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박용재의 "너라는 희망"외 4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40]
너라는 희망 외 4편
박용재
그대 종달새 노래하는 봄 언덕에서
한 송이 파란 수국으로 다시 피어올라
나를 기다리거라 끝까지 기다리거라
너에게 도착하기까지 몇 정거장 안 남았다
그 꽃의 이름은 묻지 않았네
저녁 산책길에서 만난 들꽃 한 송이
자기를 잊지 말라며 내 발목을 잡네
몸웃음치며 유혹하는 그 마음 내칠 수 없어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 나누며 새벽을 맞네
봄나무에 흐르는 강물
물푸레나무에 가만히 귀를 대고 들어봐
봄나무 속에 콸콸 물오르는 소리 들리지?
뼈 속 깊이 퍼지는 하얀 강줄기를 타고
푸르게 푸르게 잎이 샘솟는 소리 들리지?
딱정벌레
신은 얼마나 너를 사랑하기에
이 지구에 가장 많은 존재로 너를 보냈니
푸른나뭇잎 너무 갉아먹지 마라
벌레야 딱정벌레야, 정 떨어진다야
봄나무에게
그대 마음이 곧 내 마음 같아서
저토록 이쁜 꽃들을 천지에 피워 주시니
그 향기에 취한 채로 미소에 화답하며
그대와 벗하는 이 순간 감사하여라
―『그 꽃의 이름은 묻지 않았네』(서정시학, 2024)

[해설]
산불이 이제는 끝났는지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하는 봄노래를 듣고 있자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세상도 살벌하고 문학도 살벌하고 내 시도 살벌하였다. 올해 봄에는 산불도 너무 많은 곳에서 났다. 모진 바람 때문에 넓게 번졌고 오래 타올랐다. 화재 현장에는 겁이 나서 가보질 못했다. 산의 모습이 얼마나 참혹하게 바뀌었을까.
박용재 시인이 작년 4월 30일에 낸 시집엔 따뜻한 시가 많다. 짧고 간결하고 명쾌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여운이 오래 남는다. 서정시학사에서 김수복ㆍ이하석ㆍ최동호 시인 등이 4행시집을 내고 있는데 박용재 시인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예로 든 5편의 시가 다 자연의 이치를 말하고 있다. 자연은 늘 스스로[自] 그러했는데[然] 우리 인간이 실화나 방화로 산을 불태웠다. 자연을 파괴했다. 각종 공해와 오염은 인간에 의한 것이지 자연은 아무런 죄가 없다.
그래서 시인은 희망을 노래하기로 했다. 파란 수국을 만나러 교외로 나가고, 들꽃 한 송이를 보고도 기뻐한다. 물푸레나무 속으로 물이 올라가는 소리를 듣는다. 딱정벌레들에게 나무를 너무 많이 갉아먹지 말라고 부탁한다. 봄에 새순이 돋는 나무들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넨다.
우리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자연을 대했으면 좋겠다. 산불 때문에 나무와 산새들, 들짐승들만 피해를 본 것이 아니란다. 유독한 온실가스가 4백만 톤이나 발생했다나. 그것이 우리의 폐로 들어가는 것이다. 올해 같은 비극이 일어나기 전이었기 망정이지…. 따뜻한 봄노래를 선사한 박용재 시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박용재 시인 ]
박용재 시인은 1960년 강릉 사천 하평리에서 태어났다. 1984년 월간시지 『心象』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조그만 꿈꾸기』『따뜻한 길 위의 편지』『우리들의 숙객』『불안하다, 서 있는 것들』『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강릉』『애일당 편지』『꽃잎 강릉』『재즈를 마시며 와인을 듣다』『신의 정원에서』 등을 펴냈다. 단국대 대학원에서 「허난설헌의 시의 문화콘텐츠 확장성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강의하는 한편 서울과 강릉을 오가며 ‘시의 집’을 짓고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