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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의 수필 향기] 활옷 만개, 자수에 새긴 소망 - 김영희
문학/출판/인문

[김영희의 수필 향기] 활옷 만개, 자수에 새긴 소망 - 김영희

수필가 김영희 기자
입력

  소나무 가지마다 가득 틔운 솔잎들이 푸릇푸릇 희망을 품었다. 암수 공작새 한 쌍이 소나무 아래에서 한가로이 노닌다. 날개를 활짝 펼치고  서 있는 수컷의 아름다움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공작새 암컷. 여인의 고운 솜씨로 한 땀 한 땀 새긴 자수 작품이다. 

 

  '경복궁 월대 복원' 기사가 뜨겁게 방송을 탔다. 궁금증에 경복궁 앞에 새로 복원된 월대月臺를 보기 위해 나도 긴 대열에 합류했다. 오랜 공사가 끝나고 새롭게 공개된 '월대'와 '서수상', '해치상'과 '광화문 현판'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다. 

 

  월대는 궁궐이나 건물 앞에 놓인 넓은 기단으로, 조선시대에 국가의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임금과 백성이 직접 소통하던 곳으로, 1866년에 만들어졌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인 1923년에 일제가 전차 철로를 만들기 위해 월대를 철거하면서 그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서울시와 문화재청이 함께하여 1991년 6월 5일 '경복궁 복원 기공식'을 시작으로, 100년 만인 2023년 10월 15일에 모습이 완성된 것이다. 경복궁은 1395년 조선 왕조가 개성을 떠나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면서 지은 첫 번째 정궁이었다. 

  

  광화문의 온전한 복원은 1994년 '복원기본계획'수립 이후, 장기적으로 추진되어온 사업이다. 많은 고증을 연구하여 월대가 복원되고 입구 좌우에 있는 '서수상瑞獸像'은, 호암미술관 정원에 있던 것을 고 이건희 회장 유족의 기증으로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또한 광화문 현판은 한글로 되어 있었는데 원래의 모습대로 한자로 바뀌었고, '해치상'도 제 자리를 찾았다. 

 

  광화문 월대 복원의 의미는 일제에 의해 훼손된 우리의 역사와 문화적 공간을 회복하고, 우리 민족의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는 것이다. 월대 복원을 축하하기 위해서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들과 한복을 입은 많은 외국인들도 경복궁을 방문했다. 
 

  양쪽 맨 앞을 지키는 서수상을 지나 월대를 지나 광화문으로 들어섰다. 광화문의 아치가 빛을 받아 고즈넉한 운치를 자아내고 궁궐 처마와 기와를 비춰, 마치 내가 그 시대 사람이 된 듯 시대를 되돌아보는 감동을 준다. 광화문 위로 떠오른 휘영청 밝은 달이 만물을 비추고 은은하게 퍼지며, 주위를 붉게 물들이는 광경에 매료되어 한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광화문을 들어서니 왼쪽으로 국립고궁박물관 현판이 보이고 벽면에 걸려있는 '활옷 만개' 현수막이 내 시선을 끌었다. 때마침 열린 '활옷 만개滿開-조선 왕실 혼례복전'을 보기 위해 국립고궁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전시장 초입에 커다란 활옷 두 벌이 긴 소매가 펼쳐져 걸려있었다. 한 벌은 앞면을, 다른 한 벌은 뒷면이 보이도록 전시되어 옷의 앞뒤 모양새를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조선 왕실에서 '긴 홍색 옷'이라는 뜻으로 '홍장삼紅長杉'으로 기록, 유래된 활옷은 고유 복식의 전통을 이은 긴 겉옷으로, 치마와 저고리 등 여러 받침옷 위에 착용하는 대표적인 여성 혼례복이다. 화려한 자수와 붉은 빛깔인 대홍大紅의 염색, 아름다운 금박 기법 등으로 제작되었다. 
 

  활옷은 붉은 비단 바탕에 모란과 연꽃, 나비와 봉황, 해와 산,물과 돌, 소나무와 달과 구름, 사슴 등 십장생을 포함하여 여러 문양이 가득 수놓아졌다. 신부를 아름답게 꾸며주고 행운과 행복, 부와 희망과 기쁨 등을 기원하는 문양들을 수놓아, 부부가 자식을 낳고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며 해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수놓아졌으리라. 

 

  '활옷 만개' 전시회는 나라밖 문화유산을 복원하여 최초로 공개되었다. 현존 활옷 가운데 '복온공주(순조의 둘째 딸) 활옷'이 국내에서 최초로 선보이는 자리라고 한다. 이제서야 국내로 돌아와 마주한 그 의미가 애달프게 다가온다. 전시된 활옷 일부는 다른 나라에 소장되어 있어 잠시 국내 전시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와야만 했다. 일제에 빼앗기고 6.25전쟁으로 어지러웠던 시기에, 우리의 보물들은 약탈되고 도난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국내에 보관된 것이 적어서 전시를 위해 우리의 것을 다른 나라에서 빌려와야 한다는 사실은, 나라를 잃었던 우리의 슬픔이며 받아들이기 어려운 아픔이다. 활옷은 찢어질 듯 해져있어 비통했던 나라의 모습을 닮아있다. 낡디낡은 활옷은 그동안의 고단했을 날들의 서러운 아픔을 연상시킨다. 

 

  서둘러 입장표를 사고 궁내로 들어섰다. 하늘로 곧게 솟은 키 큰 은행나무와 가지를 옆으로 길게 늘어뜨리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는 굵은 소나무들이 지나간 긴 세월을 대신 말해준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전시를 마치고 덕수궁에서 '자수전'으로 다시 선보인 활옷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몇 개월 만에 다시 만난 활옷이 반갑게 다가왔다. 너른 품을 활짝 펴고 설치된 활옷이 이제야 자유를 찾은 듯 느껴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덕수궁에서 열린 '자수전'에는 활옷과 자수병풍, 액자에 끼워진 훌륭한 자수 작품들이 많이 전시되었다. 특히 대한민국 지도 전체를 꽉 채운 무궁화 자수가 아름답고 고와 무궁화 물결이 일렁였다. '자수전'에 출품된 작품들의 연혁을 보니 당시의 자수는 일본으로 유학 간 학생들의 자수가 많고, 시간이 흘러서 그 학생들이 스승이 되어 여학교에 자수 시간이 생기고 학생들이 자수를 배우기 시작했던 것이다. 

 

  도도하고 고고한 자태. 꽃이 진 뒤에 피는 목련 나뭇잎은 손바닥만하게 너른 잎이 무어든 잘 품어줄 것 같은 믿음을 준다. 또한 목련나무 기둥은 곧고 굵게 자라 심성도 바를 것 같다. 목련 꽃잎이 한 잎 두 잎 벌어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탄성이 터져 나온다. 보드라운 유백색 꽃잎이 여린 듯 강인해 보인다. 겨우내 찬바람을 견뎌내고 터뜨리는 꽃잎은 꽃의 크기만큼 풍요롭고 고귀하다. 목련 꽃이 활짝 핀 목련나무는 그 아름다움에 사진을 찍지 않고는 그 앞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전시회에는 예쁘게 수놓아진 목련꽃 자수도 걸려있었다. 

 

  한 땀 한 땀 수놓은 자수는 활옷을 꽃피우고, 문관의 관복에서 빛나고 베개 씌우개, 보료, 방석의 화려한 문양들로 생활 속에 자리매김했다. 새가 허공을 날고 학이 나뭇가지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높은 이상과 고고한 인품을 상징하는 문양들로 우리가 간직해야 할 것들이다. 
 

  최근에 합성연료의 악영향이 염려되어 천연 염색에 관심이 많아졌다. 우리의 다양한 전통염색의 가치가 활성화되어 계속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광화문의 월대 복원으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경복궁의 모습에 가슴 뭉클하다. 또한 활옷의 아름다움을 재해석하여 적용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하게 해석된 한복 전시회를 여는 디자이너의 노고에 감사함을 전한다. 

 

  다음에는 또 어떤 전시회가 열릴까. 고궁 나들이는 언제나 내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한다. 

   

 

- 김영희의 '활옷 만개, 자수에 새긴 소망' 중에서

 

활옷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수필 읽기]

 

  2025년 8월 15일 올해는 광복 80주년의 해이다. 

  여러 단체에서 광복 80주년 기념식이 성대하게 열릴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는 문화재를 복원하고 보존 처리하는 작업공간이 마련되어있다. 적외선 촬영조사, 오염물 제거, 손상된 직물보강 등 약 5개월의 공정을 거쳐 활옷 본연의 바탕색인 다홍색을 되살렸다고 한다. 현재 활옷은 국립박물관 소장 20여점과 해외박물관 소장 20여 점으로 50벌이 채 되지 않는다. 이 전시는 전통 복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서 뜻 깊은 전시회였다. 

  

  장인들이 이어온 전통 염색 방식은, 비단에 붉은 염색을 하기 위해서 자연에서 얻은 다양한 식물의 꽃과 잎, 열매와 줄기 등을 활용한 전통 염료를 만들어 사용했다. 수십 종의 식물을 이용해 다양한 색깔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 낸 고운 색으로 수십 번 염색하여 비단에 입히고, 고운 색실로 비단 위에 자수를 한 땀 한 땀 수놓은 옷이 활옷이다. 장인들이 염색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만들어 잘 설명해주어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의 문화와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우리의 잘못된 지난 역사를 되새기고, 그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온 국민은 늘 깨어있어야 한다. 

  

  우리가 가정을 지키듯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것을 발판으로 이 나라, 대한민국을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는 빈틈없는 노력만이, 이 험난한 시대에 우리나라 우리 국민들이 뒤쳐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땅을 지키신 선조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자손들이 우리의 뼈아픈 과거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역사를 잊은 나라에 미래는 없다. 

 

김영희  수필가, 코리아아트뉴스 칼럼니스트, 문학전문 기자  
 

         충남 공주에서 태어남 
         수필가, 서예가, 캘리그라피 작가, 시서화 ,웃음행복코치,

         레크리에이션지도자, 명상가 요가생활체조

         <수필과비평> 수필 신인상 수상
         신협-여성조선  '내 인생의 어부바' 공모전 수상
         한용운문학상 수필 중견부문 수상
         한글서예 공모전 입선  

         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과비평 회원

  

수필가 김영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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