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김영희의 수필 향기] 신하 휴대전화 앞으로 오세요 - 김분희
문학/출판/인문

[김영희의 수필 향기] 신하 휴대전화 앞으로 오세요 - 김분희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수정

  사거리 건널목 바로 앞 공터에 우유갑 같은 건물이 들어섰어요.  바로 앞에는 자동차 4대를 주차할 수 있도록 하얀 페인트 줄이 그어져 있었지요. 


- 여기 뭐가 들어서려나?

-그러게 말이야. 커피숍일까? 


  지나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어떤 가게가 들어설지 궁금해 했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궁금증이 해소되었어요. '신화 휴대전화'라는 간판이 걸렸거든요. 어수선하던 건물 안에는 최신형 스마트폰이 가지런히 전시되기 시작했어요. 새 물건이 담겼던 박스는 문 앞에 툭툭 던져졌어요. 사장은 부지런히 쓸고 닦느라 바빴지요. 
 

-저, 사장님. 이 상자 가져가도 될까요?

  문 앞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어요. 

-네?

  먼지를 쓸어 담던 사장은 무슨 소린 가 하여 뒤돌아봤지요. 

-이, 이 상자... 

  
사장은 잘 정리된 종이 상자 몇 개가 담긴 녹슨 손수레를 보고 한눈에 폐지 줍는 할머니란 걸 알아차렸어요. 
 

-네, 할머니. 가져가셔도 돼요.
 

  말이 떨어지자마자 할머니는 손수레를 세워두고 서둘러 박스를 납작하게 밟았어요. 할머니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의 조급함으로 서둘러 일했어요. 눈을 껌뻑이며 보고 있던 사장도 묵직한 발로 쿵쿵 박스를 밟았어요. 
 

-아휴, 고마워요.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힘겹게 세우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가게 청소하고 나서 정리하려던 참인  걸요, 뭐.

  
사장은 리어카 옆으로 눌린 박스를 옮겨놓고는 가게로 급하게 뛰어 들어갔어요. 할머니는 차곡차곡 상자를 쌓았어요. 그리고 떨어지지 않도록 낡은 고무줄로 묶고 있었어요. 


-할머니, 여기 개업 떡이에요. 맛있게 드세요.

-아니에요. 상자만도 고마운데...

 
 사장은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넉넉하게 담은 개업 떡을 올려주고 돌아섰어요. 가게 문 앞에서 할 말이 생각난 듯 휙 돌아섰지요. 


-월요일마다 상품이 들어와요. 상자 가지러 오세요. 할머니.

 

[이미지:류우강 기자]

할머니는 몇 번이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무거워진 수레를 돌렸어요.  폐지를 모아 파는 할머니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손녀와 함께 지하 단칸방에 살고 있어요. 일찍 철이 든 손녀는 밥상에 식은 밥과 까만 콩자반만 올라와도 불평 한 번 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뜨끈한 개업 떡이 식기 전에 손녀에게 먹이고 싶었어요. 폐지를 줍던 골목을 지나쳐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 도착했어요. 


- 할머니, 오셨어요?

  
  책상 앞에 앉아 숙제 하던 손녀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서둘러 나갔지요. 


-그래. 여기 먹을 것 가져왔다.

  
오랜만에 할머니와 손녀는 저녁으로 떡을 먹었지요. 할머니는 손녀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른 것 같았어요. 


 -할머니 더 드세요. 

-나는 오는 길에 먹었다. 너나 어이 먹어.

  
할머니가 안 드시니 손녀도 덩달아 떡을 내려놨어요. 할머니는 체했는지 가슴을 세게 치며 흡흡 소리를 냈어요. 눈치 빠른 손녀는 얼른 부엌으로 가 물 한 그릇 떠왔지요. 


-어으, 이제 소화 됐나 부다. 

 
 손녀는 가슴을 쓸어 내리는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가 안쓰러워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할머니는 등교하는 손녀를 챙기고는 서둘러 '신하 휴대전화' 앞으로 갔어요. 사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가게 앞에 알부자로 알려진 짠돌이 영감이 있지 뭐예요. 자전거 뒤에는 붉은 끈으로 묶여 있는 납작한 상자들이 보였어요. 


-어, 저기...

 
 할머니는 허망하게 한 손을 올려 허공을 향해 저었어요. 신호가 바뀌자마자 절룩거리는 다리를 끌고 급하게 가게 앞에 도착했어요. 짠돌이 영감이 지나간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지요. 매서운 바람이 휙 지나가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졌어요. 가게 앞으로 가 문을 두드렸지요. 


-네, 할머니. 오셨어요? 

  
  가게 사장이 할머니를 보고 반갑게 인사했어요. 


-저, 상자...

-아, 상자요. 여기 묶어뒀는데, 어디 갔지? 

  
사장은 한 손으로 문 앞을 가리키다 다른 손으로 머리를 멋쩍게 긁었어요. 


- 다른 사람이 가져갔나 봐요, 할머니. 이제 가게 안에 둬야겠어요.  할머니 오시면 내드리게.

-고마워요.
 

  할머니는 힘없는 목소리를 내어놓고 서둘러 돌아섰어요. 사장은 할머니가 골목길로 들어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어요. 


-  춥다. 문 닫아.

- 할머니를 알아?

- 어. 이 동네에선 유명하지. 


  사장 지인은 할머니가 이 동네 최고 부잣집에 시집왔는데, 술 주정뱅이 남편이 재산을 탕진하고는 추운 겨울 길에서 동사했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놨지요. 할머니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남편처럼 술 주정뱅이가 되더니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라는 것과 며느리가 집을 나가 손녀를 돌보며 어렵게 산다는 거였어요. 


 -아이고, 이런. 할머니 너무 안됐다. 

-그렇지. 내가 그 아들과 어릴 적 친구였어. 

-아하. 그래서 사정을 잘 아는구나.

-할머니가 만들어준 떡볶이가 아직도 생각나. 정말 맛있었거든. 시중에 파는 떡볶이랑은 차원이 다르다니까. 

-그래? 어떤 맛인데? 


사장 지인은 고급스러운 떡볶이의 맛을 맛깔나게 설명했지요. 이야기만 들어도 저절로 침이 고일 듯했어요. 
 

-어느 날 할머니가 떡볶이 만드는 모습을 지켜본 적 있었거든. 그래서 잘 알아. 우선 버섯을 비롯해 각종 야채가 들어간 전골을 끓였어. 나는 속으로 떡볶이가 뭐 저렇게 허연가 하고 생각했었거든. 국 그릇에 간장을 절반이 안 되게 부었어. 그 위에 갓 빻은 마늘을 살포시 얹고 다시마와 새우를 넣어 불 옆에 두었어. 생각해봐. 까만 간장에 빨간 새우와 뽀얀 마늘에 다시마까지 넣어둔 모양 말이야. 한 폭의 그림 같았지. 
 

  사장 지인은 탁자에 올려둔 오렌지쥬스를 꿀꺽 꿀꺽 삼켰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다음은?

-아휴, 재촉하기는. 완성된 육수에 방금 말했던 그 재료가 우러난 간장을 넣어 한소끔 끓였어. 그러고는 어묵을 잘라 그릇에 담더니 뜨거운 물을 부었어. 고추장에 끓고 있는 육수를 조금 넣어 묽게 섞었어. 기름을 뺀 어묵에 넣어 버무렸지. 나는 반짝반짝 윤나는 어묵 반찬이 참 맛있겠다고 생각하며 군침을 흘렸던 기억이 나. 그런데 어묵 반찬이라고 생각했던 건 내 착각이었어. 잠시 후 끓고 있는 육수에 쏟아 넣었거든. 떡볶이 재료를 일일이 양념이 배도록 밑간을 해서 넣었던 거지. 

-대단한 정성이다. 떡볶이라고 얕보았다간 큰일 나겠어. 

  
  사장 지인은 한참을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어요.


- 얘기만 들었는데도 군침이 돈다. 안 되겠다. 오늘 저녁 메뉴는 떡볶이, 어때?

-좋지. 

  
  그런데 사장은 웃으면서도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정이 생각나 마음이 무거웠어요. 

 

-저기요.
 

  가게 문 앞에는 솜이 가득 든 바지와 점퍼를 입고 귀까지 덮는 모자를 쓴 할아버지가 서 있었어요. 

-손님 들어오세요

-아니, 그, 청할 게 있어서... 

-네? 무슨 일이신가요? 

-저기 저 포장마차 말이오. 
 

  할아버지는 신하 휴대전화 앞 주차장 끄트머리에 세워둔 낡은 포장마차 수레를 가리켰어요. 


-여기 며칠만 두면 안 될까요?

-음. 여기는 손님들 주차하는 곳인데... 무슨 일이신가요? 

  
할아버지는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장사를 했는데, 미국에 사는 아들네 한테 가야 하는 사정을 말했어요. 포장마차를 팔려고 하니 사는 사람이 없어서 난감하다며,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사거리에 세워두고, 현수막을 붙여 놓으면 금방 나가지 않을까 싶다고 했어요. 사장은 번뜩 폐지 줍는 할머니가 생각났어요. 


-저, 포장마차 얼마에 파실 건가요?


  할아버지와 사장은 포장마차 매매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주고받았어요. 사장이 폐지 줍는 할머니를 얘기했더니 할아버지는 깊은 생각에 빠진 듯 고개를 여러 번 끄덕였어요. 할아버지는 큰 결심을 한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어요. 


-자,  그럼, 그렇게 합시다. 손해 보는 장사긴 한데, 언제 임자가 나타날지 모르기도 하고, 또 젊은 사람이 참 속이 깊어 나도 좋은 일에 동참하고 싶네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할아버지.

  사장은 할아버지 손을 덥석 잡으며 고마움을 표시했어요. 

 

  지인은 사장이 포장마차를 인수한 이야기를 듣더니 내 일처럼 기뻐했어요. 지인과 사장은 함께 포장마차를 설치했어요. 단단하게 마무리한 포장마차는 신하 휴대전화 주차장의 절반을 차지했어요. 
 

-너 장사하는데 괜찮겠냐?

-당연히 괜찮지. 하하하.
 

  사장과 지인은 행주를 들고서 포장마차를 새롭게 단장하는데 열심이었어요. 마침 폐지 줍는 할머니가 손수레를 끌고 지나갔지요. 사장은 할머니를 한눈에 알아보고 큰 소리로 외쳤어요. 

-할머니. 할머니!
 

  가던 길을 멈춘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힘겹게 세우며 뒤돌아봤지요. 

사장은 시원스럽게 반짝이는 이마를 앞세우고 발그레한 미소로 할머니에게 달려갔어요. 

 

- 김분희의 '신하 휴대전화 앞으로 오세요' 

폐지를 줍는 할머니 [ 이미지 :류우강 기자]

  [수필 읽기]

 

   따뜻한 마음을 지닌 휴대전화점 사장님이 할머니께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 폐지를 모았다가 드리고, 또 좋은 기회에 떡볶이 포장마차 가게를 하실 수 있도록 돕는, 흔치 않은 훈훈한 이야기다. 

  

  길을 가다가 폐지 줍는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자주 만나게 된다. 보통 칠십이 넘고 팔십도 넘으신 것 같은 어르신들이 손수레에 박스를 담아 끈으로 묶고, 손수레를 끌고 가시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혼자 끌고 가시기에는 무거울 것 같은 경우도 많이 있어서 길을 건너시거나, 조금 경사진 곳을 올라가야 할 때는 뒤따라가며 조용히 밀어드리기도 한다. 

 

  많은 분들이 젊은 날 열심히 살아오셨지만 어떤 이유로 든, 연세가 많이 되어서 까지 힘들게 일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분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노인빈곤률이 심각하다고 한다. 한국의 부모들은, 젊어서는 아이들 키우는데 최대한 힘을 썼고, 자식들 커서는 직장에 들어가도록 최대한 교육시키고 뒷바라지하며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라고 한다. 부모는 힘들게 살았지만, 자식 만큼은 좀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사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의 현주소다. 그래서 자식들 뒷바라지 하는데 돈을 다 쓰고, 정작 부모 자신들 미래를 위해서 남겨진 것은 별로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는 동안 나이가 많이 들어 이제는 더 이상 일을 해서 돈을 벌기는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이다. 
 

  옛날에는 자식이 부모를 봉양했지만, 이제는 자식들이 부모 봉양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부모들은 재산이 많지 않는 한, 경제적으로 생활고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가진 것이 있으면 자식에게 다 주지 말고, 남은 여생을 살 수 있도록 끝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도 들린다. 가진 것이 많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으니 최소한의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하겠다. 
 

  젊은이들 일자리 문제와 노인 빈곤 문제가 큰 사회문제다.

 

  어떻게 문제를 풀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김영희 수필가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래피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 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당선 - 공저 < 내 인생의 어부바>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 공저 <불의 시詩 님의 침묵>

한국문학상 수필 최우수상 수상 - 공저 <김동리 각문刻文>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작가회의회원

수필가 김영희 기자
share-band
밴드
URL복사
#김분희수필가#김영희수필향기#수필읽기#코리아아트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