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음악

[음악이 있는 칼럼] AI 작곡, 창작의 개념을 다시 쓰다 _ 정현구

정현구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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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음악은 새로운 형태의 창작 협업으로도 볼 수 있다. 작곡가는 전체 구조와 음악적 방향성을 설계하고, AI는 그 설계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제안하며, 최종 해석과 선택은 다시 인간의 손에 남는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긴장과 조율 역시 예술적 행위라 할 수 있다. _ 정현구 [ 이미지: 류우강 기자]

인간과 알고리즘이 함께 음악을 만든다는 것
 

‘AI 작곡’이라는 말은 아직도 많은 음악가에게 낯설다. 몇년 전만 해도 인공지능이 만든 음악은 실험적 장난감에 가까웠다. 특정 작곡가의 스타일을 어설프게 흉내낼 뿐, 구조적 완성도나 음악적 방향성에서 프로 현장이 받아들이기엔 부족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최신 생성 모델들은 장르적 문법을 정확히 읽어내고, 몇초 만에 구조적 짜임새를 갖춘 음악을 구현한다. 이 변화의 파급력은 단순히 ‘작곡이 빨라졌다’라는 수준을 훌쩍 넘어선다. 음악 창작이라는 개념 자체가 다시 정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이 아니라 ‘창작 방식’이 바뀌고 있다


전통적으로 작곡은 ‘구상의 기술’과 ‘실행의 기술’이 긴밀하게 결합된 영역이었다. 하지만 AI 작곡이 도입되면서 이 둘은 빠르게 분리되고 있다. 아이디어를 형식화하고, 스타일을 규정하고, 감정의 방향을 설정하는 과정은 인간이 주도한다. 하지만 이를 구체적인 사운드로 전개하고 구현하는 단계는 알고리즘이 상당 부분 대행한다. 작곡가의 역할은 점점 기획자, 감독자, 편집자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휘자나 프로듀서에게 익숙한 ‘디렉팅’의 감각이 바로 창작의 중심에 들어오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영화 산업에서 감독의 역할이 진화해온 과정과 닮아있다. 초창기 영화감독은 카메라를 직접 돌리고 편집기를 만졌지만, 지금의 감독은 비전을 제시하고 각 분야 전문가들의 작업을 조율한다. AI 시대의 작곡가 역시 모든 음표를 직접 쓰기보다는, 음악적 비전을 명확히 설정하고 AI가 생성한 여러 버전 중에서 최적의 결과를 선택하고 다듬는 역할로 진화하고 있다.


AI는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음악을 재구성한다


많은 사람이 묻는다. “AI가 정말 작곡을 이해할 수 있나요?” 정답은 분명하다. 이해하지 못한다. AI는 음악적 의도나 감정, 미학적 판단을 모른다. 그러나 방대한 데이터의 패턴을 추출해 특정 장르나 작곡가의 관습을 ‘재현’하고 ‘재배열’하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이 능력은 프로 작곡가에게 매우 기묘한 지점을 만들어낸다. AI가 생성한 음악은 때로는 지나치게 매끈하고, 때로는 의외로 창의적이다. 그렇지만 그 창의성은 인간적 번민이나 서사에서 나오지 않는다. 통계를 기반으로 한 우연적 조합, 그럼에도 음악적 설득력이 
생기는 역설. AI 작곡의 본질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 현장에서 이런 경험은 흔하다. 재즈 피아니스트가 AI에게 비밥 스타일의 즉흥연주를 요청했을 때, 나온 결과물은 화성 진행도 정확하고 리듬도 그럴듯했지만, 어딘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의지’가 느껴지지 않았다. 반대로 어떤 영화음악 작곡가는 AI가 우연히 생성한 불협화음의 조합에서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긴장감을 발견하기도 했다. AI는 의도 없이 의미를 만들어내고, 목적 없이 가능성을 제안한다.


그렇다면 ‘예술성’은 어디에 있는가?


AI 시대의 음악은 우리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작품의 ‘결과물’로 정의되는가, 아니면 ‘창작 과정’의 깊이를 포함하는가? 전통적 작곡 관점에서 예술성은 인간의 정서, 의도,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그 지점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따라서 AI 음악은 종종 ‘기술적으로 우수하지만, 정서적으로 비어 있다’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면, AI 음악은 새로운 형태의 창작 협업으로도 볼 수 있다. 작곡가는 전체 구조와 음악적 방향성을 설계하고, AI는 그 설계를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제안하며, 최종 해석과 선택은 다시 인간의 손에 남는다.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긴장과 조율 역시 예술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음악사는 늘 이런 질문과 함께 진화해 왔다. 악보의 발명으로 즉흥연주의 순간성이 약화했을 때, 녹음 기술로 연주의 일회성이 사라졌을 때, 신시사이저로 전통 악기의 물리적 제약이 무너졌을 때도 비슷한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각각의 기술은 결국 음악적 표현의 영역을 넓혔고, 새로운 장르와 미학을 탄생시켰다. AI 역시 그런 전환점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크다.

AI 작곡은 음악 창작의 종말이 아니라, 창작의 재배치다. 그리고 이 재배치는 음악가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_ 정현구 [이미지 : 류우강 기자]

이제 음악가는 새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이 작곡가를 대체할 것인가, 혹은 확장할 것인가. 이 논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AI는 이미 창작의 지형을 바꾸어놓았다. 작곡가의 전문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넓고 입체적인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형식 분석, 음악적 디렉션, 스타일 큐레이션, 사운드 브랜딩 등 새로운 역할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AI가 제공하는 선택지 중에서 무엇이 음악적으로 의미 있는지 판단하는 안목이다. 프롬프트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생성된 수십 개의 버전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어떤 부분을 수정하고 어떤 부분을 살릴 것인가. 이 모든 판단은 여전히 인간 음악가의 귀와 감각, 그리고 오랜 훈련을 통해 쌓인 음악적 직관에 의존한다.

AI 작곡은 음악 창작의 종말이 아니라, 창작의 재배치다. 그리고 이 재배치는 음악가에게 위기가 아니라 기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이어질 연재에서는 AI 작곡의 기술적 메커니즘부터 실제 현장 활용 사례, 저작권 쟁점, 교육 방식의 변화, 산업 구조의 재편까지 단계적으로 살펴보며 이 거대한 변화의 지도를 함께 그려볼 것이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고,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변화 속에서 음악의 본질을 다시 발견하는 것이다.
 
Maestro Nova: Cello Concerto No.2 Inspired by Haydn (AI Classical)


정현구 (작곡가, 지휘자,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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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작곡#정현구작곡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