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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 조용필

조선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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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초월하는 울림 

‘조용필’이라는 이름 앞에서 우리는 어느새 고개가 숙여진다. 그는 단순한 가수나 스타를 넘어 한국 현대사이자 한국인의 정서 그 자체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살아 있는 문화 기념비이기 때문이다. 그의 목소리는 한 시대의 감정과 기억을 고스란히 품에 안은 ‘시간의 목격자’요, 그의 노래는 단순한 멜로디가 아니라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을 구성하는 정서의 DNA’이다. 
가왕 조용필(75·사진)이 추석 연휴 안방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시간 반 동안 이어진 히트곡 행진에 “역사에 남을 공연”이라는 호평이 쏟아졌다.  9일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KBS가 지난 6일 방영한 광복 80주년 대기획 콘서트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는 전국 기준 시청률 15.7%를 기록했다. 추석 당일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을 통틀어 전체 1위의 성적이다. 지난해 발표한 곡 ‘그래도 돼’를 부르던 무대에선 최고 시청률이 18.2%까지 치솟았다. [사진:KBS 방송 캡쳐]
그가 부르고 연주한 리듬은 1970년대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세대를 가로지르며 변함없이 우리의 심장을 울리고 있다. 그의 음악 세계를 관통하는 ‘태양의 눈’은 어둠을 꿰뚫는 통찰력과 화려함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본질을 응시하는 시선이다. 조용필이라는 예술가의 위대함을 단순한 추억의 선율을 넘어, 시대를 반영하고 초월한 보편성, 장르를 가로지른 실험정신,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지킨 품격이라는 객관적 렌즈를 통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

조용필의 음악 인생은 한국 사회의 격동기를 고스란히 압축한 문화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 검열과 금지곡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시절, 그는 ‘고추잠자리와 ‘단발머리를 통해 젊은 세대의 자유로운 영혼과 은유적 저항을 노래했다. 이 노래들은 단순한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억압된 시대정신을 음악으로 탈출시킨 문화적 저항이었다. 
19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그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단순한 트로트의 범주를 뛰어넘었다. 이 노래는 분단과 경제 성장이라는 이름 아래 흩어져야 했던 수많은 이산 가족의 그리움, 고향 상실의 아픔을 ‘부산항 이라는 공간적 상징에 녹여낸 사회적 서사시였다. 마치 신민요 와도 같은 이 노래의 위력은 당대 대중의 감정을 정확하게 포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그는 창밖의 여자가 만들어 낸 서정적인 록의 계보를 빗속의 여인 님아 등으로 심화시키며 음악적 깊이를 더했다. 그리고 2010년대, 60대의 나이에 ‘바운스'를 통해 EDM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자신의 음악 세계에 정교하게 편입시켰다. 이는 단순한 ‘도전’이 아니라, 음악 시장의 주류인 젊은 세대와의 대화를 시도한 ‘전략적 소통’이자,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기보다 시대를 자신의 방식으로 선구자의 면모였다. 그는 유행을 좇지 않았고, 유행이 그의 뒤를 따랐다. 이것이 그의 음악이 10년, 20년, 50년이 지나도 여전히 ‘현재’로 들리는 이유다.

장르의 경계를 허문 실험정신과 ‘본질’에 대한 집착

조용필의 음악을 트로트의 황제나 록의 전설 등 단일 장르로 규정하는 것은 그의 예술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진정한 위대함은 록, 발라드, 트로트, 포크, R&B,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정수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조용필 사운드’라는 독보적인 장르를 창조해낸 데 있다.

1980년 발표한 '창밖의 여자'는 한국 대중음악사에 한 획을 그은 기념비적 작품입니다. 이 노래는 강렬한 록 사운드와 서정적인 멜로디, 시적인 가사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서정 록의 원형을 확립했다. 기타 리프의 날카로움과 보컬의 감정 이입이 만들어내는 극적 긴장감은, 단순한 흥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음악이 무엇인지를 증명했다.

이러한 실험정신은 그의 전 생애를 걸친 모토이었다.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에서는 애절한 발라드의 정수를 보여주었고, ‘바운스’에서는 60대 가수가 EDM의 강렬한 비트를 소화하며 ‘나이’라는 편견을 산산이 부수었다. 그의 수많은 무대는 화려한 퍼포먼스와 세션 간의 완벽한 호흡으로 대중음악 공연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실험과 도전의 밑바탕에는 좋은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다는 그의 확고한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기술적 실험보다 ‘진정성을, 일시적인 유행보다 음악의 본질을 중시했다. 그의 음악 인생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이었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 이라는 불변의 본질이 자리하고 있다.

조용한 힘, 무대 위 카리스마와 무대 아래 장인정신

조용필의 리더십은 조용한 폭풍과 같다. 그는 공적인 자리나 인터뷰에서 화려한 언변을 과시하거나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는 법이 거의 없다. 그의 겸손과 과묵함은 늘 일관되었다. 그러나 무대 위에 섰을 때의 그의 존재감과 카리스마는 그 어떤 아티스트보다 압도적이다. 이 겸손함과 강렬함의 이중주가 바로 그의 독특한 리더십을 구성한다.

그는 자신의 밴드와 스탭들을 향해 절대 무례하게 굴지 않는다는 증언이 많다. 그는 음악적 동반자들을 진정한 ‘아티스트’로 존중받는다. 수십 년을 함께한 세션 연주자부터 작곡가, 후배 가수에 이르기까지, 모두는 조용필 선생님은 음악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고 생각하신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 존중의 이면에는 ‘완벽에 대한 집착이 있다. 한 곡을 위해 수십 번의 리허설을 반복하고, 음정 한 톨, 박자 하나에도 혼을 쏟는 그의 모습은 ‘장인정신’ 그 자체이다. 그는 음악을 단순한 ‘공연’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완성해가는 예술 작품으로 여겼다. 이렇게 무대 아래에서 쌓아 올린 엄청난 노력과 팀에 대한 신뢰가 무대 위에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라는 전설을 탄생시킨 원동력이었다. 그의 리더십은 말이 아니라 행동과 결과로 보여주는, ‘소리 없는 울림’의 힘이다.

태양의 눈, 시간과 맞서는 예술가의 자세

조용필은 시간은 모든 것을 데려가지만, 음악은 남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짧은 문장에는 그의 예술관과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음악을 시간에 맞서 영원을 지향하는 인간의 노력’으로 여겼다.

그는 나이를 먹어도 ‘늙지’ 않는다. 이는 단순히 외모나 체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는 끊임없이 세상의 변화를 학습하고, 젊은 뮤지션들의 음악에 귀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협업을 통해 자신의 음악 세계를 확장해왔다. 60대에 ‘바운스’를, 70대에 ‘Hello’를 통해 보여준 그의 모습은 완성된 전설이 아니라 여전히 성장하는 예술가이다. 
‘태양의 눈’이란 바로 이와 같은 시선을 의미한다.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직시 하며 세상의 변화를 두려움 없이 바라보는 ‘열린 눈 유행과 기술이 변해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이라는 본질을 결코 놓치지 않는 통찰의 눈 바로 그 눈으로 그는 지난 50년간 한국인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했고, 그 눈으로 그는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너의 꿈을 향해 묵묵히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건네고 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품격

인공지능이 노래를 만들고, 알고리즘이 대중의 취향을 선도하는 디지털 시대에 조용필의 존재는 우리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이 만들어낸 완벽한 음악이 인간의 영혼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실된 음악을 대체할 수 있는가?
 
조용필의 대답은 명확하다. 음악의 본질은 기술이나 유행이 아니라, 인간의 진정성과 진솔한 감정에 있다는 것. 그가 수많은 히트곡을 넘어 국민 가수’이자 문화의 아이콘 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부른 모든 노래의 시작과 끝에 ‘진심’이 자리했기 때문이다. 
 
조용필은 우리 시대의 ‘태양의 눈이다. 그의 노래는 세월의 벽을 뚫고 여전히 따스하게 우리를 감싸 안으며, 그의 존재 자체는 침묵 속에서도 더욱 큰 울림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소중한 유산은 수많은 명곡의 목록이 아니라,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품격’에 대한 본보기다. 그 품격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니라 묵묵한 절제에서, 순간의 영광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진정성에서, 그리고 자신만의 길을 끝없이 걸어가는 태양 같은 시선에서 비롯된다. 

오늘도 사람으로 사람들과 사는 날 말랑말랑한 뇌와 관점의 감성으로 전등이 등불을 전한다.
광복 80주년 KBS대기획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 사진 : KBS  방송 캡쳐]
[편집자주] 2025년 한가위, 대한민국 음악사의 살아있는 전설 조용필이 다시 한 번 ‘가왕’의 품격을 증명하는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KBS가 광복 80주년을 맞아 기획한 대형 공연 「이 순간을 영원히」는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1만 8천여 명의 관객을 매료시키며, 조용필의 음악이 세대를 초월해 감동을 전하는 진정한 문화의 장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이번 공연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조명하기 위해, 조용필의 음악세계를 독창적인 시선으로 풀어낸 조선규 칼럼니스트의 특별 칼럼을 코리아아트뉴스에 모셨습니다. 음악과 시대, 그리고 인간 조용필에 대한 통찰이 담긴 그의 글을 통해, 가왕의 무대가 남긴 울림을 독자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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