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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 성영소의 "늙는다는 것은"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시 해설 ] 성영소의 "늙는다는 것은"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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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28 ] 

늙는다는 것은

 

성영소

 

늙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

욕심의 근육도 늙어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을 때

저녁놀이 보이기 시작했다.

찬란한 한낮의 햇빛보다 더 아름다운 저녁놀이


늙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

가쁜 숨을 몰아쉬기 시작하면서

평생 잠시도 쉬지 않고 숨을 쉬었으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직접 불어넣어 주신 숨을

 

늙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

멀리서 찾던 행복이 바로 곁에 있음을 알았다.

얼마 전 다녀간 손자의 식스팩

허리 굽은 아내와 느릿느릿 걷는 산책

길가에 핀 작은 꽃

그게 다 행복이다.

 

여든의 벽을 간신히 타고 오르니 육신이 피곤하다.

눈이 어둡고

귀도 어둡고

모든 감각이 시들어간다.

이제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그날을 기다린다.

 

그러나 깨닫는다.

눈이 어둡고 귀가 어두운 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 듣지 못하던 것을

영안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는

육신을 버릴

그날을 위한 훈련임을

영혼의 사이클을 맞추기 위한 훈련임을

 

늙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늙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도서출판 비엠케이, 2025)

 

"허리 굽은 아내와 느릿느릿 걷는 산책길가에 핀 작은 꽃 그게 다 행복이다" _ 성영소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노화를 예찬하라

 

  1943년생 시인이 늙는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라고 거듭해서 외치고 있다. 여든이 넘었으니 노시인이다. 기자로, 외교관으로, 회사 중역과 대표로 활동하느라 정신없이 달려오다가 모든 공직을 내려놓고 나서 시 쓰기에 매진, 이제 막 3권째 시집을 출간하였다. 일흔 넘어 등단하고 여든 넘어 열정적으로 시를 쓰고 있는 아주 드문 경우가 아닌가 한다.

 

  『삼국지』를 보면 촉나라의 장수 중 황충(黃忠)이라고 나오는데 계속해서 노장군혹은 노익장으로 묘사된다. 222년 이릉 전투에서 유비가 노인이 나서봤자 소용없다.”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분격해 군사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오나라 진지를 공격해 들어가 힘겹게 싸운다. 주위에서 말리는 것도 듣지 않고 무모하게 적진 깊숙이 들어가다 어깨에 화살을 맞아 크게 다친다. 유비는 내가 그런 서운한 말을 해서 그대가 이런 일을 겪고 말았다며 사죄하였고, 황충은 유비가 지켜보는 가운데 7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때는 75세 정도면 완전히 노인이었나 본데 100세 시대인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인이 80줄에 접어들어 불편해진 것들을 꼽아본다. 숨도 가빠지고 육신은 자주 피곤하다. 모든 감각이, 즉 시각ㆍ청각ㆍ후각ㆍ미각ㆍ촉각 등이 다 약해지고 둔해진다. 특히 눈과 귀가 어두워져 살아가는 것이 아주 불편해지고 만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그다지 멀지 않았음을 명확히 인식하게 된다. ‘내 아무리 오래 살아봤자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뇌리를 엄습할 것이다. 과거를 생각하면 아쉽기만 하고 현재는 몸 여기저기가 아프다. 미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어 더 살아본들 그 세월이 그리 길 것 같지 않다. 그런데 시인은 비탄에 잠겨 한숨을 내쉬고 있지 않다. 소년처럼 씩씩하고 청년처럼 용감하다.

 

  식스팩을 자랑하는 손자를 보니 기분이 좋아지고 길가에 핀 작은 꽃을 봐도 신기하다. 제일 놀라운 일은 지금까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했던 것을 마음의 눈, 혹은 영혼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신앙심을 갖고 있다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의 말씀이 눈에 더 잘 들어오고 귀에 더 잘 들어오게 되었을 것이다. 윤회 혹은 구원을 생각하면 죽음이 비극이 아니다. 몸을 위주로 살아오던 삶이 영안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는상태가 되었기에 각박한 일상적 삶으로부터 초탈의 경지에 들게 되었다. 초월의 상태에 접어듦으로써 영혼의 사이클을 맞추기 위한 훈련을 하게 된 것을 이제는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전에는 몸이 즐거운 것, 즉 맛있는 것이나 배부른 것을 찾았는데 이 나이가 되니 고요한 것, 편안한 것을 찾게 되었다. 정겨운 것, 순수한 것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하늘의 이치를 따르는 순천자가 되었으니 마음을 편히 갖고서 최후의 날을 기다린다면 늙는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엄청난 일이리라. 나도 성영소 시인처럼 그런 노년을 맞이할 수 있을까. 그것은 천우신조가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 성영소 시인 ]

 

  한국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 졸업했다. 동아일보사에서 10여년 간 기자 생활을 한 뒤에 주한 에콰도르 명예부영사로 영사 업무를 수행했다. ()쌍용과 가봉 국영기업인 CODEV의 합작법인 SOGACCO 부사장으로 아프리카 가봉에서 근무했다. 쌍용그룹 홍보실장, 쌍용그룹 비서실장, 쌍용자동차 기획본부장 등을 거쳐 한국전기통신공사(KT) 부사장과 한국교육방송공사(EBS)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내 마음에 흐르는 강』 『익는다는 말』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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