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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이승하의 "미당의 묘소에 와서"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이승하의 "미당의 묘소에 와서"

이승하 시인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76]

미당의 묘소에 와서
 

이승하

 

스승은 많이 취했다

국화 향기에 어지러워

비틀거리며 저승과 이승을 넘나든다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고

죄인도 아니고 천치도 아니고

8할이 바람이었다면 나머지 2할은?

 

지금 아이들은 미당의 시를 모른다

전북 고창에는 선운사가 있고 꽃무릇 축제가 있고

시인부락은 시인의 마을?

 

생의 오점 세 가지를 들먹이며*

이름을 딴 상에 찬물 끼얹는 사람들

스승은 추워서 잠들 수 없다

 

맥주를 무덤에 뿌린다 잔디야 너나 취해라

상석 위에 담배 놓고 절하지만

부질없다 한국 시의 행정부는 가고

 

사법부만 남아 있다 우리는 모두 서슬 푸른 검사

구형한다 단죄한다 북북 지운다

교과서에서 빼고 문학사에서 비웃는다

 

인간은 신이 아니다 붓다도 마호메트도 예수도

신이 아니었다 미당은 신이었다

시의 조화옹, 언어의 조물주

 

그러나 실수투성이 과오투성이 아아 바보같이……

도대체 왜?

인간이 아닌 제우스 같은 신이었으니까

 

스승을 오래 미워했다 미당은 갔다고

예수를 세 번 부정한 베드로처럼 부정했다

미치겠다 잔뜩 사온 캔맥주 나 혼자 다 마시고

 

울며 풀 쥐어뜯으며 환장한다

스승이여 왜 그런 시를 왜 그런 짓을

여전히 집 없이 떠도는 시인이여

 

*나의 대학교 은사이신 서정주 시인(19152000)은 친일문학 작품을 여러 편 썼고 이승만 전기를 썼으며 전두환 찬양시를 썼다.

 

—『사람 사막』(더푸른, 2023)에서

 

  

미당의 묘소에 와서 [ 사진 : 이승하 시인 ]

[해설]

 

  내가 미워했던 스승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이고 오늘은 마침 스승의 날이다. 스승의 날에 적합한 시가 없나 장시간 찾았는데 찾아내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대학 시절의 은사님을 다룬 이 시를 갖고 왔다. 스승의 정치의식 박약은 몇 차례에 걸쳐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끔 했다. 그 결과 친일 문인의 대표자로 거론되면서 20년 넘게 교과서에서 작품이 빠졌고, 모의고사나 수능시험에서도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 색채가 짙은 작품을 쓴 이는 한두 명이 아니었다.

 

  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 문학 분야 친일 인물 42명을 발표했는데 이름 옆의 숫자는 친일 작품으로 판명된 작가의 발표 작품 수다. 10편 이상 발표한 문인만 추려보면 시 분야에는 주요한(43), 김동환(23), 김종한(22), 노천명(14), 모윤숙(12), 서정주(10)의 이름이 보인다. 최남선의 7편은 예상보다 적었다. 소설과 희곡 분야에는 이광수(103), 이석훈(19), 최정희(14), 채만식(13), 정인택(13), 유치진(12), 함대훈(11) 7명이 10편 이상 썼다. 김동인은 9편을 썼다. 평론 분야에는 최재서(26), 김용제(25), 박영희(18), 김기진(17), 백철(14), 정인섭(11)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1940년이면 서정주의 나이 25세 때였다. 일본에 아부하여 이득을 취할 바도 없었는데 과잉 충성을 한 것이었다. 스승은 훗날 일본이 패망하리라곤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다른 문인들과 마찬가지로 내선일체 사상과 대동아공영권 주장을 철석같이 믿고 쓰지 말았어야 할 글을 10편이나 썼다. 그렇다고 위에 이름이 나온 모든 이를 거론하지도 말고 생애의 전 작품을 읽지도 말아야 할까? 과오는 과오대로 따지고 공로는 공로대로 평가했으면 좋겠지만 지금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 이들의 이름은 사라지고 없다. 월북한 문인들은 복원되어 아무 제재 없이 다뤄지고 있는데 친일한 문인들은 용서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스승이 돌아가셨을 때 착잡한 마음으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갔었다. 조문만 하곤 문인들이 있는 식사 자리에는 가지 않고 병원을 떠났다. 마음이 착잡했기 때문이다. 1985년에 계간 《실천문학》에 실려 있는 「송정오장 송가」「최체부의 군속 지망」을 읽고 스승에 대한 존경심이 와르르 무너졌다. 아아 뭐가 아쉬워 이승만의 전기를 썼고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을 찬양했단 말인가.

 

  스승의 사후 10년이 되던 해에 전북 고창에 있는 미당(未堂)의 묘소에 가서 절을 올렸다. 시에 나오는 대로 좋아하시던 맥주를 무덤에 뿌리고 잡풀을 뽑으면서 오열하였다. 스승의 주옥같은 시가 몽땅 교과서에서 사라져서 20년도 넘게 학생들은 미당의 시를 모른다. 한 편도 읽은 학생이 없다. 지난 100년 이 땅의 역사가 서러웠고 비정한 단죄가 슬퍼서 울었다. 그 문인의 허물을 덮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주옥같은 작품들도 다 땅에 묻어야 하는 것일까.

 

  오늘 스승의 날, 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백면서생인 나를 매질하며 가르쳐 시인의 길로 이끈 은사님 서정주 시인 생각에 잠 못 이루다 새벽 3시에 이 글을 쓴다. “이건 시라고 할 수가 없네.” “이런 시는 쓰지 말게.” “시정신이란 건 감성으로건 지성으로건 반드시 가슴의 감동이란 걸 거쳐야만 하네.” “감정과 욕망에 대한 지성의 좋은 절제를 통해서만 좋은 시가 나오네.” “고전을 읽게. 성경을 읽게. 불경을 읽게. 삼국유사를 읽게. 당시(唐詩)를 읽게.” 아아, 스승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게 들려온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시와시학상편운상가톨릭문학상유심작품상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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