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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01 ] 한희숙의 "누렁이"
문학/출판/인문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01 ] 한희숙의 "누렁이"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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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렁이

 

한희숙

 

나보다도 못한 놈이라는 사람이

나한테 발길질을 한다

강한 자한테는 내가 흔드는 꼬리 흉내 내고

약자는 디딤돌 삼아 까치발 들고 사는 사람

개만도 못한 놈이라고

영문도 모르고 나까지 욕 듣게 하는

 

내가 뭘 어쨌다고

 

재산 지켜주고 음식물쓰레기 처리해 주며

외로운 주인 반갑게 맞아주고 있을 뿐인데

배신 모르는 충정심 DNA 나눠주고 싶고

묶인 목줄만 아니면 한번 물어주고 싶은

더도 덜도 말고 나만큼만 하라고

오늘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인데

 

기름지게 먹은 회식 자리에서 먹다 남은

고기 뼈 한 토막 들고 올 줄 모르는

인정머리 없는 나만도 못한 놈

 

생각하며 애꿎은 밤하늘 보며 짖어댄다

 

―『길을 묻는 그대에게』(문화짱, 2025)

 

 누렁이 _ 한희숙 [ 이미지 : 류우강 기자]

  [해설]

 

   개가 사람을 비웃는다

 

  개를 의인화해 사람을 꾸짖고 있으니 일종의 우화(寓話). 서양에는 이솝 우화, 라 퐁텐 우화가 유명하고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은 20세기 최고의 우화소설이다. 이 땅에도 『삼국사기』에 실린 「귀토설화」와 「화왕설화」가 있다. 고려와 조선조에 많이 나온 가전체소설은(假傳體小說)은 우화 형식이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안국선의 신소설 『금수회의록』도 우화소설의 명작이다.

 

  한희숙 시인은 개를 앞세워 인간을 마음껏 풍자한다. 세상을 살다 보니 정말로 강한 자한테는 내가 흔드는 꼬리 흉내 내고/ 약자는 디딤돌 삼아 까치발 들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관매직이 통했던 시절, 아부는 필수였다. 하지만 누렁이는 아부를 하는 게 아니라 주인에게 너무나 충직할 뿐이다. 거짓말, 꾸밈, 눈속임 같은 것은 누렁이와는 무관한 세계다.

 

  주인에게 충정심의 DNA를 나눠주고 싶지만 주인은 누렁이의 심정을 모른다. “기름지게 먹은 회식 자리에서 먹다 남은/ 고기 뼈 한 토막 들고 올 줄 모르는/ 인정머리 없는 나만도 못한 놈인 인간을 누렁이는 끝끝내 믿고 따른다. 언제나 개만도 못한 인간들이 문제다. 게다가 인간은 개귀여워, 개웃겨, 개싫어 같은, 개를 비웃는 말을 너무나 많이 만들어 쓴다. 개뼈다귀, 개망나니, 개망신, 개기름, 개차반 등 가 들어가서 나쁜 뜻이 된 낱말도 많이 만들어 쓴다. 제발 개를 비웃지 말자. 학대하지 말자.

 

  [한희숙 시인]

 

  2010년 《문파문학》으로 등단. 2020년 문학과비평 작품상, 2023년 수원예술인 대상 수상. 수원문인협회, 경기여류문학회, 한국경기시인협회의 회원. 시집으로 『길을 묻는 그대에게』『소야 생각』이 있음.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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