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동시 해설] 최휘의 "여름,비틀비틀"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동시 해설] 최휘의 "여름,비틀비틀"

이승하 시인
입력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37 ]

  여름, 비틀비틀

 

  최휘

 

  언덕길 흔들며……비틀비틀……아버지

 

  파란 대문 앞……계단에……아버지

 

  신발 벗고 누워……아버지

 

  불룩한 배 위로 가로등 불빛이……

 

  코를 골고……아버지

 

  우리 아이 좀……그만 아프게……해 주시오

 

  중얼중얼……아버지

 

  골목이 쉿……쉬……

 

  달빛이 어둠을 끌어당겨……

 

  아버지를……덮어 줍니다

 

  ―『여름 아이』(문학동네, 2022)에서

 

중얼중얼……아버지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불쌍한 우리 아버지

 

  제10회 문학동네동시문학상 대상 수상시집에 실려 있는 동시다. 이 동시를 끌어가는 것은 놀랍게도 말줄임표다. 10개 행이 각각 한 연이어서 10개 연으로 되어 있는 것도 색다르다.

 

  아버지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으면 집에 거의 다 와 파란 대문 앞 계단에 신발을 벗어놓고 큰 대자로 누워 잠이 들었을까. 집에까지 비틀비틀 갈지자걸음으로 찾아온 것이 용하다. 코를 골고 있는데 불룩한 배 위로 가로등 불빛이 비치고 있으니 꼴이 말이 아니다.

 

  이 동시는 제6연에 가서 반전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술고래여서 허구한 날 만취해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너무 괴로워서 술을 퍼마신 것이다. 집의 아이가 희귀병이나 불치병을 앓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진다. 소아암, 소아백혈병 같은 건 아닐까? 뇌성마비 아이인가? 아이가 아파도 의사가 아닌 이상 어떻게 해줄 도리가 없다. 그날은 너무 괴로워 술을 퍼마셨나 본데 사실 술이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다. 깨어나면 더 괴로울 따름이다.

 

  마지막 3연은 화자가 확실히 시인이 된다. 아이가 이런 표현을 할 수는 없다. 창피하게도 자기 집 대문 앞에서 널브러져 잠들어 버린 아버지를 달빛이 어둠을 끌어당겨 덮어주고 있다. 가려주고 있다.

 

  동시가 밝고 교훈적일 수만은 없다. 최휘의 동시집에는 「여름, 죽음」이란 것이 있는데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우리는 놀이터에 모였어요라는 시행이 나온다. 「발걸음」이란 동시도 슬프다. 엄마가 없는 내가 친구 태유가 학원이 끝나고 난 우리 엄마 가게로 갈게 안녕하니까 태유도 엄마가 없다면 진짜 더 내 친구라고 솔직하게 생각한다. 아이들 세계라고 비극이 왜 없을까. 슬픔을 응시하게 하는 것, 그것도 동시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휘 시인]

 

  최휘 시인은 경기도 이천 장호원에서 태어났다. 2012년 《시로여는세상》으로 등단했다. 시집 『야비해지거나 쓸모없어지거나』, 동시집 『여름 아이』가 있다. 『난, 여름』은 우수출판콘텐츠 선정 시집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share-band
밴드
URL복사
#이승하시인#최휘시인#동시해설#코리아아트뉴스#코리아아트뉴스시해설#아버지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