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82] 강지인의 "청소"외 2편
청소 외 2편
강지인
바닥에 떨어진 건 다 갖다 버릴 거야!
엄마가 말한다
바닥에 떨어진 건 내가 다 먹어치울 거야!
로봇청소기가 말한다
엄마는 그냥 해보는 말이고
로봇청소기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엄마가 로봇청소기를 돌리기 전에
얼른 방 청소를 해야 한다
엄마의 기분 온도
엄마의 기분 온도는
물의 어는점 0℃에서 끓는점 100℃ 사이
그 어디쯤이라고 할까!
엄마의
기분은
봄날의 햇살 같다가 어느새 부글부글 끓다가
금세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기 때문이지
100점 시험지를 내민 지금
엄마의 기분 온도는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온화하고 다정하기 그지없는
딱, 내가 좋아하는 온도
그 어디쯤이지
홍시 실종 사건
한밤중
오줌 누러 나왔다가
홍시를 먹고 있는
엄마와 눈이 마주쳤지
제일 크고 반짝반짝 윤이 나던,
홍시 되면 먹으려고 찜해 둔 바로 그 감이었지
너도 먹을래?
엄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멋쩍어하는 엄마 입속으로 호로록
눈 깜짝할 사이
홍시는 사라지고 말았지!
그때가
새벽 세 시 반이었지
—『돌주먹의 맛』(보림출판사, 2025)

[해설]
엄마도 사람이야 우리가 이해하자
어제 12월 6일 부천시립별빛마루도서관 3층 목일신문화홀에서는 제7회 목일신아동문학상 시상식이 있었어. 내 친구 부천일신초등학교 4학년 김동우와 진유나가 목일신 아동문학가의 동시 「고향의 하늘」「은하수」「느티나무」를 함께 낭독했어. 유나가 아주 많이 부러웠지. 동시 부문에는 200명이, 동화 부문에는 126명이 투고해 강지인 선생님의 동시 50편과 하신하 선생님의 장편동화 『날아오르기 전에』가 당선되어 이날 시상식이 있었던 거야. 시상식 시작 전에 목일신 작가님의 일대기를 영상으로 보여주었는데 내가 사는 부천에 이런 훌륭한 분이 사셨는지 몰랐어. 일제강점기 때 우리말로 동시를 써 한글과 우리의 민족정신을 지켜낸 분임을 알게 되었어. 광주학생운동 때 감옥에도 갇혔었고 퇴학까지 당했대. 일본 관서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돌아와 학교 선생님을 오래 하셨대. “따르릉따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으로 시작되는 동요 「자전거」가 원래는 “찌르릉찌르릉 비켜나세요 자전거가 갑니다 찌르르르릉”으로 발표되었다는 것도 오늘 알았어. 동시집의 그림은 윤담요 님이, 동화책의 그림은 조현아 님이 그렸는데 아동문학책에 그림 그리는 분으로는 우리나라 최고라고 생각해.
시상식이 끝나고 동시집 『돌주먹의 맛』과 동화책 『날아오르기 전에』를 저자분께서 직접 사인해 주셔서 기분이 정말 좋았지. 동시집을 읽어보니 ‘엄마’가 나오는 동시가 여러 편 있었어. 우리 엄마랑 닮은 게 아니라 똑같아서 너무 신기했어. 내가 놀고 나서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으면 “바닥에 떨어진 건 다 갖다 버릴 거야!”라고 협박조로 말하는 것도 그렇고, 기분이 시소를 타는 것 같은 것도 우리 엄마랑 똑같아. 시험을 잡치면? 하하 긴 말 하지 않겠어.
동시 속의 엄마는 잘 익은 홍시를 몰래 먹다가 아이한테 들키는데 우리 엄마는 아빠랑 싸우고 혼자 술을 홀짝홀짝 마시다 내게 들킨 적이 몇 번 있었지. 아빠가 모르기를 바라는 일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이건 우리 둘만의 비밀이야, 아빠한테 절대 말하면 안 돼.” 하면서 나를 공범으로 끌어들였지. 무슨 일이냐고? 비밀이라니까.
그런데 엄마는 엄마대로 아픔이 있고 슬픔이 있겠지. 화내지 않을 일에 화를 막 내면 내가 이해하려고 애를 써. 완전한 인격을 갖춘 성인 같은 분이 아니고 엄마도 우리랑 똑같은 한 마리의 어린 양 아니겠어. 시장 봐와 끼니 준비하고, 청소하고, 세탁기 돌려서 빨래 널고, 사실 꽤 바빠. 할머니 할아버지 챙기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챙기고. 아빠는 주말이면 스포츠 경기나 보고, 나는 또 나대로…. “엄마 잔소리처럼/ 달그락달그락”(「귓밥」), “눈알 굴릴 생각 하지 마! 엄마가 경고한다”(「생각은 눈알을 굴리고」), “엄마는 그 꿈이/ 개꿈이래”(「개꿈」), “엄마의 코앞은/ 믿을 수가 없지”(「코앞」), “화가 난 엄마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자”(「고래」), “만화 속 악당처럼 깔깔깔/ 웃고 있는 엄마”(「잡초」), “엄마는 벌점이라며/ 블록 하나 빼고”(「젠가」) 등등 동시집에 나오는 엄마랑 우리 엄마가 정말 많이 닮았지만 나는 그래도 엄마가 좋아. 엄마도 사람이니 내가 이해하려고 해.
[강지인 동시작가]
2004년 《아동문예》 동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하셨어. 황금펜아동문학상, 한국아동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을 받았지.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할머니 무릎 펴지는 날』『잠꼬대하는 축구장』『상상도 못했을 거야!』『수상한 북어』『달리는 구구단』이 있어. 초등학교 교과서에 「꼬물락꼬물락」이 실려 있어.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