인식한다. 눈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 모두에게 내리며, 조이스 문학의 상징인 ‘포용과 깨달음’으로 작품을 마무리한다.
『더블린 사람들』은 한 사회의 병리학적 초상화이자, 인간 영혼의 내면 기록이다. 문장은 단정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그 단조 속에 오히려 인간의 비극이 더 선명하게 부각된다.
조이스는 인간의 연약함과 현실의 구속 속에서도 ‘인식의 빛’을 잃지 않으려는 정신을 그려낸다.
『더블린 사람들』은 15편의 독립된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조이스는 이들을 “한 도시의 영혼을 해부하는 하나의 연작”으로 구상했습니다.
즉, 각각의 단편은 아일랜드인들의 성장, 좌절, 욕망, 각성을 보여주는 삶의 한 단면이며, 전체적으로는 ‘성장에서 죽음으로 향하는 인간의 여정’을 그립니다.
조이스 자신이 말했듯이,
“내가 더블린을 보여주면, 그 속에서 아일랜드 전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
(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 1882~1941)
제임스 오거스틴 앨로이시어스 조이스(James Augustine Aloysius Joyce)는 아일랜드 더블린 출신의 작가로, 소설, 시, 희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모더니즘의 대표적인 소설가로 모더니즘의 전위예술에 기여하였으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인식되고 있다.
제임스 조이스는 1882년 더블린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4km 떨어진 라스가(Rathgar)의 브라이턴 서부 스퀘어 41번지에서 아버지 존 스태니스라우스 조이스(John Stanislaus Joyce)와 어머니 매리 제인 머래이(Mary Jane Murray) 사이에서 첫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정치에 관심이 높았으나 직업적으로 거의 사회 밑바닥을 전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리고 그의 어머니 매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제임스를 포함하여 10명의 자녀들을 낳아 가톨릭 신앙에 따라 키우고자 노력하였다. 제임스는 아일랜드의 예수회가 운영하는 클론고즈 우드 콜리지와 벨비디어 콜리지에 다녔는데 예수회 신부들의 교육은 몹시 엄격하고 절대적 복종과 규율을 강조했다. 이러한 교육 하에 제임스는 신부들의 부당성과 잔인성을 알게 되고 가톨릭 종교에서 멀어지고 그의 작품 속에 비판적으로 묘사하게 된다.
더블린 사람들" by 제임스 조이스 한번에 끝내기 (문학줍줍 책 요약 리뷰 | Book Review)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