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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_ 홍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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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_ 홍영수

시인 홍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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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의 세상 보기 2 ]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홍영수 

 

부르튼 피부의 대들보를 안고 누웠다가

아흔 굽잇길을 돌아 검은 그림자가 되었다는 것을,

누구의 관심과 눈길 없이

이승의 삶을 해체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오두막 같은 한 여인이 그녀였다는 것을,

늘그막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이목구비를 지우고

헐거운 짐이 무거운 짐이 될까, 걱정하다가

생의 앞편으로 이어갈 끈을 놓아버렸다는 것을,

베갯잇 적시는 몇 방울의 고독을 삼키면서

사립문 여는 소리는 차마 닫지 못하고

검은 천사에 둘러싸인 주검이 그녀였다는 것을,

이젠, 휑한 방 안의 공기마저 납작 엎드린 곳에

그동안 방치된 자투리의 삶이 압류된 채

다문 입에 못다 한 말들이 시체처럼 붙어있는

초점 잃은 눈동자의 여체가 그녀였다는 것을,

그녀가 켜 놓은 촛불에는 빛이 있었으나

꺼진 뒤의 촛농 속에는 그녀가 있었다는 것을,

떠나기 전에는 혼자였던 그녀가

떠난 뒤에는 누군가의 전부였다는 것을,

 

 깨물어 아픈 손가락들은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켜 놓은 촛불에는 빛이 있었으나꺼진 뒤의 촛농 속에는 그녀가 있었다 [ 이미지: 류우강 기자]

  톨스토이는 《인생론》에서 자기 생존의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느끼지 않고서는 계속 살아 나갈 수 없는 때가 머지않아 닥쳐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실제로 그러한 상황에 부딪히고 있는 노인들, 그들의 나이 듦에서 느끼는 심리적 불안과 고통, 그리고 자꾸만 고장 나는 정신적, 신체적 변화들, 어쩔 수 없이 수리하면서 살아가지만, 노인들은 고독감과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물론,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삶의 과정일지라도 현실감으로 다가오는 무력감과 소외감 앞에서는 톨스토이 말처럼 무의미함과 비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몇 해 전, 코로나로 인해 나이 드신 부모님을 요양원으로 모시는 경우가 평소와는 다르게 많았다. 코로나바이러스는 특히 전염성이 강해서 노인들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어서 일시적인 격리 차원에서 그러하기도 했다. 이때 아흔 굽잇길을 걷고 있는 노인은 임시의 격리가 아닌 버림의 이별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평생 살아왔던 시골집 허술한 와옥의 큰방에서 이승을 등지고 훗승의 길로 떠나셨다. 생의 앞편에 남아 있는 끈이 때가 되어 끊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놓아버렸다.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생의 순간이 영원히 결빙되어 버렸다는 것을 깨물어 아픈 손가락들이 차마 어찌 알 수 있었겠는가? 지금도 자식들은 미완의 이별로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촛불이 아닌 촛농 속에 계시는 걸 어찌하겠는가.  

홍영수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 한탄강문학상 대상

- 아산문학상 금상

- 순암 안정복 문학상

- 최충 문학상

- 시집 『흔적의 꽃』, 시산맥사, 2017. 

시인 홍영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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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수시인#아무도몰랐을것이다#코리아아트뉴스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