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하마(火魔)가 할퀴고 간 자리, 다시 꽃이 피다

청송에 다녀왔습니다.
달기약수탕의 약수를 마시고,
주왕산의 깊은 숨결을 따라 걸었습니다.
산은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수달래가 피었습니다.
봄꽃은 어김없이 피어났고,
차가운 겨울을 뚫고 나온 연록빛 생명들이
조용히 세상을 다시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
지워지지 않은 흔적들이 있었습니다.
2025년의 산불이 할퀴고 간 자리,
검게 그을린 나무와
속살을 드러낸 산의 상처는
아직도 말을 걸고 있었습니다.
마치 거대한 짐승,
하마가(火魔)지나간 듯한 깊고 넓은 흔적.
자연은 다시 살아나고 있었지만
완전히 회복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기후변화와 기후위기,
그리고 이 산불이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자연 속에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자연을 바꾸고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따뜻해진 공기,
건조해진 바람,
작은 불씨 하나가
산 하나를 삼킬 수 있는 시대.
이 모든 것은
결국 우리가 만든 질문이자,
우리가 답해야 할 숙제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피어나는 꽃을 보며
희망을 생각합니다.
자연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포기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 청송의 산은
조용히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청송의 상처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창한 구호보다,
지속 가능한 작은 실천에서 시작됩니다.
첫째, 불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것입니다.
산불의 대부분은 인간의 부주의에서 시작됩니다.
작은 불씨 하나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직접적인 예방입니다.
둘째, 숲을 ‘자원’이 아니라 ‘생명’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훼손된 숲을 복원하는 일은 단순히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존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숲 가꾸기,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셋째, 기후위기를 일상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선택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작은 습관들이
결국 큰 변화를 만듭니다.
넷째, ‘알고 있는 것’을 ‘행동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실천의 단계로 넘어가야 할 때입니다.
청송의 산이 우리에게 준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자연은 스스로 회복하려 애쓰고 있지만,
그 속도는 인간의 변화보다 느립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자연이 기다려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우리가 먼저 움직이는 용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바꾸는 작은 하나가
내일의 숲을 지키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