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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죽는 연습 _소향 류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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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죽는 연습 _소향 류영하

KAN 편집국 기자
입력
필자의 고향 장수군의 용연정 [그림: 장정심 화가]
필자의 고향 장수군의 용연정 [그림: 장정심 화가]

선조의 은둔지 이었던 두메산골에서 태어난 촌놈이어서 그런지 늘 고향산천이 그립기만 한다. 하루빨리 서울생활 마무리하고 구름과 달, 그리고 별, 소나무와 책 벗삼아 살면서 두번째 인생을 가꾸어 나갔으면 한다
 

꿈 속에서나마 가끔은 고향을 만난다. 이상하게도 국민학교 뒷산에 있는 콩밭옆으로 옥수수가 매년 심어졌던 그 자리는 자주 꿈에 나타나곤 한다. 밭두렁으로 도망치다 넘어져서 친구한테 잡힐 때 꼭 꿈에서 깨고 만다. 왜 그렇게 허전하고 섭섭하기만 한지,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면서 다시 꿈을 꾸려고 해도 온갖 잡념만 가득 해진다.
 

국민학교 시절 청소시간에 학교뒷산을 넘어서 옥수수대 실컷 빨아먹고 큰바위 있는데로 가서 술래도 모른 채 오르락 내리락하고 놀다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담임 선생님한테 혼쭐이 난적이 있다. 낭창낭창한 싸리나무로 6명이 10대씩 맞은 다음에 반성문 쓰고 일주일동안 교실바닥 10줄씩 맡아서 열심히 촛칠하던 생각이 난다. 그때 그 동창생들 지금도 만나면 12살 시절로 돌아가 선생님 얘기를 하면서 배꼽을 잡는다. 몇 해 전 고향에서 뵌 선생님께서는 그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 너희들 과외 수업 빨리 끝내고 나도 맞선보기로 되어 있었다하시면서 약간 미안한 듯 특유의 미소를 지으신 적이 있다.


선생님께 교가를 불러드렸다.

장안산 울을 삼아 펼쳐있는 곳 ...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고향의 논개사당과 관두산, 목욕하던 쏘내기, 원건내 그리고 다시 콩밭, 뽕나무, 옥수수대가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꿈과 영혼 그리고 고향은 늘 함께 한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서 죽는 사람이나 오랜 암투병 끝에 죽은 사람들 모두의 영혼과 꿈이 그대로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하고 바랜다. 모든 영혼들은 고향산천에 머물면서 후손들이 잘 살기를 바래고, 아무것도 필요없는 세상에서 편하게 지내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또 그렇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소망한다.


처자식을 둔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생활하기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 하지만, TV와 신문도 보지 않고 오직 자연과 친구와 처자식들이 들려주는 얘기만 들으면서 책과 함께 여생을 보냈으면 한다.
 

죽어 가는 소나무 [사진 : 류안 사진작가]
장수군 노곡리의 용송이 죽어가는 모습 [사진 : 류안 사진작가]


현실에 쫓겨 정신없이 살다보면 주위 사람들이 갑자기 죽어 가고, 또 멀쩡하던 사람들이 몹쓸병에 걸려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있는 모습들을 종종 보게 된다. 정말 사는게 뭔지, 지금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했는지, 도대체 해답이 없는 생활을 하면서 우주 속에 티끌같은 모습을 거울 속에 비쳐본다. 눈가에 주름살만 보인다. 차라리 거울도 없었던 세상이 부럽다. 우물에 비쳐진 모습만 보고, 누가 잘 생겼는지, 누가 못 생겼는지 분간이 안되는 세상이 더 좋을 뻔 했다. 잘 사는 사람도, 못 사는 사람도 없이 공평하게 공동생활하고 있는 원시족의 삶이 정말 부럽다.


한세상 꿈같은 인생사, 빈손으로 놓아 버릴 수 있음에 더 이상 아까울게 없어라외치고 어느 시인은 자유새가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무소유의 삶은 죽은 다음에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죽음을 기다려 보기로 한다.


어리석을까? 또 어차피 지금까지는 잘 못 살아왔으니까 지금부터 죽기 전까지 잘 살면 되는 것이고, 목표와 희망을 바로잡아 열심히 살면 된다고 생각해 본다. 그러나 목표와 희망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항상 현실에 쫓기면서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인생이구나 하고 후회하면서, 죄를 고백하고 또 죄를 짓고 또 사죄와 후회의 연속을 되풀이 하는 생활을 하다가 어느날 꿈을 꾸었다.
 

너의 인생이 앞으로 3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꿈속에서 어머니가 명령을 하고 금새 사라진다. 꿈에서 깨어나서도 정말 이상했다. 하루종일 멍한 상태에서 보내다가 그 날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서 단전호흡과 명상을 하는 시간에 그 생각을 다시 했다.

"실제로 내가 3일밖에 살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 


실제로 내가 3일밖에 살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할까? 그때부터 나는 쿵쾅대는 가슴으로 깊은 생각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마음이 바빠진다.우선 마누라한테 유언을 하기로 했다.


여보! 정말 미안하오, 애들은 저희들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도와주고, 무엇보다도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해주기 바라오.”


다음에 자식들에게도 비슷한 유언을 해 본다. 앨범을 본다. 현재의 바뀐 모습이 정말 서글퍼진다. 사진 사진마다 좋은 모습들이다. 사진 찍는 순간 순간들이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행복이란 해답은 사진에서만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직장동료 중에는 퇴직한 분도 있고, 이미 유명을 달리 하신 분도 많이 있다. 그나마 사진으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친구들의 모습이 좋다. 다 만나보고 싶다. 우리 8형제자매들이 함께 모인지도 오래됐다. 돌아가신 부모님들의 건강한 모습을 뵈니 가슴이 여민다. 한 분밖에 없는 고모님한테 전화도 자주 못해서 죄송스럽다. 이어도, 독도에도 가보고 싶고, 데이트 하던 동아대 뒷산과 태종대, 에덴공원 그리고 지리산, 한라산도 다시 가보고 싶고, 산채나물비빔밥도 먹고 싶다. 종사발간과 종친회일도 마무리 해야하고, 학교친구들과 깨복쟁이 동무들도 다시 보고 싶다. 친하게 지냈던 직장동료와 선후배도 만나고 싶다.


내가 죽으면 과연 내 옆에서 진정으로 슬피우는 사람은 누구일까? 잘못 살아온 기억들이 후회스럽기 그지없고 모든 것들이 아쉽고 그립기만 하다. 3일동안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보고싶은 사람들 모두 만나고 싶고, 옛날얘기도 실컷 해보고 싶다. 『죽는 연습』이라는 제목으로 소설책도 완성하고 싶다.


세계 유명인사들의 묘비에 새겨진 글들도 생각난다. 한 그루 소나무가 되고 싶었다. 한 없이 사랑하자 하기도 하고...소박한 향기를 은은하게 품어내는 멋있는 사람도 괜찮다. “참 좋은 사람이 꿈을 꾸고있는 자리가 마음에 든다.


애들한테 존경받고 자랑스러운 부모는 되지 못하고, 하고 싶었던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은 마누라한테 미루고 떠난다는 자체가 너무 부끄럽기만 하다. 부모님께 평생 걱정만 끼쳐드리다가 효도 할려고 할 때쯤에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니 가슴이 또 여미어 온다. 묘소에라도 찾아 뵈야겠다.


연극도 더 많이 보고 싶고, 『사랑과 영혼』 비디오도 한번 더 봐야겠다. 사무실의 일도 마무리하고 은행 대부금도 정리해야 한다. 호주 그리고 하와이에도 가보고 싶다. 작가 한말숙의 『아름다운 영가』 라는 책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에 제대로 잠 못 이루고 다시 생각 해 본다.


정말 내 인생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항상 생각하면서 매사에 열심히, 즐겁게, 그리고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남 미워하지 않고 티 없이 평범하게 살아가야 겠다고 다짐해 본다.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서라도 『죽는 연습』을 미리미리 해서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제일 행복하리라는 결론을 얻고 『죽는 연습』을 시작해 보기로 했다.


실제 죽어보기로 작정하고, 아들방에 들어가서 이불을 깔고 죽음이 어떤 것인지 체험에 들어가 본다. 평소에 조금 익혀 둔 단전호흡을 하면서 온몸에 힘을 빼고, 눈은 떴는지 감았는지 모를 정도의 상태에서, 세상만사 다 잊고 맑은 정신 그대로 무덤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숨이 막힌다.

다시 단전호흡을 서서히 시작한다.

다시 숨을 멈춘다. 이제는 영원히 죽는 것이다.

다시 단전호흡을 깊게 시작한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고 호흡을 해야 산다는 생각만 든다.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는 것 같다. 숨 자체가 영혼이다.


다시 서서히 단전호흡을 하면서 3일 동안 해야 할 일을 차례 차례로 시작한다. 못 해 본 일이 너무 많고 다시 해 보고 싶은 일들이 계속 생각난다. 너무 시간에 쫓긴다. 마지막으로 하느님께 기도를 올릴 시간도 없을 것 같다. 정말 바쁘다. 또 공직자로서 해야 할 일이 생각난다.


평소에 가장 존경하고 흠모해 오던 조선 세종때 영의정을 지내시고 청백리의 으뜸으로 꼽히는 하정공(夏亭公) 류관(柳寬) 선조의 행장, 초가에서 우산으로 비를 가리면서 청렴한 생활을 하시면서도 우산도 없이 비를 맞고 지내는 가난한 이웃들을 더 걱정하시던 비우사상(庇雨思想)이 떠 오른다.


큰아이도 공직자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새 숨을 쉬는 자체도 잊어 버리고 다시 깨어나 보니 땀은 흠뻑하고 어느 덧 3시간 10분 정도나 흘렀다. 3시간만에도 이런 세상을 살 수도 있구나 생각하니 무척 편안 해 지고 기분이 날아 갈 것 같다.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보니 모든 별들이 유난하게 총총하고, 별들의 세계가 영혼의 세계처럼 아름답기만 하다. 나도 죽어서 별이 될 수 있을까? 고향의 별들은 더 총총할텐데... 죄 없는 사람은 바라는대로 별이 될 수 있겠지...


공기도 탁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아침밥도 그렇게 맛있다. 마누라도 더 사랑스럽고, 애들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어 한없이 기쁘고 새롭기만 하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매사가 감사 할 따름이다. 사무실에 출근하는 것도, 일하는 그 자체도 재미있다. 모든 사람을 존중하면서 살아가야 겠다고 다짐한다.


다시 살아난 즐거움은 곧바로 활력소가 되어 신바람이 난다. 등산을 해도 힘이 들지 않는다. 오늘은 오드리 헵번의 데뷔시절 사진을 구해서 다시보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도 꼭 들어야겠다.

"늘 바르고 겸손하게, 좋은 꿈만 꾸면서 『죽는 연습』을 완성해보자" 

미리 유언까지 마치고 나니까 욕심도 적어지고 자식교육 문제까지 밝히게 되어서 더욱 홀가분 해 진다. 갑작스런 불행도 별로 두렵지 않고 죽었다가 살아났기 때문에 더 오래 살 것 같다는 좋은 생각만 든다. 평화는 마음에 있고 매사는 一切唯心造라는 진리도 이해가 된다.


또 『죽는 연습』은 혼자서만 해서는 안 되고, 또 사람마다 더 좋은 『죽는 연습』을 통해서 개인과 사회가 밝아 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꽃을 파는 사람은 꽃이름을 전부 외우면서 『죽는 연습』을 할 수도 있고, 각자가 하고싶은 대로 시작하면 된다. 초식동물의 이름과 새 이름, 물고기 이름, 산 이름들을 번갈아 생각하면서 계속 반복 할 수도 있다.
 

죽는연습의 완성은 죽음이지만, 죽기전에 모든 욕심을 줄이고, 항상 내 인생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절박하게 생각한 다음에, 앞으로 목표를 정해서 매사에 최선을 다하면서 주어진 몫만큼 분수껏 살아가면 된다는 소중한 결론을 얻었다.


『죽는 연습』을 해 본 사람은 현실이 너무 아름답고, 죽는다는 자체가 두렵지 않고, 무소유의 세상을 미리 경험 해 보았기 때문에 주어진 인생을 보다 충실하게 마무리 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평소에 제대로 실천하지 못 한 소시민의 고개를 숙인다. 고요 속에서 소용돌이가 꿈틀거린다.
 

내가 이 순간 할 일이 무엇일까라고 다시 생각을 가다듬어 본다.

이 순간에도 할 일이 많아진다.


늘 바르고 겸손하게, 좋은 꿈만 꾸면서 『죽는 연습』을 완성하련다.


 

류영하 작가
류영하 작가

1954년  전북 장수 생. 소향(素香)

인하대(석사), 해양대(해양학박사), 서울대 해양정책최고과정

교통부, 해양수산부, 국토해양부(고위공무원,이사관), 한국항로표지기술원 이사장(공공기관), 대원/해양선박/팬스타그룹 상임고문 역임 [현] 대한민국해양연맹 부총재, 재경장수읍향우회장으로 봉사활동중 [수상]모범,우수공무원대통령표창, 근정포장, 홍조근정훈장 [서] <신해양시대의 미래전략>, <해운항만정책의 역사적변동과 전망> / 시인, <아내가 곁에 있어요> . (문학과 의식 신인상). 수필, <선녀의 꿈> . <죽는연습>으로 제1회공무원문예대전 수필부문 수상

 

KAN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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