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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호의 시조 아카데미 46] 김강호의 "시 굽는 마을”

시인 김강호 기자
입력
“모든 것들이 잠시 머무는 원고지 속의 작은 우주”

 

시 굽는 마을

 

김강호

 

반딧불이 빗금 긋는 강변마을 시인의 집

사무치게 서러운 소쩍새 울음 받아

시인은 시 한 덩이를 이슥도록 굽고 있다

 

설익어서 더 구우면 숯덩이가 되곤 하는

드센 시와 씨름하다 지쳐버린 행간엔

상상의 완행열차가 덜컹이며 지나갔다

 

깊은 잠 호리병으로 시인이 빠져들자

처마 끝 별들이 와서 시 굽는 시늉하더니

원고지 칸칸마다에 애벌레처럼 들었다 

시 굽는 마을 _ 김강호 시인 [ 이미지: 류우강 기자]

「시 굽는 마을」은 시가 어떻게 태어나고 숙성되는지를 한 편의 밤 풍경 속에서 펼쳐 보이기 위한 작품이다. 시를 쓰는사람이 아니라 굽는사람으로 등장시켰다. 이 설정 하나만으로도 시 창작의 고통, 기다림, 그리고 변형의 시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첫수의 풍경은 매우 조용하면서도 신비롭다. 강변 마을, 반딧불이, 그리고 소쩍새의 울음은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니라 시적 탄생을 알리는 장치들이다. 반딧불이의 빗금은 어둠 위에 그어지는 미세한 문장처럼 보인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언어들이 밤의 백지 위에 긋고 지워지는 흔적이다. 소쩍새의 울음은 사무치게 서러운감정인데, 이것은 시의 재료가 되는 인간의 정서다. 시인은 그 울음을 받아 시 한 덩이를 굽는다. 이슥토록 굽는다는 표현은 창작의 긴 고통이다.

 

둘째 수에서는 시 쓰기의 어려움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시가 설익기도 하고, 더 구우면 숯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표현의 미묘한 균형이다. 덜 익은 시는 감정이 미처 형태를 얻지 못한 상태이고, 지나치게 구워진 시는 생명력을 잃은 과장된 언어다. 바로 그 사이에서 씨름한다. ‘드센 시라는 표현은 시가 결코 순순히 잡히지 않는 존재의 암시다. 행간에 지쳐버린 순간 상상의 완행열차가 덜컹이며 지나간다. 완행열차라는 비유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상상은 급행이 아니라 느린 속도로 찾아온다. 시적 영감은 번쩍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철길을 따라 천천히 들어오는 방문객 같다. 덜컹거림 속에는 기억, 체험, 감정이 섞여 있다.

 

셋째 수에 이르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흐려진다. 시인은 지쳐서 깊은 잠이라는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호리병은 전통 설화에서 다른 세계로 이어지는 통로처럼 등장하는 물건이다. 즉 잠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또 다른 창작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다. 시인이 잠든 사이 처마 끝의 별들이 내려와 시를 굽는 시늉을 한다. 결국 시는 개인의 노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우주가 함께 빚는 결과라는 암시다.
 

마지막 종장에 이르러 별들은 원고지 칸칸마다 애벌레처럼 들어앉는다. 애벌레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생명이다. 그러나 언젠가 날개를 가진 존재가 될 운명을 지닌다. 즉 원고지 위의 시어들은 아직 미완의 상태이지만 언젠가 날아오를 가능성을 품고 있다. 시의 탄생은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태하는 과정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시 굽는 마을은 특정한 장소이기도 하고, 마음속 작업실이며 동시에 세상의 슬픔과 상상이 모여드는 정신의 공간이다. 반딧불은 문장이 되고, 소쩍새의 울음은 감정이 되며, 별은 영감이 된다. 그리고 원고지는 그 모든 것들이 잠시 머무는 작은 우주가 된다.
 

 밤이 깊어질수록 더 선명해지는 반딧불처럼, 인간의 내면도 고요 속에서 비로소 문장을 얻는다는 사실을 조용히 들려주고 싶었다. 

 

김강호 시인 

김강호 시인

1960년 전북 진안 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당신 생각 소나기로 쏟아지는 날』외 다수

2024년 44회 가람문학상 수상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 「초생달」 수록

코리아아트뉴스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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