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공지
[KAN: Focus]
[특별기고] 기초예술에 투자하는 용기, 행정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선규 칼럼니스트
입력
진짜 기업가 정신은 예술가에게 있다

기초예술에 투자하는 용기, 행정의 전환이 필요하다
[조선규 칼럼니스트]
누가 진짜 기업가인가
누가 진짜 기업가인가
문화예술 지원 사업 설명회에 가면 자주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예술도 이제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지속가능한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행정은 예술가들에게 경영 마인드를 요구하고, 예술단체에게 사업계획서를 요구하며, 창작자에게 수익성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 그런데 이 풍경을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 묘한 역설이 보인다.
과연 행정은 자신이 말하는 기업가 정신과 예술가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어쩌면 행정은 둘 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신에게 익숙한 관료적 논리로 두 개념을 재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정작 기업가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쪽은 예술가가 아니라 행정 자신일지도 모른다.
누가 진짜 모험가인가
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무엇일까? 불확실성 속에서 기회를 포착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혁신을 시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 정의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업가 정신을 실천하는 이들은 다름 아닌 예술가들이다.
한 연극인은 3년간 준비한 작품을 위해 자신의 전세금을 투자한다. 한 무용가는 10년 동안 월세를 겨우 내며 자신의 움직임 언어를 개발한다. 한 음악가는 생계를 위한 아르바이트와 새벽 연습을 병행하며 앨범 작업을 이어간다. 그들에게는 담보가 없다. 성공을 보장하는 시장조사도 없다. 투자 회수 계획도 불확실하다. 오직 자신의 예술적 비전만을 믿고, 인생이라는 자본 전체를 베팅한다.
반면 행정은 어떨까? 공무원은 정년이 보장되고, 공공기관은 예산이 책정되며, 문화재단은 안정적인 재원으로 운영된다. 그들이 내리는 결정은 대부분 검증된 절차를 따르고, 실패의 책임은 시스템 속에서 분산된다. 혁신적인 시도보다는 무난한 선택이, 모험적인 투자보다는 안전한 배분이 선호된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공공행정의 속성이 원래 그렇다. 다만, 이런 행정이 예술가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행정이 예술에 접근할 때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있다. 수익이 나나요? 자립도가 얼마나 되나요?티켓 판매는 몇 프로를 목표로 하나요? 이 질문들 이면에는 명확한 전제가 깔려 있다. '수익이 나야 지속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보조금 지원의 부담을 덜고 싶다는, 어쩌면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전제를 기초예술에 적용하는 순간, 심각한 오류가 발생한다. 기초예술이란 본질적으로 시장논리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험적인 현대무용 공연이 대형 뮤지컬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을까? 새로운 형식을 탐구하는 소규모 연극이 상업영화와 경쟁할 수 있을까? 동시대 음악 작곡가가 대중가요 작곡가만큼 벌 수 있을요?
답은 명백하다.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들 기초예술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것일까? 사라져야 마땅한 것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기초예술은 문화 생태계의 토양이다. 대중문화가 꽃이라면, 기초예술은 뿌리다. 오늘날 K-콘텐츠의 창의성은 어디서 왔을까? 수십 년간 실험을 거듭해온 독립영화, 소극장 연극, 인디 음악의 축적된 자산에서 온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기초예술이 창출하는 가치는 수익으로 환산되지 않는다. 새로운 언어의 발견, 감각의 확장, 사회적 상상력의 갱신, 인간 조건에 대한 성찰, 이런 것들을 어떻게 손익계산서에 적을 수 있을까? 엔니오 모리코네의 영화음악이 우리 내면 풍경에 미친 영향을,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가 디지털 시대를 예견한 통찰을, 피나 바우슈의 무용이 몸의 언어를 재정의한 혁명을 어떤 숫자로 측정할 수 있을까?
진짜 투자, 진짜 지속가능성

예술가의 투자는 돈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한 조각가는 이렇게 말했다. . 저는 제 20대를 전부 이 작업에 썼습니다. 제 30대도 여기 있습니다. 아마 40대도 그럴 겁니다. 예술가가 하는 진짜 투자는 시간이라는 자본입니다. 인생이라는, 단 한 번뿐인 유한한 자원을 자신의 창작에 던지는 것입니다.
한 연출가는 10년간 단 세 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그 10년 동안 그는 배달 일을 하고, 학원 강사를 하고, 번역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동시에 매일 새벽 두 시간씩 자신의 연극 언어를 연구했다. 수백 권의 책을 읽고, 수십 편의 공연을 보고, 수없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다. 그의 세 번째 작품은 마침내 국제 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하지만 그가 받은 초청료는 10년간 그가 투자한 시간의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한다. 왜일까? 바로 여기에 예술의 진짜 지속가능성이 있다. 그것은 수익이 아니라, 예술가가 자신의 삶을 얼마나 오래 투자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무엇일까? 최소한의 생활 기반이다. 창작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실패를 감수할 수 있는 심리적 안전망이다. 그리고 자신의 작업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다.
전환: 좋은 경영, 좋은 행정이란?

기초예술을 만난 경영은 어떠해야 할까? 그 경영을 지원하는 행정은 무엇을 해야 할까?
먼저, 경영은 새로운 측정 도구를 개발해야 한다. 티켓 판매율과 자립도만으로는 예술의 가치를 포착할 수 없다. 한 작품이 몇 명의 젊은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었는가, 어떤 새로운 표현 방식을 실험했는가, 어떤 사회적 질문을 던졌는가, 이런 질적 지표들이 필요하다. 물론 측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측정하기 어렵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경영은 시간의 논리를 바꿔야 한다. 1년 단위 지원, 3년 단위 평가 같은 단기 시간표는 기초예술의 리듬과 맞지 않다. 한 예술가가 자신의 언어를 찾는 데는 때로 10년이 걸린다. 한 장르가 성숙하는 데는 한 세대가 필요하다. 장기적 관점의 인내심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
경영은 실패를 재정의해야 한다. 실험적 시도의 90%는 실패한다. 하지만 그 실패 속에서 10%의 혁신이 나온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시스템에서는 혁신도 불가능하다. "실패했으니 다음 지원에서 제외"가 아니라 "실패에서 무엇을 배웠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리고 행정은 진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예술에 기업가 정신을 요구하는 행정 자신이 가장 보수적이고 관료적이다. 행정이야말로 모험을 감수해야 한다. 검증되지 않은 신진 예술가에게 투자하는 모험, 실패할 수 있는 실험을 지원하는 모험, 단기 성과 대신 장기 가치를 선택하는 모험, 수치화할 수 없는 것의 중요성을 인정하는 모험을 말이다.
좋은 행정이란 예술가를 기업가로 만들려는 행정이 아니다. 예술가가 예술가로 남으면서도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그 존재 자체에 투자하는 행정이다.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탐구했는가를 묻는 행정입니다. 몇 명이 봤는가가 아니라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가를 보는 행정입니다.
우리가 선택할 사회는 결국 이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의 문제이다. 모든 것이 즉각적인 수익성으로 정당화되어야 하는 사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측정 불가능하지만 본질적인 가치들이 존중받는 사회를 원하는가?
기초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을 "보조금"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것은 시혜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시혜가 아니다. 필수적 투자다. 공동체가 자신의 상상력을 유지하고, 감수성을 보존하고, 미래를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투자다.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가 당장의 수익 없이도 정당화되듯, 기초예술에 대한 투자도 그 자체로 정당하다.
전환의 시대다. 기후위기, 기술혁명, 사회 양극화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상상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 상상력은 어디서 올까? 효율성과 수익성의 논리를 따르는 곳에서는 오지 않는다. 그것은 비효율적이고, 느리고, 때로 쓸모없어 보이는 예술적 실험의 축적에서 온다.
행정이 예술에게 기업가 정신을 요구하는 대신, 행정 자신이 진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때다. 예술가들은 이미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있다. 이제 행정이 그들의 모험에 함께할 용기를 가질 차례다. 숫자로 증명할 수 없는 가치에 투자하는 것, 당장의 성과 대신 긴 시간을 기다리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 이것이야말로 진짜 기업가 정신이 아니겠는가?
오늘도 사람으로 사람들과 사는 날 말랑말랑한 뇌와 관점의 감성으로 전등이 등불을 전한다.
밴드
URL복사
#조선규칼럼#예술지원#예술보조금#예술에투자하라#예술행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