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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 박재화의 "현수막 거는 사람 1"
문학/출판
시 /시조

[시 해설] 박재화의 "현수막 거는 사람 1"

KAN 편집국 기자
입력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 10]

현수막 거는 사람 1

 

박재화

 

 

매주 전단지 4,000장을 돌렸다

현수막은 달마다 300개를 걸었고

주말이면 서울은 물론 전국을 돌았다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서울대를 가고 싶어 하던 소녀가 깜쪽같이 사라진

1999213일 밤 모든 것이 멈춰서고 사라졌다

여고생이 평택 도일동 막차에서 내렸을 때

남은 승객 30대 남성도 따라 내렸다는데

단순가출이라며 경찰은 사흘 뒤에야 움직였다

수사는 미궁에 빠졌고 어디서도 혜희 소식은 날아오지 않았다

163cm 얼굴 둥글고 검은 피부 흰 블라우스 빨간 조끼 파란 코트

가족이 애타게 찾고 있습니다

헛 제보 장난 전화에 수백 번 헛걸음쳤고

빚만 늘어 어느새 신용불량자가 되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60만원 중 40만원이

현수막 게시와 전단지 배포에 들어갔다

주위에선 포기하라지만 걸고 뿌리지 않으면 잠을 못 잤다

절망과 질병 속에 가라앉던 아내는

2006년 농약을 마셨다 전단지를 끌어안은 채

따라 죽으려니 맏딸이 같이 죽겠다고 나서 죽지도 못했다

폐지 주워 팔면서 현수막 걸고 전단을 돌리니

어언 플래카드 일만 개, 전단지 일천만 장이다

현수막 바꿔 걸다 낙상사고에 다시 뇌경색까지

불편한 몸으로 제보자에겐 신장이라도 떼어드리겠다 했건만

2024826일 현수막 싣고 나선 길이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덤프 트럭에 치여 일흔한 살 송길용 씨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속에 스러졌다

애오라지 딸 찾아 헤매던 4반세기가

260장 현수막으로 남아 비바람 속에 찢겨갔다

 

ㅡ『새벽이 새 떼를 날릴 때까지』(현대시학사, 2025)에서

 

실종된 송혜희 좀 찾아주세요 [이미지:차진 기자]

  [해설]

 

  박재화 시인이 현수막을 보고 비통해 하였다. 자식이 행방불명이 된 경우가 어찌 송길용 씨뿐이랴. ‘미아 찾기는 한국전쟁 이래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그런데 송혜희 씨의 경우는 행방불명이라 미제사건이 되고 말았다. 고등학생인 딸이 귀가하다가 사라졌으니 송길용 씨에게는 청천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그날부터 딸을 찾기 위해 아버지가 기울인 노력과 정성은 온 국민을 감동시키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녔다. 현수막을 걸고 전단지를 뿌리면서. 장장 25년을. 멈추지 않고.

 

  시인은 기자정신으로 이 사건을 시집 안에 새겨넣고자 결심했다. 의도적으로 애매성, 모호성, 상징성 같은 것을 배제하였다. 6하원칙에 의거해 사실 그대로 적었다. , 송길용 씨와 부인, 자식 송혜희 씨의 사연을 돌려 말하지 않고 기사처럼 작성하였다. 나라도 이 안타까운 사연을 증언하리라. 시집에 넣어 오래오래 전하리라. 그런데 실은,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다느니 애통한 사건이라느니 하는 말을 일절 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인 나는 진한 감동을 받았다.

 

  송길용 씨는 25년 동안 딸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른 세상에 감으로써 딸 찾기를 중단하였다. 영혼이 있어 부녀가 상봉했으면 좋겠다. 얼마나 딸을 사랑했으면! 얼마나 딸이 보고 싶었으면! 현수막을 나 또한 수도 없이 보았지만 시로 쓸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박재화 시인이 먼저 썼다. 아아, 박재화 시인이 약간 밉다.

 

[박재화 시인]

 

  박재화 시인은 1951년 충북 보은에서 태어났다. 성균관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고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4년 《현대문학》에 「도시의 말」 연작시로 추천 완료 등단했다. 시집으로 『도시의 말』 『우리 깊은 세상』 『전갈의 노래』 『먼지가 아름답다』 『비밀번호를 잊다』 등을 출간했다. 14회 기독교문학상, 성균문학상, 10회 다산금융인상 등을 수상했다. 두원공과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 『욥의 슬픔을 아시나요』 『나무 앞에서의 기도』 『사람 사막』 등 
 

평전 『마지막 선비 최익현』 『최초의 신부 김대건』 『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등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KAN 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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