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인경 개인전 《너의 방에 숲이 무성할 때》, 갤러리밈서 개최
현대 도시의 공간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기억을 독창적인 심리 풍경으로 풀어온 권인경 작가의 개인전 《너의 방에 숲이 무성할 때》가 8월 26일부터 10월 30일까지 서울 갤러리밈 M’VOID(엠보이드) 5·6층 전시장에서 열린다.

권인경의 16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는 대표작인 ‘열린 방’ 연작을 비롯해 500호 규모의 대형 드로잉과 집 형태의 오브제 설치작품 등 신작 20여 점이 출품된다.
작가는 전통적인 수묵화 기법을 바탕으로 오래된 책을 오려 붙이는 고서 콜라주와 아
크릴 채색을 복합적으로 활용해왔다. 현대적인 건축물과 자연이 공존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화면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놓인 듯 낯설면서도 매혹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하나의 소실점이나 고정된 원근법을 벗어나 서로 다른 시점을 한 화면에 결합하는 구성은 내부와 외부, 개인과 사회, 기억과 현실의 경계를 허문다. 관람객은 작품 속 여러 방을 위에서 내려다보거나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때로는 정면으로 마주하며 각 공간에 쌓인 시간과 삶의 흔적을 더듬게 된다.
삶의 안식처이자 고립의 요새인 ‘방’
권인경의 작품에서 ‘방’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조건이자 세상과 소통하는 플랫폼이며, 동시에 인간의 내면세계를 시각화한 심리적 구조물이다.



방은 치열하고 분열적인 현대 도시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마련한 안식처이자 요새가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반복되는 일상의 틀에 갇힌 억압의 공간, 타인과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고립의 장소를 상징한다.
작품 속 집과 방의 구조는 고서를 여러 겹 오려 붙인 콜라주로 구성된다. 수백 년 전 기록된 문장들은 원래의 책과 문맥에서 분리된 뒤 서로 다른 글자와 문장을 만나 벽과 기둥, 창문과 가구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작업은 한 사람의 삶과 기억이 단일한 서사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시간과 관계에서 떨어져 나온 수많은 조각이 겹쳐져 형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잘려 나온 이야기는 사라지는 대신 새로운 위치에서 또 다른 문맥과 관계를 만들어낸다.
작품 속 화분과 빈 의자, 열린 문과 창문은 사람의 부재를 드러내면서도 그곳에 머물렀던 존재의 삶을 암시한다. 화면에는 인물이 직접 나타나지 않지만, 비어 있는 침대와 탁자 위의 꽃, 창가의 식물과 가구가 방의 주인과 그 내면의 기록을 대신 이야기한다.
콘크리트의 경계를 허무는 원초적 생명력
이번 전시에서 ‘식물’은 고립된 방에 균열을 내는 핵심적인 모티프로 등장한다.
방 안의 화분에서 시작된 식물은 창틀을 넘어 자라고,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오르며, 마침내 다른 존재의 공간과 외부 세계를 향해 뻗어나간다. 산과 폭포, 뒤엉킨 덩굴과 나뭇잎은 폐쇄된 내부에 거대한 자연을 불러들이며 인공적으로 구획된 도시의 규칙을 흔든다.

정형화된 공간에 갇혀 있던 내면의 욕망이 빛과 바깥세상을 향해 성장하는 식물의 모습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고정되고 단단한 ‘방’과 끊임없이 변화하며 자라는 ‘식물’의 결합은 현대인의 내면에 잠재된 유토피아적 열망과 자생력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방은 더 이상 갇힌 장소로만 머물지 않는다. 내면의 생명이 싹트는 ‘온실’이 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순환을 이어가는 또 하나의 ‘생태계’로 확장된다.
전시 제목과 같은 ‘너의 방에 숲이 무성할 때’ 연작에서는 초록의 생명력이 방 전체를 뒤덮는다. 그러나 숲이 방을 일방적으로 점령했는지, 방 안에서 자란 식물이 외부의 숲으로 뻗어 나간 것인지는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안과 밖의 식물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개인의 내면과 외부 세계의 경계도 흐려진다.
고립의 공간에서 생명의 우주로
숲으로 뒤덮인 방은 인공적이고 폐쇄적인 질서가 자연의 거침없는 생명력에 의해 새롭게 재편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심리적 자아를 상징하는 집 안에서 숲이 자라나는 장면은 현실과 규범의 경계를 허물고 치유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상상력의 발현으로 읽힌다.



작품 속 식물은 억압된 내면에서 피어나는 생명의 서사이자 한계 지어진 삶의 공간을 초월하려는 심리적 자생력이다. 소외되고 고립된 개인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생명력을 키워내고, 닫힌 공간을 온전한 우주로 확장해 나가는 정신적 성장과 치유의 과정을 보여준다.

박천 시안미술관 학예실장은 전시 서문 ‘너에게 닿는 선이 부디 하나가 아니기를’에서 권인경의 방을 관계와 경계의 관점으로 해석한다.
‘열린 방’ 연작에 등장하는 창문들은 모두 다른 폭으로 열려 있다. 훤히 내부를 드러내는 방이 있는가 하면 커튼이 반쯤 걷힌 방, 화분에 가려 안쪽이 희미하게 보이는 방도 있다. 완전히 열린 방도, 완전히 닫힌 방도 없이 저마다 허락한 만큼의 풍경을 보여준다.
이는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일이 모든 경계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허락한 폭을 인정하는 과정임을 환기한다. 문턱과 경계가 있어야 ‘누군가를 안으로 들인다’는 환대의 의미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숲으로 무성해진 방 역시 외부를 전부 받아들이거나 완전히 차단한 상태가 아니다. 방마다 숲을 들이는 폭이 다르고, 식물 또한 내어준 공간만큼 뿌리내리고 성장한다. 이 차이는 단절이나 야박함이 아니라 관계를 지속하기 위한 하나의 기술로 제시된다.
박천 학예실장은 “가까워질수록 선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선을 겹겹이 인정할 때 관계는 전부와 전무 사이 어딘가에 머물 수 있다”며 전시 제목을 “너에게 닿는 선이 부디 하나가 아니기를 바라는 축원”으로 읽어낸다.
수묵과 고서, 동시대 도시 풍경의 만남
1979년생인 권인경은 홍익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동양화 석사와 미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도시의 변화와 일상, 기억과 장소, 내면의 풍경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다.
서울시립미술관 ‘Emerging Artist’와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 공모 등에 선정됐으며, 2020년 GAMMA Young Artist ‘Best Young Artist Of the Year’에 이름을 올렸다. 2025년에는 가송예술상을 수상했다.
국내뿐 아니라 프랑스, 독일, 영국, 대만, 콜롬비아 등에서 열린 전시와 국제 교류전에 참여했으며, 파리 시테 데자르와 OCI 레지던시, 가나 장흥 아틀리에 등에서 활동했다.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양평군립미술관, 외교통상부 재외공관,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신청사 등 여러 기관과 컬렉션에 소장돼 있다.
《너의 방에 숲이 무성할 때》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개인의 방이 고립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타인과 자연을 향해 균열을 내며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래된 문장과 수묵의 번짐, 현대적인 색채가 만들어낸 화면 속에서 관람객은 자신의 기억과 내면의 방을 돌아보고, 그곳에서 자라나는 생명의 가능성을 마주하게 된다.

전시 개요
- 전시명: 권인경 개인전 《너의 방에 숲이 무성할 때》
- 전시기간: 2026년 8월 26일~10월 30일
- 전시장소: 갤러리밈 M’VOID(엠보이드) 5·6층 전시장
- 출품작: ‘열린 방’ 연작, 500호 대형 드로잉, 집 형태 오브제 설치작품 등 신작 20여 점
- 문의: 갤러리밈 02-733-8877
- 홈페이지: www.gallerymeme.com
- 이메일: [email protect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