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이승하의 "한 땀의 깨달음"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편 38]
한 땀의 깨달음
이승하
한 땀 한 땀
가위로 패턴을 따라
윤곽을 그리며 자른 천 위에
바늘과 실이 춤을 춥니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그 손 끝에 담긴 마음처럼
천은 점점 옷의 형태를 찾아갑니다
하지만 그 순간
깊은 생각에 잠긴 손은
바늘 끝에 찔려 아픔이 스며들고
잠깐의 방심이 교훈이 되어
다시금 집중을 불러옵니다
이제는 알았습니다
옷을 만드는 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성실함이 깃든 예술이라는 걸
한 땀 한 땀 정성을 담아
의복이 완성될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내 손에 남은 성실의 흔적은
그 어떤 옷보다 찬란합니다
과거의 실수는 이제 교훈이 되어
더 나은 길을 비춰주고
그 기쁨을 마음에 새기며
나는 오늘도 성실함을 손에 들고
올바른 삶의 옷을 짓습니다
한 땀 한 땀 진심을 다해
―『새길』(서울지방교정청 사회복귀과, 2024년 겨울호)

[해설]
성실해야 한다
나와 동명이인인 분의 시를 수용자 종합문예지 『새길』에서 보았다. 이 시를 쓴 이승하 씨의 나이, 성별, 죄명, 형량 중 하나도 아는 것이 없다. 분명히 아는 것은 이 시를 쓴 공간이 감방이라는 것이다. 독방이 아니라면 일고여덟 명이 함께 지내야 하는 일반 감방에서 썼을 것이다. 방구석에서 어떤 자세로 앉아서 이 시를 썼을지 궁금하다. 수첩이나 노트에 쓰면서 어떤 기분이었을까. 예전에 재단사였나?
기성복이 그때도 있기는 했지만 예전에는 대체로 양복점에서 재단사들이 옷을 만들었다. 치수를 재고, 가위질을 하고, 시침을 하고, 가봉을 하고……. 양복점에 가면 재단사는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손님의 옷을 만들어주었다. 손님이 자신이 만들어준 옷을 입고 거울 앞에서 미소를 지으면 재단사도 함께 미소를 짓는다. 지금은 보기 어려운,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다.
이승하 씨는 계속해서 ‘성실함’을 얘기한다. 옷을 만드는 기술이 “성실함이 깃든 예술”임을 알고 있고 “손에 남은 성실의 흔적은/그 어떤 옷보다 찬란”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이 교도소에서 “오늘도 성실함을 손에 들고/올바른 삶의 옷을 짓고” 있다. 여기에 와서야 성실함의 미덕을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후회될까. 그때 내가 요행수를 노리지 않고 성실했더라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성실했더라면.
나 이승하는 한 땀 한 땀 진심을 다해 가위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한 땀 한 땀 성심성의껏 바느질을 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그저 대충대충 살아왔다. 동명이인 이승하 씨한테 오늘 나는 크게 배웠다. 부디 이분이 형기를 무사히 마치고 출소하여 한 땀 한 땀 진심을 다해 생을 수놓으면서 살아가시길 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