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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영임의 시조 읽기] 박명숙의 '적벽'
문학/출판
시 /시조

[강영임의 시조 읽기] 박명숙의 '적벽'

시인 강영임 기자
입력
수정2025.03.06 01:41
적벽/박명숙 [사진:강영임 기자]
적벽/박명숙 [사진:강영임 기자]

적벽

 

박명숙

 

성냥불 타들어가듯 물빛 홀로 꼬부라지는데

정강이 일으켜 세우고 적벽이 건너온다

징검돌 하나씩 버리면서 저벅저벅 건너온다

 

어둠살 들이치는 물결과 물결 사이로

금천강 저녁답 실핏줄을 터뜨리며

적벽이 물 건너온다 들소처럼 건너온다

 

해거름 물소리는 솔기마다 굵어지는데

성미 급한 어둠을 한 걸음씩 들어올리며

핏물 밴 적벽 한 채가 철벅철벅 건너온다

 

『맹물 같고 맨밥 같은』 (고요아침. 2022)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학습서나 학술서도 그렇지만 문학 작품에서는, 배경지식 여부에 따라 읽어내는 힘이 다르다. 특히 행간을 읽어야 하는 시조는 더 그렇다.

 

  ‘적벽은 충청도 절벽의 방언이다. 시인의 고향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벽의 의미는 여러 가지로 읽힌다. 특정한 지명이나 장소, 절벽, 인생, 나의 인연이 다가오는 것으로도 읽힌다.

그러나 인생 후반생에 접어든 사람들이라면 운()처럼 예측 못한 일이나, 불운을 극복하는 단단한 마음으로도 잘 읽힌다. ()은 착()과 군()이 합쳐진 글자로 군사가 쉬지 않고 가는 것을 말한다. , 운이라는 것은 예정된 시간에 묵묵히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힘들었던 고비들이 정강이 일으켜 세우고 징검돌 건너며 물결을 헤치며 들소처럼 건너온다. 사느라 힘든 어둠의 시간들을 하나씩 들어 올리며 철벅철벅 건너온다.

 

  타들어가는 성냥불처럼 물길이 홀로 꼬부라지다가, 저벅저벅 건너다가 철벅철벅 큰 움직임으로 건너온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모든 것들이 시각과 청각으로 말끔하게 털어내며, 힘차게 걸어온다.

 

  지금, 곁에 힘든 사람이 있다면 박명숙 시인의 「적벽」을 읽으면서 힘을 내 보는 것도 좋겠다. 겨울을 이겨야 봄이 오는 것처럼 새로운 삶도 그럴 것이다.

 

  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강영임 시인
강영임 시인

강영임 시인 


서귀포 강정에서 태어나 2022년 고산문학대상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시집 『시간은 한 생을 벗고도 오므린 꽃잎 같다』가 있다.

시인 강영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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