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향기] 생生의 찬가_ 김영희
아! 저것이 살 수 있을까? 사람의 무심한 손길에 가냘픈 나뭇가지가 꺾인다. 공원과 길가의 나무들은 새싹을 달기도 전에 , 봄맞이 가지치기 작업으로 날카로운 도구에 가지가 잘려 나간다. 순간 악! 하는 비명이 들리는 것만 같다.
가지가 꺾인 나무는 이파리로만 파르르 떤다. 속수무책으로 잘려진 몸통에서는 허연 진액이 새어 나온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그 이유를 나무는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다. 산속이나 발길 닿지 않는 한적한 곳에 뿌리를 내렸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마음껏 가지를 뻗고, 잎새를 가득 달고 바람 따라 시원하게 나부낄 수 있었을 텐데. 가지가 모두 잘려 몸통만 남은 나무. 저것이 살 수 있을까?

수령이 500년이나 넘은 느티나무의 그 굵은 기둥이 폭우에 또 속절없이 부러졌다. 그 품이 넓은 가지가 거친 비바람에 꺾이고, 나뭇잎들은 산발인 채 휑한 몰골로 버거운 제 몸뚱이를 간신히 버티고 있다. 몇 백 년의 세월이 그의 몸통을 돌고 돌며 역사를 깊숙이 간직해왔건만, 하늘에서 쏟아내는 기록적인 폭우에 느티나무는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었나 보다. 가지를 넓게 펼치고 넉넉한 그늘을 선사했던 아름드리나무는, 이제 그 모습은 간데없고, 한쪽 팔을 잃은 듯 반쪽의 몸이 되어 허공만 물끄러미 향하고 서 있다.
벼락 맞은 나무는 한순간에 까맣게 타버렸다. 푸르던 잎은 바스러져 바람에 사라지고 숯덩이가 된 몸통만 덩그러니 남았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나무는 이제 그 생을 다한 것일까.
펑펑 눈 내리는 날이면, 산 등짝만 한 눈더미를 지탱할 수 없어 나뭇가지는 그만 뚝! 부러지고 만다. 제 몸의 몇 배가 되는 그 무게를 버텨낼 수 없어 뚝! 하고 날개 부러지는 소리를 낸다. 그래도 남은 가지들은 살아갈 수 있겠지...
그 모든 것들은 찰나였다.
수백 년 동안 쌓아 올린 몸피가 한순간에 쩍! 하고 갈라지다니...
내 가슴속에서도 쩍! 소리가 꽂힌다.
먹구름이 떼 지어 몰려왔다 사라진 듯 어수선한 삶 속에서 간신히 스스로를 붙들고 있는 나무들.
동네 대추나무 한 그루는 천둥과 벼락과 태풍을 꿋꿋이 견디고, 마알간 연둣빛 대추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지 않은가. 천만다행이다. 대추가 빨갛게 익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대추나무의 의지가 기특하다.
비가 또 오고, 기둥이 잘려 나간 나뭇가지에 초록 잎 하나 고개를 쏙! 내밀었다. 부러진 자리가 채 아물기도 전에 가느다란 줄기 하나 내밀고 고사리 같은 싹을 틔운 것이다. 나무는 가지가 꺾인 아픔을 딛고 이제 막 올라온 새싹을 바람에 흔든다. 어린잎이 바람에 살랑살랑 춤을 춘다.
아! 저것이 살아 있구나.
많은 슬픔을 뿌리고 간 긴 여름 폭우와 열기는 이제 서늘한 바람을 몰고 온 가을에게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수많은 시련에도 차례상에 올라온 과일과 밤, 대추를 보며 나는 눈시울이 뜨겁다. 밤나무와 대추나무, 과일나무가 꿋꿋이 버텨준 것이 대견하고 감사하다.
아! 모두 살아 있구나.
[작가의 말]
* 혹독한 겨울과 폭염의 여름날을 견뎌온 나무에게도 힘듦이 있다.
날씨가 조금 풀리면 봄맞이한다며 무자비하게 행해지는 가지치기가 몇 년간 더욱 심해진 것 같다.
사람은 살갗이 조금만 부딪혀도 멍들고 쓸려서 쓰라리고 아픈데, 하물며 생명이 있는 나무는 오죽할까.
한여름에 따가운 햇빛을 피할 수 있는 나무 그늘도 사라지고 이중으로 고생을 한다.
소중한 나무를 소중하게 다루며 아껴주어야 인간에게도 이롭지 아니한가
김영희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기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수상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