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조창환의 "꽃그림 맞추기"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54]
꽃그림 맞추기
조창환
요양병원 병실에서 환자복 입은 치매 할머니와
방호복 입은 간호사가 마주앉아 화투장을 들여다본다
허리 굽은 할머니는 눈 갑갑하고
허리 곧은 간호사는 마음 갑갑해서
화투 패 암만 들여다보아도 이길 생각은 없다
성에 낀 시간에 입김 후후 불 듯
가자미 같이 엎드린 하루를 쓰다듬어 줄 따름
이상한 일이긴 하다
자식들 얼굴도 못 알아보는 늙은이가 화투장 들고
꽃그림 맞추기는 그럭저럭 해낸다니
이 매조도 찾아내고, 홍싸리, 흑싸리
삼 사쿠라 구 국진, 팔 공산, 비, 풍, 초, 똥
다 찾아내서 짝 맞추고
홍단, 청단, 초단도 할 줄 안다는 것이
이상한 일 아니긴 하다
자식들 얼굴은 꽃 아니니까
화투 패에는 꽃그림 있고
자식들 얼굴에는 꽃그림 없지 않어?
자식들 얼굴이 꽃그림 되는 날
할머니 제정신 돌아와
꽃 같은 내 새끼
끌어안고 볼 비비며 눈물 흘리는 날
꽃그림 같은 시간에 말갛고 말간
꽃보다 진한 향기 천지에 번져나서
할머니 맘 편하게 저세상 가시겠지
할머니 거기 가서 꽃그림 되시겠지
―『나비와 은하』(도서출판 도훈, 2022)

[사진 : 대한간호사협회 제공]
[해설]
코로나19 바이러스 시대에 핀 꽃
인류의 역사에 있어 2020년과 2021년은 팬데믹 시대로서 고립과 단절, 질환과 격리, 절망과 사망의 연대기를 쓸 수밖에 없다. 중국의 우한시에서 발원한 이 질병은 2년 반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목숨을 앗아간 것이 사실이다. 백신이 빨리 개발, 사투를 벌여 2022년 하반기부터는 우리가 마스크를 벗고서 외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백신 부작용으로 고통을 겪거나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않이 보았다. 재작년, 작년, 올해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독감과 동격으로 취급되어 우리의 관심사에서 멀어졌지만 인간이 바이러스를 퇴치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그놈들은 변종을 낳으면서 인류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시인은 그 암담했던 시절에 언론에 보도된 사진 한 장을 보았다. 대한간호협회에서 언론에 제공한 사진은 삼육서울병원에서 치매를 앓는 할머니와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가 화투 놀이를 하고 있는 장면을 찍은 것이다. 나도 그 사진을 보았지만 시로 쓸 생각을 못했으니 조창환 시인에게 그만 선수를 빼앗겼다.
자식들 얼굴도 못 알아보는 할머니가 화투의 짝을 맞출 줄 아니, 간호사는 신기하기도 했을 것이다. 무료한 환자를 위해 시간을 할애해 벗이 되어 드리는 이 간호사는 천사가 아니고 무엇인가. 노인 치매 환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안내하는 안내자는 남편도 아니고 자식도 아니다. 반려견도 아니다. 간호사다.
시의 마지막 두 개 연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물론 이런 기적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인이 시를 쓰면서 이런 기원은 해볼 수 있지 않은가. 할머니에 대한 안타까움이 진하게 느껴지는 한편으로, 이 할머니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는 간호사의 갸륵한 마음이 느껴지니 이것이야말로 휴머니즘이 아닌가. 신이 힘이 딸려 인간만사에 다 관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즉, 타인을 도와야 한다. 인간애, 인본주의, 살신성인 같은 것은 신도 가장 좋아할 인간의 덕목이다.
2025년인 지금 이 할머니는 돌아가셨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 간호사는 또 어느 환자 곁에서 이렇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을 것이다. 아무리 직업의식 때문이라고 해도 병든 자나 약한 자를 돌보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이나마라도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조창환 시인]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울산대학교와 전북대학교를 거쳐 아주대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86년 미국 아이오와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에 참가한 이래 미국 브리검영대학교, 볼링그린대학교, 카자흐스탄 크질오르다대학교 및 체코 카를대학교에서 한국학 객원교수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강의했다. 지금은 아주대학교 명예교수다.
1973년 《현대시학》에 시 「연가」로 3회 추천 완료하였다. 시집 『빈집을 지키며』『라자로 마을의 새벽』『그때도 그랬을 거다』『파랑눈썹』『피보다 붉은 오후』『수도원 가는 길』 및 시선집 『신의 날』『황금빛 재』 등을 펴냈다. 이외에 논저 『한국현대시의 운율론적 연구』『한국시의 넓이와 깊이』『한국 현대시의 분석과 전망』 등과 산문집 『여행의 인문학』『2악장에 관한 명상』『시간의 두께』 등이 있다. 한국시인협회상, 한국가톨릭문학상, 경기도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