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영임의 시조 읽기 5】김강호의 "녹슨 문고리"

녹슨 문고리
김강호
어둠이 굴려내는 보름달의 굴렁쇠가
지상으로 굴러와 문에 턱, 박힐 때쯤
뎅그렁 종소리 내며 내간체로 울었다
원형의 기다림은 이미 붉게 녹슬었다
윤기 나던 고리 안에 갇혀 있던 소리들이
키 낮은 섬돌에 내려 별빛으로 피고 졌다
까마득한 날들이 줄지어 둥글어져
알 수 없는 형상으로 굳어 있는 커다란 굴레
어머니 거친 손길이 다시 오길 기다렸다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 (다인숲. 2024)
![어머니 거친 손길이 다시 오길 기다렸다_김강호 [사진 : 류안 사진작가]](https://cdn.presscon.ai/prod/125/images/resize/800/20250319/1742370920871_258029241.webp)
사랑하는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내고 그를 그리워하는 일은, 밤길을 걸어보는 일이다. 적막이 내려앉은 어둠은 새벽의 빛을 잉태하며, 밑바닥에서 번져오는 울음을 불러들인다. 못되게 굴었던 일,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뒤늦은 후회가 물결치며 가슴 앓이로 무너졌을 것이다. 어느 날 문득 올려다본 하늘에 떠있는 보름달은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일 수도 있겠다.
김강호 시인의 「녹슨 문고리」에서 보름달이 굴렁쇠로 형상화되며 기다림은 둥글고 둥글어져 결코, 밖으로 벗어날 수 없는 커다란 굴레가 돼 버린 듯하다.
어머니가 여닫던 윤기난 문고리는 더 이상 손이 닿지 않아 섬돌에, 붉게 녹슬어 내려앉는다. 함께 나눴던 추억은 가까워지다 멀어지고 멀어지다 가까워진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다가옴은 없고 문고리에 묶여 그리움만 커져간다. 뎅그렁 종소리 내며 오가던 어머니의 거친 손길은 달빛 아래 수많은 색들로 태어나고 스미고 번지겠다.
오늘 고요 내려앉은 밤길을 걸어보라. 어떤 고해성사가 내 품으로 찾아드는지.
강영임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
[편집자주 : "강영임의 시조 읽기" 코너는 매주 수요일 아침에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