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희의 수필 향기] 속담으로 쓴 자서전 - 최미아
강아지 발바닥만 한 섬에서 태어났다. 순풍에 돛을 달고 세월아 네월아 지냈다. 앞길이 구만 리 같은 호시절이었다. 집안 살림은 죽이 끓는지 밥이 끓는지 모르고 책만 들여다보는 아버지는 밤마다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객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쓸 때는 내가 방바닥에 엎드려 아버지가 불러주는 입말을 받아 적었다. 당구 삼 년에 폐풍월이라고 그때부터 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기도 했지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끼적거리고는 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 한다더니 될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아버지는 내가 소설가가 되리라 굳게 믿었다.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야 하는데 앉아 삼천리 서서 구만리인 아버지의 믿음에 나도 꿈을 꾸게 되었다. 참깨가 기 짧으니 하는 우물 안 개구리로 사는 것에 뉘가 났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갈잎을 먹고 싶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랬다. 집 떠나면 고생이고 우물가에 애 보낸 것 같다고 말렸지만 초년 고생은 양식 지고 다니면서도 한다 했으니 나중에 삼수갑산을 갈지라도 개나 걸이나 다 가는 서울로 가고 싶었다. 서울은 눈 감으면 코 베어 먹는 곳이라 했다. 서울이 무섭다니까 과천서부터 기었다. 서울에는 겉 다르고 속 다를지는 몰라도 말은 청산유수고 씻은 배추 줄기 같은 사람들이 난다 긴다 하면서 살고 있었다. 나는 어디를 가도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촌닭 장에 나온 것 같았고 개밥에 도토리 신세였다. 아무리 냉수 마시고 이 쑤셔봐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남이 장에 간다고 나도 거름 지고 나섰다가 바로 끈 떨어진 두레박 신세가 되었다. 나오느니 눈물이요 터지는 게 한숨이었다. 하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 동안 오라는 데는 없어도 갈 데는 많아 고삐 풀린 말처럼 뛰어다녔다. 쇠털 같이 많은 날 도랑물 수돗물 다 마시다 보니 절에 가서 젓갈을 얻어먹을 정도였다. 서울에서는 남이 지게지고 제사를 지내건 말건 다들 내 코가 석 자니까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않았다. 살다보니 빛 좋은 개살구에 속 빈 강정들도 많았지만 제 눈에 안경인 남자를 만나 귀밑머리를 풀었다. 키 크면 싱겁다지만 겉볼안이라고 속은 어질 것 같았다. 하늘의 별 따기처럼 천신만고 끝에 깎은 밤 같은 아들 둘을 낳고 나니 용이 비를 만난 꼴이라 입이 함박만 해졌다. 사는 것이 누워서 떡 먹기처럼 쉬워 보였다.

남편이 사업을 시작했다. 바늘 넣고 도끼 낚을 심보는 아니었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나라 경제가 어려워져 마파람에 호박꼭지 떨어지듯 옴나위도 못하고 넘어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졌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는 데 부자가 되기 전에 망해 버렸다. 가지고 있던 모기 눈물만 한 것들을 곶감 빼먹듯 빼먹고 나니 옛 보릿고개가 따로 없었다. 발바닥에 불이 일고 입에 단내가 나도록 돌아쳐도 산 넘어 산이고 옹이에 마디인 날들을 견디느라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남편은 비 맞은 장닭이 되었다.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는데 방안 풍수인 나는 이불 속에서 활개만 치고 있었다. 석 달 장마에도 푸나무 말릴 볕은 난다. 고생 끝에 낙이 오고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 옛말 그른 데 없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글공부를 시작했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몰랐다. 비단 올이 춤추니까 베올도 춤추고 숭어가 뛰니까 망둥이도 뛰었다. 남들은 누운 소 똥 누듯 하는데 나는 재주가 메주여서 선무당 장구 탓하고 서투른 과방이 안반 타박하듯 했다. 들은풍월 얻은 문자로 알은 척하고 되글을 가지고 말글로 써먹고 공자 앞에서 문자 썼다. 꿈인지 생시인지 등단도 했지만 글은 가뭄에 콩 나듯 책에 실렸다. 하나 느릿느릿 황소걸음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다. 말이 씨가 된다. 소싯적 꿈, 소설가가 아니어도 엎어치나 메어치나 매한가지 수필가가 되었다. 미꾸라지 용 되었다.
강산이 여러 번 변했다. 차 치고 포 치던 남편도 이빨 빠진 호랑이에 날 샌 올빼미 신세다. 내 글을 읽고 입찬소리로 옥에 티를 가려내더니 이제는 쓰다 달다 말이 없다. 서로 소 닭 보듯 닭이 소 보듯 하지만 척하면 삼천리고 메떡 같은 말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남편과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알콩달콩 살고픈 마음 굴뚝같다.
* 폐풍월 :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읊는다는 뜻
* 씨나락 : 볍씨, 벼 종자
* 함함하다 : 소담하고 탐스럽다
* 갈잎 : 가랑잎, 떡갈잎
* 삼수갑산 : 함경도의 삼수군과 갑산군 지역으로 '대단히 험한 벽지'를 뜻함
* 겉볼안 : 겉을 보고 안을 짐작하는 것
* 옴나위 : 꼼짝할 여유
* 과방이 안반 타박하다 : 서투른 사람이 자신의 능력 부족을 모르고 도구 탓만 하는 것

[수필 읽기]
유명작가의 그림을 표지에 넣어서 한눈에 띄었고 내용도 더욱 궁금했다. 좋은 글 중에서 작가의 맑은 미소를 닮은 '속담으로 쓴 자서전'이 마음에 먼저 쏙 들어왔다.
그녀는 '아버지의 자식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적으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고, 갈잎을 먹고 싶었던 그녀는 도시로 올라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씩씩하게 버텨나갔다. 그러다가 어질 것 같은 남편을 만나 깎은 밤 같은 아들 둘을 낳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 후 남편의 사업은 경제 불황의 늪에 휩싸여 어려움에 빠지게 됐고, 발바닥에 불이 나고 입에 단내가 나도록 힘들게 견뎌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어 음지가 양지되면서 그녀의 생활도 나아졌다.
결국 그녀는 미꾸라지 용 되었다.
살면서 배운다고 했던 가. 어려움을 많이 겪은 사람들은 의외로 밝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녀의 표정도 그랬다. 생각도 유연한 편이고, 그래서 인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도 더 넓은듯하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산 사람의 경우에는 자신이 겪은 분야는 잘 알지만 생각이 고정되어 있어서 인지 다른 분야에 대해 이해하려는 마음은 열려있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으라고 얘기하는 것은, 많은 지식을 쌓는 것도 필요하지만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많이 함으로써, 여러 상황에 노출되어 생각해 보는 힘을 기르라는 뜻도 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담임 선생님께서 일기쓰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셔서 '매일 일기 쓰기' 숙제를 내주시고 검사를 하셨다. 선생님께 검사를 받아야 하니 글씨도 잘 써야 했고 내용도 더 많이 써야 했는데, 매일 비슷한 날이니 쓸 거리가 많지 않아서 무엇을 더 써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한 페이지를 꽉 채우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덕분에 내 글씨는 선생님의 눈에 띄어서 칠판에 '아침자습'을 쓰게 되었으니 어려서 습관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 아버지께서는 충청도에서 올라오셔서 작은 사업을 하시며 사촌들까지 올라와 서울에서 일하며 살 수 있게 도와주셨다. 내가 아버지 덕분에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어 유학 생활은 안 했으니 편하게 학교를 다닌 셈이다.
거의 모든 것이 부모님이 살아계셔서 누린 혜택들이다. 부모님께서 자식을 위해 헌신하신 것처럼 우리도 자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 이제는 자식들이 알아서 할 나이가 되어 한결 마음은 편해졌다.
부모가 꿈꾸는 대로 자식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대한 자식들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든 같을 것이다. 자식들도 부모의 그런 마음을 조금은 알아주면 좋겠다. 본인들도 자식을 키우면서 깨닫겠지만 말이다.
요즘 주위의 사람들과 얘기를 해보면, 좋은 시어머니들이 많아졌다. 가능한 며느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만남도 자주 갖지 않고 최소한으로 하는 것 같다. 첫째, 맞벌이 부부가 많아져서 바쁘기도 하다.
요즘은 결혼도 늦게 하는 편이고 아이들도 많이 낳지 않아서 자식도 귀하다. 그런 상황들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세상은 돌아가고 있으니 그저 잘 돌아가기 만을 기도할 뿐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행복하게 사세요~!
김영희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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