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출판/인문

[김영희의 수필 향기] 노을 해변 - 구활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구름과 노을은 풍류객의 노리개다. 양나라 도홍경이란 선비는 벼슬을 마다하고 술이 좋아 산속에 숨어 지냈다. 임금이 불러 "산속에 무엇이 있느냐."고 물었다. "고개 위에 흰구름 많지요, 혼자 즐길 수는 있어도 임금님께 갖다 드릴 수는 없지요."라고 말했다. 다음 임금도 벼슬을 주려 했지만 구름과 놀면서 나아가지 않았다. 술독과 함께 살다 죽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친 태양이/ 키 작은 소나무 가지에/ 걸터앉아 잠시 쉬고 있다./ 그 모습을 본     한 사람이/ '솔 광光이다' 큰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좌중은 박장대소가 터졌다/ (중략) 술잔 몇       순배 돈 후/ 다시 쳐다본 그 자리/ 키 작은 소나무도 벌겋게 취해 있었다/ 바닷물도 눈자위가 불     그족족했다. 

                                                                                        - 허형만의 시 <석양> 중에서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었으면 참 좋았겠다. 
 

    나는 노을 지는 해변에 앉아 마음 맞는 친구와 이런저런 얘길 나누며 막걸리 한 잔 마시는 걸 소원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된다. 

  

    수첩에는 서해 일몰 명소들이 숱하게 적혀 있지만 붉은 줄이 그어진 곳은 몇 곳 없다. 언젠가는 찾아봐야 할 곳이지만 생애 중에 그게 가능할 지 의문이다. 나열하면 백령도 두무진, 강화 석모도, 화성 궁평리, 당진 왜목마을, 태안 꽂지 해변, 서산 간월암,  서천 마량리, 부안 채석강, 영광 백수해안, 신안 도리포, 무안 오강섬, 함평 돌머리, 신안 홍도, 하의도 큰바위 얼굴 해변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얼추 다녀오긴 했지만 느긋하게 앉아 석양주 한 잔 마신 곳은 그리 많지 않다. 

 

    좋은 환경을 찾아 나서는 것을 경제학자들은 '발로 하는 투표(Vote with feet)라고 한다. 

   

    일출과 일몰은 태양이 주인공인 하루에 일어나는 연극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해돋이는 감동적이지만 해넘이는 너무 황홀하여 신비적이다. 아마 종교가 생성된 시간대는 서쪽 하늘을 주황으로 물들이는 저녁 무렵이 아닌가 싶다. 
 

    해가 지면 어디선가 조종 소리가 들린다. 태양 앞에서 빛을 발하던 모든 물상들은 해가 지는 순간에 검은 옷으로 갈아입는다. 이 시간만큼은 기도처럼 엄숙하다. 이 세상의 모든 제사장과 사제 그리고 성당의 종지기까지 검은 옷을 입고 의식을 주관하는 것도 일몰의 신비와 분명 관계가 있을 것이다. 아침 하늘의 붉음은 대낮을 불러오지만 저녁 하늘의 붉음은 어둠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어둠의 장막을 걷는 일출은 새날 새 아침을 여는 종소리 같고 그것은 희망과 용기로 가득 차있다... 아침 해가 수평선 위로 뛰어오를 땐 불끈하고 반 박자 빠르게 도약하지만 서西로 지는 저녁 해는 목숨이 임종하듯 그렇게 자지러진다. 


    노을이 아름다운 석양 풍경에 갇혀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겸허해진다. 눈이 부신 태양도 괘불걸이에 매달린 탱화처럼 서쪽 하늘에 걸리면 바로 열반에 들어야 한다. 그 황홀한 노을의 붉음도 결국 어둠의 색깔인 검정으로 환원하고 만다. 이 얼마나 장엄한 광경인가.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 적어 둔 노을 해변으로 자주 찾아가야겠다. 하루의 임종을 조문하면서 막걸리 한 잔 마시며 슬픔에 젖어봐야겠다. 

 

 *괘불: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던 대형 불교 그림   

노을 해변 - 구활 

[작가의 생각]

 

글쓴이는 노을 지는 해변에 앉아 마음 맞는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막걸리 한 잔 마시고 싶은 소원을 가지고 있지요.  

 

    구름과 놀고 노을과 놀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픈 것은 모든 사람들의 소원이겠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고, 자식 키워야 되고, 뜻대로 되지 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자신의 일을 충실히 하면서 드문드문 그런 날을 갖는다면 그나마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일출과 일몰은 보고 또 보고 또 봐도 매일 새롭고 질리지 않으니 어찌 된 일일까요? 

    붉은 태양이 바다 위로 떠오르는 장면은 늘 가슴을 뛰게 하고, 주황빛으로 서쪽 하늘을 물들이며 서서히 사라지는 노을은, 넋을 놓고 한참을 서서 바라보게 하는 황홀함에 빠지게 합니다. 

   

    새 아침의 해가 떠오를 때는 활활 타오르는 태양의 불빛이 구름 가장자리를 불태우고 바닷물은 짙은 황금물결로 춤추며, 높이 떠오른 한낮의 태양이 비추는 강물은 은빛 물결로 출렁이고, 산 너머로 기우는 노을은 온 몸으로 산을 품은 채 산 뒤에서 노랗게 주황빛으로 후광처럼 쏟아집니다. 소나무 가지에 걸쳐 있는 태양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빛을 뿜어 '소나무를 비추는 빛光(솔 광)'이 됩니다. 

  

    '빛 광光'은 '횃불을 사람이 머리 위로 들어서 비추는 것'으로, 불이 빛을 내어 세상을 밝히는 것, 어둠이 바뀌어 환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빛은 희망의 의미도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이 비추는 곳으로 나아감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작가가 버킷 리스트로 써 놓은 서해안의 노을이 아름다운 많은 곳을 버킷 리스트로 적어 놔야겠습니다.  몇 군데 가보았을 뿐, 꿈을 마음속에 담아 놓고 실천을 못하고 있는 현실이 조금 안타깝지만 그래도 가끔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것은 '발로 하는 투표(Vote with feet)'라고 합니다. 

    부지런히 발을 움직여 새로운 곳에 발자국을 남기며 행복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김영희 수필가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래피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 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당선 - 공저 < 내 인생의 어부바>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 공저 <불의 시詩 님의 침묵>

한국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수상 - 공저 <김동리 각문刻文>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수필가 김영희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김영희수필향기#구활수필#수필향기#수필읽기#노을해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