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의 時부렁調부렁 35】 한글의 끗발 순서
한글의 끗발 순서
김선호
물이라, 불이 세다 노인 둘이 싸우는데
물불을 안 가린다 이런 말도 못 들었나 기세가 등등한 놈이 앞자리에 앉는 기라 오행도 수극화(水剋火)라고 물이 불을 끄지 않드나 남녀노소 신문방송 연극영화 정치경제 지금이야 뒤집혔지만 행세 순서 아니드나 사람도 칠십 프로가 물로 됐다 하드만 모르는 소리 마라 물을 한번 불러볼까 물병장 물딱지에 물수능 물백신까지 어째 좀 모자랄 때면 튀어나오지 않드나 지나던 젊은이가 핏발 세워 끼어들며 할배요 불호령에 불수능이라 안 하능교 물보다 불이 위지만 더 센 놈 좀 들어볼라요 술 한 잔에 불이 나니 술이 그 윗자리고 술보다 강한 놈은 울이라고 안 하능교 저마다 담을 치고는 편 가르니 무섭다요 울 안에 꼭대기엔 줄이라는 백이 있어 청문회를 안 나와도 찍소리도 못하잖소 끗발을 굳이 매기면 ‘물불술울줄’순이라요
대왕의 선견지명이 이만한 줄 모르셨능교!

올해는 유난히도 자연 재난이 많았다. 산청과 의성에서 대형 산불로 인명과 재산피해가 컸고, 전국을 누비면서 타격한, 시간당 100㎜가 넘는 극한호우가 또한 그랬다. 앞으로도 이런 기상이변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섬뜩한 경고도 나왔다. 인류가 지구를 못살게 군 대가라니, 하늘만 원망할 수도 없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처럼 유치한 질문이지만, 물과 불 중에서 어떤 게 무서울까? 양동이로 붓듯 쏟는 물난리를 보면 물보다 무서운 게 없다. 사력을 다한 진화가 무색하게 기세를 키우는 불 앞에 서면 또한 불이 제일 두려운 듯싶다. 불난 끝은 있어도 물 난 끝은 없다는 속담도, 송두리째 태워버린 산청산불 현장과는 안 맞는다.
‘물불 가리지 않는다’처럼 물과 불은 이웃한다. 첫소리도‘ㅁ’ 다음에 ‘ㅂ’이니 물, 불이다. 내친김에 ‘ㅅ, ㅇ, ㅈ’까지 이으면 ‘술울줄’이다. 말장난이지만 술이 무서운 사람도 있고, 따뜻한 울안에서 든든한 줄을 잡고 휘두르는 사람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잊혀질 만하면 ‘아빠찬스’가 등장해 갑남을녀 속을 긁는다. 자연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사람이 만든 울과 줄까지 머릿발을 곤두세운다.
각설하고, 올해는 ‘국영수’과목이 이른바 ‘불수능’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지나치게 어려워 부적합하다는 비판도 거세다. 이제 며칠 있으면 공식적인 수능 결과가 발표된다. 물수능일지 불수능일지 모르겠으나, 최선을 다한 그대들에게 위로와 찬사를 보낸다. 수고했노라, 젊은이들이여! 부디 더 높이 더 멀리 비상하여 꿈을 펼치시라!
김선호 시인,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

조선일보 신춘문예(1996)에 당선하여 시조를 쓰고 있다. 시조를 알면서 우리 문화의 매력에 빠져 판소리도 공부하는 중이다. 직장에서 <우리 문화 사랑 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으밀아밀』 『자유를 인수분해하다』등 다섯 권의 시조집을 냈다. 코리아아트뉴스 문학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충청북도 지역 문화예술 분야를 맡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