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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성정희의 "명태"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성정희의 "명태"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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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80]

명태

 

성정희

 

고향 떠나 높은 령嶺

동지섣달 칼바람에

스무 번 넘게 반복 훈련시킨다

 

유영하던 바다 똘망똘망 눈동자

노끈으로 아가리 걸고는

온몸이 얼얼해서 더덕북어 되어 간다

 

명절 때나 제사 때

포를 뜨고 전 부쳐

대대손손 이어온 조상님께 바치고

 

이사하거나 새집 지으면

온갖 악귀 틈 못 타게

바짝 마른 몸뚱아리 천장에 매달린다

 

오천 년 이어온 이 땅 민초들

잘근잘근 고된 삶

소주잔 희망 씹는 노가리

 

내장은 창난젓, 알은 명란젓

오장육부 버릴 것 없는 이름

 

명태, 생태, 동태, 북어, 코다리, 춘태, 추태, 망태, 조태, 원양태, 지방태, 강태, 알배기, 먹태, 백태, 홀태, 황태, 깡태, 이리박, 파태, 골태, 선태, 무태어, 조태, 왜태, 매태, 막물태, 은어바지, 섣달바지, 석달바지, 애기태, 더덕북어, 노가리……

 

—『잠옷 같은 그 말』(도서출판 도훈, 2025)

 

온몸이 얼얼해서 더덕북어 되어 간다_성정희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명태 말리는 것을 보고 싶다

  녹였다 얼렸다 스무 번 넘게 반복훈련을 하면서 생선 명태가 아주 맛있는 음식 재료로 변한다. 아아 명태의 이름이 이렇게 많은 줄을 이 시를 보고 알았다. 음식상에 오를 때 온갖 방법으로 조리가 되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명태만큼 온 국민이 사랑하는 생선이 또 있을까.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 코다리! 생태찌개의 구수한 맛! 북어국의 개운한 맛!

 

  그런데 천혜의 어장이었던 동해가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어업 기술은 많이 발전했지만 어자원이 급격히 줄면서 동해를 대표하던 명태는 자취를 감췄고, 오징어마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동해산 명태를 대신한 것은 러시아산인데 우리나라 사람이 오늘날 먹고 있는 명태 요리의 9095%가 러시아산이다.

 

  지구온난화 때문에 동해의 어종이 바뀐 것도 문제지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당시의 오염수를 바다에 완전히 방류해 동해가 오염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성정희 시인은 명태 중에서도 노가리를 오천 년 이어온 이 땅 민초들/잘근잘근 고된 삶/소주잔 희망 씹는 노가리하면서 뭇 백성에 빗대어 표현하였다. 아아, 동해 해안도로를 운전해 갈 때 명태 말리는 광경이 아주 멋진 장면이었는데 이제 다시는 그 장면을 볼 수 없는 것일까.

[성정희 시인] 


제주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9년 격월간 〈한국문인〉 등단, 한국문인협회, 한국가톨릭문인협회, 사임당문학 시문회, 시산문 회원
제12회 〈대한민국독도문예대전〉시 부문 특선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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