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휘의 K-메디 건강미학] 복날 삼계탕과 이열치열(以熱治熱)
복날이 다가오면 진료실 대화가 조금 달라집니다. 며칠 전에도 혈압약을 오래 드시는 어르신 한 분이 접수대 앞에서 웃으며 말씀하시더군요. "원장님, 이 찜통에 무슨 뜨거운 닭입니까. 시원한 냉면이나 한 그릇 하고 말지요."
저도 웃었습니다. 사실 저 역시 한여름에 뚝배기 앞에 앉으면 첫 술을 뜨기도 전에 이마부터 땀이 납니다. 그런데 그 땀이 왜 나는지, 그리고 그 땀이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고 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우리 조상들은 하필 일 년 중 가장 더운 사흘을 골라, 하필 가장 뜨거운 것을 드셨습니다. 저는 이것을 오래된 풍습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습니다. 냉장고도 에어컨도 없던 시절에 수백 년 동안 살아남은 습관에는, 대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유를 여러분과 함께 하나씩 짚어 보려 합니다.

◆ 겉은 뜨거운데 속은 차다는 말
『동의보감』에 하월복음재내(夏月伏陰在內)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서늘한 기운이 오히려 몸 안쪽에 숨어든다는 뜻이지요. 학생 시절 이 대목을 처음 읽었을 때는 솔직히 말장난처럼 느껴졌습니다. 밖이 이렇게 뜨거운데 속이 차다니, 무슨 말인가 싶었지요.
그런데 생리학을 들여다볼수록 저는 이 문장 앞에서 자꾸 멈춰 서게 되었습니다. 더위에 노출되면 우리 몸은 열을 버리기 위해 피부 혈관을 활짝 열고, 심장이 뿜어내는 피의 상당 부분을 피부 쪽으로 돌립니다. 그 피는 어디에선가 빌려 와야 합니다. 가장 먼저 양보하는 곳이 위와 장입니다. 내장으로 가는 혈류가 줄면 소화액이 덜 나오고 위장의 움직임도 굼떠집니다.
여름마다 입맛이 없고 배가 더부룩하다며 찾아오시는 분들의 복부를 만져 보면, 겉은 땀에 젖어 있는데 배꼽 아래는 서늘하고 단단한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에 종일 켜 둔 에어컨과 얼음물이 더해지면 위장은 한 번 더 움츠러듭니다. 옛 어른들이 "속이 냉해졌다"고 하시던 그 말씀은, 짐작이 아니라 관찰이었던 셈입니다.
◆ 여름은 소모의 계절입니다
땀은 물만 가져가지 않습니다. 나트륨과 칼륨, 마그네슘이 함께 빠져나갑니다. 그런데 목이 마르다고 맹물만 계속 들이켜면 어떻게 될까요. 특히 어르신들은 혈중 나트륨이 묽어지면서 기운이 빠지고 어지럽고, 심하면 정신이 흐려지는 저나트륨혈증까지 올 수 있습니다. 여름철에 "그냥 기운이 하나도 없다"고 하시는 분들 중에는 이 전해질 문제가 숨어 있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더 조용히 진행되는 손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근육입니다. 더우면 밥맛이 떨어지고, 자연히 국수와 냉면, 과일 같은 것으로 끼니가 기웁니다. 단백질이 줄어드는 것이지요. 근육은 하루도 쉬지 않고 허물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는 조직이라, 재료가 끊기면 저울추는 곧바로 허무는 쪽으로 기웁니다. 여름 한 철을 부실하게 나신 분들이 가을만 되면 부쩍 기운이 없어지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닙니다. 근육은 혈당을 태우는 소각장이자 우리 몸에서 가장 큰 내분비 기관입니다. 여름에 잃은 근육은 결국 겨울의 대사 건강을 갉아먹습니다.
◆ 그래서 하필, 삼계탕이었습니다
이 관점에서 삼계탕을 다시 보면 재료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닭고기는 필수아미노산의 균형이 좋고 소화 부담이 적습니다. 특히 근육 합성의 방아쇠를 당기는 류신(leucine)이 넉넉합니다. 류신은 세포 안의 성장 스위치인 mTORC1 경로를 자극해서 "이제 근육을 다시 지으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여름에 무너진 근육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대답인 것입니다.
국물도 그냥 물이 아닙니다. 뼈와 껍질에서 우러난 젤라틴에는 글리신과 프롤린이 풍부합니다. 이 가운데 글리신은 우리 몸의 대표 항산화 물질인 글루타치온을 만드는 세 가지 재료 중 하나입니다. 잠들 무렵 말초 혈관을 열어 심부 체온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소규모 연구들도 보고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연구들은 보충제 용량을 쓴 것이니, 국물 한 그릇으로 같은 효과를 기대하시기보다는 열대야 수면에 불리하지 않은 식사라고 여기시는 편이 정확하겠습니다. 여기에 국물은 물과 나트륨을 함께 돌려주기 때문에, 땀으로 잃은 것을 맹물보다 균형 있게 채워 줍니다.
약재들도 허투루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인삼의 진세노사이드는 항산화와 면역 조절, 피로 개선을 두고 꾸준히 연구되어 왔습니다. 황기는 예로부터 기를 보하고 땀을 거두는 보기지한(補氣止汗)의 약재로 쓰였고, 아스트라갈로사이드 성분의 면역·항염 작용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생강의 진저롤은 더위에 굼떠진 위장을 다독이고, 마늘의 황화합물과 대추가 여기에 더해집니다. 약과 음식의 뿌리가 하나라는 약식동원(藥食同源)이, 뚝배기 하나에 고스란히 설계되어 있는 셈입니다.
◆ 뜨거운 것을 먹으면 정말 더워질까
강의를 나가면 이 대목에서 꼭 손이 올라옵니다. 그래도 뜨거운 걸 먹으면 몸이 더 더워지는 것 아니냐고요. 그런데 실제 인체 실험의 결과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입안과 식도에는 온도를 감지하는 수용체가 촘촘히 깔려 있습니다. 뜨거운 국물이 지나가면 이 수용체들이 곧바로 시상하부의 체온 조절 중추에 신호를 보내고, 몸은 실제로 오른 심부 체온보다 훨씬 크게 땀을 냅니다. 캐나다 오타와대학 연구진은 땀이 온전히 증발할 수 있는 조건에서 뜨거운 음료를 마신 쪽의 체열 저장량이 오히려 더 낮았다고 보고한 바 있습니다. 열을 조금 넣고 그보다 많이 내보내는 셈입니다.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흘린 땀이 증발하지 못하면 이 이점은 사라지고 열은 그대로 몸에 쌓입니다. 습도가 지나치게 높거나, 옷이 땀을 가두거나, 에어컨 바람에 땀이 나자마자 식어 버리면 이열치열은 절반만 작동합니다. 조상들의 이열치열이 바람 드는 대청마루와 삼베옷 위에서 완성된 지혜라는 사실이, 그래서 저는 늘 마음에 걸립니다. 삼계탕을 드시고 잠시 땀을 들이며 바람을 쐬시는 그 몇 분이, 실은 처방의 마지막 대목입니다.
◆ 다만, 이것만은 목소리를 높여 말씀드립니다
이열치열은 더위에 지친 속을 데워 회복시키는 섭생의 원리이지, 온열질환의 대처법이 결코 아닙니다. 두통과 어지럼, 메스꺼움이 오고 땀이 멎으면서 피부가 붉게 달아오른다면 그것은 열탈진이나 열사병을 의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때는 즉시 서늘한 곳으로 옮겨 몸을 식히고 의료의 도움을 받으셔야 합니다. 뜨거운 국물이 아니라 냉각이 답입니다.
삼계탕이 모든 분께 똑같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진하게 우린 육수에는 퓨린이 적지 않으니 통풍이나 고요산혈증이 있으시면 국물을 다 드시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신장 기능이 떨어져 있거나 심부전으로 수분과 염분을 제한하고 계신 분, 혈압이 높으신 분도 국물의 양을 조절하셔야 합니다. 찹쌀죽은 혈당을 제법 빠르게 올리므로 당뇨가 있으시면 절반만 드시길 권합니다. 인삼은 항응고제를 드시는 경우 상호작용 가능성이 보고된 바 있으니, 복용 중인 약이 있으시면 주치의와 한번 상의하신 뒤 드시는 것이 안전합니다. 좋은 음식일수록 누구에게 얼마나가 중요합니다.

◆ 「오늘의 처방 ①」 삼계탕을 항노화 밥상으로 바꾸는 법
◇ 껍질은 절반만 걷어 내고 살코기를 넉넉히 드십시오. 포화지방은 덜고 단백질은 챙기는 가장 쉬운 조정입니다. 한 끼 25~30g 이상이면 근육 합성 스위치를 켜기에 충분합니다.
◇ 국물은 한두 국자면 됩니다. 전해질을 챙기는 이득은 그대로 얻고 염분과 퓨린 부담만 덜어냅니다.
◇ 채소를 먼저, 닭고기를 다음에, 찹쌀죽을 마지막에 드십시오. 같은 밥상도 순서만 바꾸면 식후 혈당 곡선이 눈에 띄게 완만해집니다.
◇ 열무김치와 부추, 오이냉국처럼 칼륨이 넉넉한 여름 채소를 곁들이시면 나트륨의 균형이 잡힙니다.
◇ 그리고 드신 뒤 15~20분만 천천히 걸으십시오. 제가 늘 말씀드리는 처방입니다. 여름에는 해 질 무렵 그늘진 길이 가장 좋습니다.
◆ 「오늘의 처방 ②」 늦여름, 몸의 중심을 데우는 생활
◇ 냉방은 26~27도, 실내외 온도차는 5도 안쪽으로 두십시오. 급격한 온도차만큼 자율신경을 지
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 얼음물 대신 미지근한 물이나 보리차를 곁에 두십시오. 순간의 시원함은 위장 혈류를 한 번 더 조입니다.
◇ 잠들기 한두 시간 전 미지근한 물로 짧게 샤워하시거나 족욕을 해 보십시오. 말초 혈관이 열리면서 심부 체온이 내려가 열대야에도 잠이 수월해집니다. 참고로 사우나를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서 심혈관 질환과 치매 위험이 낮았다는 대규모 관찰 연구가 있습니다만, 인과를 증명한 것이 아니라 경향을 보여 준 결과라는 점은 함께 말씀드립니다.
◇ 아침 단백질만은 거르지 마십시오. 여름일수록 아침의 달걀 하나, 두부 한 조각이 근육의 방파제가 됩니다.
◇ 겨울에 심해지는 병은 여름에 다스린다는 동병하치(冬病夏治)를 기억해 주십시오. 양기가 가장 왕성한 이 계절에 속을 따뜻이 하고 근육을 지켜 두는 일이, 다가올 겨울의 면역과 순환을 미리 준비하는 가장 값싼 투자입니다.
◆ 오래 살아남은 습관 앞에서
저는 옛 어른들이 무조건 옳았다는 식의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근거가 없는 것은 근거가 없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의사의 일이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열치열 앞에서만은 매번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분들에게는 혈류가 어디로 몰리는지 측정할 장비도, 아미노산을 분석할 시약도 없었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눈과 시간뿐이었지요. 그 눈으로 매년 여름 사람들이 어떻게 지치고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수백 년 동안 지켜보셨고, 그 긴 관찰이 결국 "가장 더운 날에 가장 뜨거운 것을 먹으라"는 한 문장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니 복날의 삼계탕은 더위와 겨루자는 호기(豪氣)의 음식이 아닙니다. 더위에 지쳐 서늘해진 속부터 먼저 챙기라는, 조용하고 다정한 당부에 가깝습니다. 올여름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밥상에 놓인 따뜻한 한 그릇이 그저 한 끼의 보양으로 그치지 않고, 다가올 가을과 겨울의 근력과 면역을 미리 지어 두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부디 이 늦여름, 속부터 따뜻하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이열치열은 더위와 겨루라는 말이 아니라, 더위에 지쳐 서늘해진 속부터 먼저 챙기라는 다정한 당부였습니다."
김두휘 한의사 보건학 박사

압구정린바디한의원 대표원장
항노화 한방성형 장수의학 전문의
유럽 1호 시술 허가 한의사
국제 한방성형협회 회장
대한 한방성형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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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관리 의원장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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