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서정주의 "바다"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18]
바다
서정주
귀 기울여도 있는 것은 역시 바다와 나뿐.
밀려왔다 밀려가는 무수한 물결 위에 무수한 밤이 왕래하나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 길은 결국 아무 데도 없다.
아― 반딧불만 한 등불 하나도 없이
울음에 젖은 얼굴을 온전한 어둠 속에 숨기어 가지고…… 너는,
무언의 해심海心에 홀로 타오르는
한낱 꽃 같은 심장으로 침몰하라.
아― 스스로이 푸르른 정열에 넘쳐
둥그런 하늘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 바다의 깊이 위에
네 구멍 뚫린 피리를 불고…… 청년아.
애비를 잊어버려
에미를 잊어버려
형제와 친척과 동무를 잊어버려,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려,
아라스카로 가라, 아니 아라비아로 가라, 아니 아메리카로 가라, 아니 아프리카로 가라 아니 침몰하라. 침몰하라. 침몰하라!
오― 어지러운 심장의 무게 우에 풀잎처럼 흩날리는 머리칼을 달고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
눈 뜨라. 사랑하는 눈을 뜨라…… 청년아,
산 바다의 어느 동서남북으로도
밤과 피에 젖은 국토가 있다.
아라스카로 가라!
아라비아로 가라!
아메리카로 가라!
아프리카로 가라!
ㅡ『사해공론』(1938년 10월호)에서

[해설]
우리의 꿈을 저 바다 너머에서
남성 화자의 힘이 넘쳐나는 시, ‘웅혼한 기백의 정서’와 ‘진취적 기상의 정서’를 노래한 시는 우리 문학사에서 흔치 않았다. 일제강점기 동안 우리 민족은 조국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방도가 없어 이국땅으로 남부여대男負女戴하여 줄줄이 이주한다. 징용과 징병, 식량 공출과 창씨개명 강요……. 특히 이 시가 씌어진 1938년은 어떤 해인가. 일본 육군성이 조선에 지원병제도 실시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래서 조선육군지원병령이 공포되었고 조선교육령이 개정 공포되었다. 평양의 숭의학교와 숭실학교가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되었다. 조선총독부는 국가총동원법을 공표하였고 학교근로보국대 창설을 지시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는 기본적인 권리를 전부 박탈당하는 암담한 시대를 맞게 된다. 한반도 전부가 일제의 전쟁 수행을 위한 병참기지가 돼 가고 있었다.
바로 그 무렵에 쓴 시다. 미당은 이 시에서 무수한 밤이 왕래하는 바다가 어둡기만 한 이 나라의 운명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태풍 때문인지 장마 때문인지 해가 뜨지 않는데 시인은 바다를 떠나지 못한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결 소리만 들리는 바다, 반딧불만 한 등불 하나 보이지 않는 바다. 그 바다가 둥그런 하늘을 머리에 이고 웅얼거리고 있다고 한다. 시인은 암담한 바다를 보며 탄식한다. 길은 항시 어디로나 나 있는데 길은 결국 아무 데도 없다고 하면서. 발길을 옮기면 다 길이건만 발길을 옮길 수가 없으니 길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저 바다 넘어 어디로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 바로 식민지 지배의 한계상황에 대한 인식이 아니고 무엇이랴.
‘해심海心’은 바다 한가운데이다. 그러니까 “무언의 해심”은 파도가 잠자는 고요한 바다 한가운데가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하는 무심한 바다 한가운데이다. “무언의 해심에 홀로 타오르는/ 한낱 꽃 같은 심장으로 침몰하라”는 모험의 길을 일단 떠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한 부분으로 이해된다. 항해 도중 어떤 천재지변을 만나 죽게 되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 한창때 펄떡거리는 심장으로 죽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바다도 청년만큼이나 젊다. 푸르른 정열에 넘쳐 둥그런 하늘을 이고 웅얼거리는 바다는 청년과 동격이다. 그리고 바다의 기상은 곧 청년의 기상이다. 바다의 깊이 위에 네 구멍 뚫린 피리를 불고 있다는 것은 이제 청년이 배를 탔음을 뜻한다. 배를 탄 이상 눈물 글썽이며 감상에 젖거나 뒤를 돌아보며 회한에 젖지 말아야 한다. 눈떠라, 사랑하는 눈을 떠라. 지혜의 눈을 떠라, 희망의 눈을 떠라. 너희들은 등불 하나 보이지 않는 이 밤에 새벽을, 미래를 꿈꾸어야 할 젊은 세대란다.
“길은 항시 어데나 있고/길은 결국 아무 데도 없다”와 “이리도 괴로운 나는 어찌 끝끝내 바다에 그득해야 하는가”를 제국주의 지배체제라는 절망적인 상황과 결부시키지 않을 수 없다. 시는 계속해서 ‘청년’에게 말을 건네는 식으로 전개된다. 식민지 지배의 질곡에서 벗어날 길이 없던 그 시대의 청년들에게 시인은 조국을 등지는 용기가 필요함을 역설하고자 이런 시를 썼다고 생각한다. 떠나는 마당에 잊어버릴 것은 몽땅 잊어버려라. 혈혈단신으로 떠나는 거다. 그래, 너희들의 괴로움을 내 조금은 안다. 이 조국을 등지고 어디론가 떠나려는 너희들의 불안한 심사도 내 다 안다. 심사숙고해서 네가 정말 옳다고 생각한다면 너의 길을 가는 거야. 떳떳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나 당당해야 한다. 너는 젊기 때문에 시행착오도 할 수 있겠지만, 기왕 떠나려거든 젊음의 힘을 온 세계를 향해 뻗쳐라. 네 젊은 기상을 불사를 곳은 이 비좁은 한반도가 아니다. 노예의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조선 땅이 아니다. 삼면 바다를 넘어 펼쳐져 있는 저 먼 세계의 곳곳, 알래스카와 아라비아와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로 가거라. 가는 도중에 침몰할지언정 너는 안주할 생각을 버리고 이제는 정말 떠나야 한다. 밤과 피에 젖은 국토, 빼앗긴 조국이 등 뒤에 있다는 것만은 잊지 말아다오.
이처럼 서정주는 지식인 청년들에게 식민지 원주민으로서의 절망감을 어쩌지 못해 어둠 속에 숨어서 고뇌하지만 말고 어디론가 떠나라고 충동질하고 있다. 또한 세속적인 인연의 끈을 끊고서라도 대의를 위해 살아가야 한다고 종용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네 계집을 잊어버리라는 구절은 왜 그렇게 매력적으로 여겨지던지.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될 수도 있는 구절이겠지만.
나의 이런 해석은 지나치게 자의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40년대에 들어서서 미당은 「송정오장 송가」 등의 친일시 외에도 「최체부의 군속 지망」 같은 소설도 쓰는 등 친일행위를 했는데 때아니게 조국애가 발동해 이런 시를 썼겠는가 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서정주가 이 시를 쓴 1938년경에는 조국의 앞날을 걱정하는 우국지사의 마음을 갖고 있었을 것이라 믿고 싶다.
[서정주 시인]
1915년 전북 고창 출생.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김동리 등과 동인지인 『시인부락』을 창간하고 주간을 지내기도 하였으며, 첫 시집인 『화사집』에서 격렬한 리듬을 통해 방황하는 청춘의 열정을 개성적으로 선보였고, 이어 『귀촉도』에서는 동양 전통세계로 회귀하여 민족적인 정조를 노래하였다. 이후 불교사상에 입각해 인간 구원을 시도한 『신라초』, 『동천』, 고향마을의 토속적인 풍속을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쓴 『질마재 신화』를 간행하였다.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등을 수상하였다. 2000년 12월 24일에 작고하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