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231] 반디의 "푸른 락엽―젊은 정치범 사형수에게"
푸른 락엽
―젊은 정치범 사형수에게
반디
때아닌 서리 바람 창밖에 모질더니
미루나무 담장 가에 푸른 락엽 웬말이냐
시든 가슴 부여안고 바람결에 나뒹구는
그 모습 애통쿠나 푸른 락엽 푸른 락엽
사나운 비바람을 눈물로 이겨가며
래일만을 믿고 산 고뇌의 네 한 생
기다리던 황금가을 눈앞에 두고 가니
더더욱 애석쿠나 푸른 락엽 푸른 락엽
붉은 세월 칼바람에 속절없이 스러져간
인생의 푸른 락엽 이 땅에 얼마더냐
불우한 세월 속에 젊은 꿈 지레 묻힌
못 잊어 애절스런 푸른 락엽 푸른 락엽
―『지옥에서 부른 노래』(리베르타스, 2025)

[해설]
북한의 인권에 대하여
이 시를 쓴 반디의 본명은 알 수 없다. 북한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고, 그의 나이도 알 수 없다. 이 시집이 2018년에 영국에서 먼저 출간되었을 때, 그리고 우리나라의 조갑제닷컴에서 번역ㆍ출간되었을 때의 제목은 『붉은 세월』이었는데 올해 리베르타스에서 증보판을 내면서 제목을 바꿨다. 좀 더 자극적으로 해야 팔릴 거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반디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다. 소설가 반디의 이름을 들어본 분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무명에 가깝다. 하지만 영국 등 유럽 사회에서는 너무나 유명한 작가다.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는 그의 소설집 『고발』(2014)은 외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2016년 프랑스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일본, 영국, 미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등 전 세계 20개국과 판권 계약을 맺었다. 문학전문지 《더밀리언즈》는 ‘2017년 가장 기대되는 작품’ 중 하나로 『고발』을 뽑았으며, 『채식주의자』의 번역가로 잘 알려진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영국판은 2016년 영국 펜(PEN) 번역상을 수상해 문학성을 입증하였다.
반디는 북한에서 정치범으로 처형된 한 청년을 이 시에서 그리고 있는데 사형수가 된 구체적인 이유는 밝히지 않고 있다. 탈북을 시도했거나, 남한 방송을 들었거나, 북한에서는 용납이 안 되는 또 다른 죄를 지었거나 무슨 이유에선가 일찍 세상을 떠난 젊은 정치범의 넋을 반디는 달래고자 한다. 너는 ‘푸른 락엽’이라고 계속 외치면서. “붉은 세월 칼바람에 속절없이 스러져간/ 인생의 푸른 락엽 이 땅에 얼마더냐”란 구절이 진실이라면 북한에는 정치범 사형수가 꽤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밝혀주는 ‘고발의 시’가 휴머니즘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인권을 요망하던 UN도 이제는 지쳤는지 말을 꺼내지 않고 있다.
[반디 작가]
‘반딧불이’를 뜻하는 ‘반디’는 작가의 필명이다. 전체주의 체제 아래에서의 삶에 대한 일련의 이야기를 써서 『고발』이라는 제목으로 탈북자, 브로커 등 여러 사람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원고를 반출시켰다.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린 이 책으로 ‘북한의 솔제니친’이라 불리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옥에서 부른 노래』는 반디 작가가 북한의 현실을 시로 담아낸 시집으로,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억압받는 이들의 증언이자 자유를 향한 외침이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