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4】김정숙의 '다음 지구'
![다음 지구/김정숙 [사진:강영임 기자]](/_next/image?url=https://cdn.presscon.ai/prod/125/images/20250313/1741822854090_897904355.jpeg&w=828&q=100)
다음 지구
김정숙
잘 먹고 잘살려고 선택한 건 결코 아니다
오른 만큼 흔들리는 불안의 가지 끝에
단둘이 살을 맞대고 젖기만 하는 달팽이
안개 속에 휘 묻혀 감각을 팔았을까
호르몬 링거 맞으며 헛꽃으로 환한 정원
물 먹어 손 놓은 수국 분홍 파랑 틈에서
각자 집 지고 살아도 지금 좋다는 생명체
피운 지 며칠 됐다고 변하는 꽃말에 표류하여
더듬이 가다듬는 생 암수한몸이면 어때요
《제주시조 제33호》 (열림문화. 2024)
시(詩)는 일정한 형식을 갖춰 통합된 언어로 압축하여 표현한 글이다. 그러면 좋은 시는 어떤 시일까? 울림과 새로움,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일 것이다. 그와 더불어 문장이 중의성(重義性)을 가져 경험치가 다른 독자들이 읽었을 때, 마음에 스며들면 좋은 시가 된다.
김정숙 시인의 「다음 지구」는 중의성을 품고 있다. 제목은 생태시로 읽히지만, 여러 번 천천히 읽다 보면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결혼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즘, 사랑은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다. 기후 변화로 사라져 가는 달팽이처럼 너는 너, 나는 나 각자 집 지고 사는 게 편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교류도 싫어한다. 혼자 밥 먹고 혼자 논다. 이러다 다음 지구에서는 사람도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를 모두 가진 생물체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세상에 혼자인 것은 없다.
꽃은 열매를 위해 존재하고 열매는 태어남을 위해 존재한다. 봄은 여름을 위해 존재하고 여름은 가을을 위해 있고 가을은 겨울을 위해 있다. 그리고 겨울은 봄을 위해 참고 견딘다.
수만 년 동안 저 깊은 곳에서부터 둘이 간 길, 그 길을 함께 걸어가면 봄날도 환하게 다가오겠다.

강영임 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