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 향기] 갈지자걸음 - 나윤옥
대학교를 졸업한 지 20년쯤 되었을 때다. 동창회 모임이 있다는 기별을 받았다. 학교 다닐 때 친구들과 두루 잘 어울리지 못했던 터라 머뭇거리는데, 4년 내내 단짝이었던 친구가 가자고 한다...
한두 잔씩 술이 들어가더니, 취기 오른 친구들이 삼삼오오 속닥거리기 시작한다.
"ㅇㅇ씨, 내가 옛날에 학교 다닐 때 ㅇㅇ씨 좋아했던 거 몰랐죠?"
"그랬어요? 왜 그때 말하지 그랬어요?"
이런 달달하고 너그러운 말들을 여기서도 저기서도 주고받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단짝이던 내 친구와 나에게는 아무도 그런 유의 달콤한 기억들을 털어내는 사람이 없다. 나는 젓가락으로 남은 반찬들을 뒤적거리고만 있었다. 학창 시절, 내성격이기도 했지만 턱없는 오만함도 있었음을 고백한다. 특히 남학생들과 말을 나누는 일이 거의 없었다.
하여간 졸업하고 처음 동창들을 만난 그날 나는 쓸쓸했다.
그날 이후 나는 꽤 진지하게 나를 돌아보았다.
사회에 첫발을 디뎠을 때 받은 편지가 생각났다. 첫 발령으로 시골에 내려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간호사인 친구가 '나이트' 근무 중 쓴다며 붉은 볼펜으로 쓴 편지를 보내왔다. 대여섯 장의 긴 편지였다. 따뜻하고도 엄한 내용이었다. 혼자 지내도 잘 먹을 것, 많이 웃을 것, 특히 누구와도 잘 지내고 사람들에게 무조건 친절하라고 친구는 편지에 썼다. 그때 그 편지지에 빼곡하게 쓴 빨간색 글씨들은 따뜻한 불빛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반 때 한 반이었던 그 친구는 말이 별로 없었다. 손잡고 길을 갈 때,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잡고 입던 손에 힘을 주는 것으로 대답을 하는 친구였다. 그동안 말로 표현하지 않았던 애정과 염려가 붉은 글자에 꽉 차 있었다...
나는 성인이 되었고 시골중학교의 선생이 되었다. 어느 날 장터에서 동료 교사와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누군가와 세게 부딪히는 일이 있었다. 부딪힌 내 팔을 부여잡던 순간, 옳지, 이럴 때다, 어릴 적 보았던 그 여자애 같은 표정을 지어야 해, 하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다.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보는 순간, 어린 시절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결심을 했던가를 깨달았다. 나와 부딪힌 남자는 보자기에 싼 도시락통을 흔들며 비틀거리고 가는 취객이었다. 남루한 옷차림, 고된 노동을 하고 술 한잔으로 하루를 위로하며 집에 가는 길인 모양이었다. 그를 향해 그 옛날 나를 밀친 아홉 살쯤의 어린애 흉내를 내다니, 그 어리석은 결심이 부끄러워 실소가 났다.
유기체들은 결심을 하는 순간 그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는데, 의식 저 안에 웅크리고서 나를 따라 온 결심은 단단하고 비뚤어진 방어벽을 쌓았던 모양이다, 방어벽은 뒤집어 놓으면 공격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께서, 너는 이담에 국어 선생을 하면 아주 좋은 선생님이 될 거야, 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문학'을 가르치는데 대한 의미를 말씀하신 건데, 나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4년을 한 강의실에서 공부했던 사람들 중 아무도 나를 친근하게 기억하지 않는 것은 내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동창들과 만난 이후에 잘 웃기, 칭찬하기, '내 탓이오'로 생각하기 등을 머릿속에다 현수막처럼 걸어놓았다. 그러나 그 현수막은 수시로 심하게 펄럭였다. 흔들거리는 자아 때문이다. 나와 함께 자란 내 안의 그 '어린애'도 불쑥불쑥 나타나곤 했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생기면 결심이고 뭐고 이기적 방어가 튀어나와, 곧잘 가꾸어 나가던 어진 페르소나가 부서지곤 했다.
좋은 사람이 되자는 결심과 노력은 끊임없이 하건만 감정과 이기利己가 갈지자로 왔다갔다하는 내 삶의 걸음. 남들도 이런 흔들거리는 자아로 괴로울까? 어디 그뿐인가, 싫은 것을 드러내고야 마는 내 몹쓸 정직함도 나를 괴롭힌다.
모짜르트를 보며 고통스러워했다는 살리에르처럼 나는 갈지자로 흔들리는 내 허약한 걸음 때문에 자주 열패감에 젖는다.
잘 살기란 왜 이리 어려운가?
* 페르소나 :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쓰는 가면.
사회적 상황에서 타인에게 보여주는 외적인 모습, 사회적 가면
- 나윤옥의 '갈지자걸음' 중에서

[수필 읽기]
'갈지자걸음'은 마치 술에 취해 왔다 갔다 하며 걷는 것처럼, 좌우로 비틀거리며 걷는 걸음이다.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갈지자걸음'처럼 '갈지자마음'일 때도 있다.
걸음걸이가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하겠다 거나 저런 경우에는 저렇게 하겠다고 평소에 마음 먹은 것이, 어떤 상황이 갑자기 닥쳤을 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고 다르게 표출될 때도 있다.
작가는 누군가와 부딪힐 때, 예전에 어린아이와 부딪혔을 때 보았던, 아무 말 없이 흘겨보던 표정과 동작이 떠오르곤 한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나도 그 아이의 표정처럼 상대방을 쳐다보겠다고 생각했었다.
작가가 성인이 되어 대학 동창들을 만나고 온 후로, 그들이 자신을 대하는 무관심한 태도에서, 그동안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살아왔을까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시골학교 선생이 되어 동료 교사와 길을 걷다가 누군가와 세게 부딪히는 일이 있었고, 그때 그 아이의 표정이 떠올랐고, 매서운 표정을 지으며 뒤를 돌아 보았는데, 부딪힌 사람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가는, 하루의 고된 일과를 끝내고 술 한잔으로 쓸쓸한 마음을 위로하며 집으로 가던 사람이었다. 처음에 먹은 마음이 예상 밖의 상황에 어긋나버린 것이다.
우리는 하나의 상황에서도 여러가지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우리는 많은 마음의 갈등을 겪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맞을까 저렇게 하는 것이 맞을까, 나는 이렇게 하고 싶은데 그렇게 해도 될까 안될까, 이게 좋을까 저게 좋을까 하는 등등의 수많은 갈등 속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나도 길을 가다가 부딪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살짝 부딪히기도 하고, 갑자기 세게 부딪히기도 한다. 지나가다가 살짝 부딪히는 경우에는 서로 웃으면서 '죄송합니다' 하고 가볍게 지나칠 수 있다. 서로 부딪혔을 때 죄송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말하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부딪히고도 그냥 말없이 지나가는 것도 문제인데, 세게 부딪혔을 때는 거의가 뒤에서 당하는 경우가 많다. 걸어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세게 부딪히며 지나가는 것이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지나친다. 그럴 때는 사실 은근히 화도 난다. 그런데 그런 경우 상대방이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하면, 그런대로 아픔을 어루만지며 참고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안 하는 경우도 꽤 많다.
앞을 보고 가던 사람은 모르는 상황인 거고, 뒤에서 오는 사람은 앞에 가는 사람을 보고 지나가는 것이므로 당연히 죄송하다는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앞 사람을 봤으니까 피해서 가면 될 일이다.
나도 가끔 겪는 일이니 외국인들이 느끼는 '한국사람들의 불쾌한 경우'에 대해 당연히 상대를 배려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지사지라고 하지 않나. 만약에 누군가가 나를 세게 치고 간다면 내 기분이 어떨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한 편이다. 몇 가지만 서로 배려한다면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평소에 간격을 두고 걷고 부딪히지 않도록 서로 조심하자.
웃는 얼굴에 복이 온다고 한다. 잘 웃기와 칭찬하기를 생활화하여 좋은 사람이 되자.
김영희 수필가,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 기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수상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