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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326] 조광호의 "차마고도"

이승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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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

 

조광호

 

우습게 생각하고 따라나선 차마고도

비탈길 오를 자신 없는 사람은

나귀를 타라고 했다

 

부끄럽지만 나이 생각해 나귀를 탔다

천 길 낭떠러지 외길을

작은 나귀가 나를 싣고

가파른 고개를 오른다

 

갈퀴가 땀으로 흠뻑 젖어

숨을 몰아쉬는 나귀

잘못 내리다가는

절벽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다

내릴 수도 탈 수도 없는 난처함

가파른 천 길 낭떠러지 비탈길에서

뻘뻘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던 나귀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힐끗 뒤로 나를 쳐다본다

 

차마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차마고도

인간으로의 죄송함과 수치심으로

나귀 위에서

목숨을 부지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게 없음을 깨닫는다

 

—『흐름 위에서』(파람북, 2025)  

차마고도 _ 조광호 신부 [이미지:류우강 기자]

[해설]

 

  나귀야 얼마나 힘들었니?

 

  나귀는 어쩜 저렇게 착하고 순하게 생겼을까. 귀가 길고 다리가 짧으며 꼬리 끝부분의 털이 길다. 작은 체격에 비해 힘이 세고 지구력이 강해 낙타처럼 사람이나 짐을 싣고 이동하는 데 이용된다. 말보다 느리고 안전한 동물로서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다.

 

  고지대에 있는데 가파르고 좁은 길이 이어지는 차마고도.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하던 것에서 시작되었기에 명칭이 茶馬古道가 되었다. 실크로드보다 200년이 앞서 형성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역로다. 중국 서남부의 운남성 사천에서 시작해 티베트를 거쳐 히말라야를 넘어 네팔과 인도까지 이어지는 5,000km의 장대한 길인데 조광호 신부님은 이 중 몇 km를 갔을까. 여행자로서 그 길을 가는데 나귀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다. 나귀는 몇 km를 신부님을 태우고 갔을까.

 

  “가파른 천 길 낭떠러지 비탈길에서/ 뻘뻘 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던 나귀가/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힐끗 뒤로 나를 쳐다본다에 이르러 가슴이 쿵 내려앉는 것이었다. 아아 불쌍한 나귀야, 많이 힘들지? 신부님 몸이 좀 무거우셔. 힘들어도 용감하게 목적지까지 잘 모시고 가다오. 한국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다수 만드신 국보급 미술가란다. 나귀야, 그리고 죽을 때까지 아프면 안 된다.

 

  [조광호 신부]

 

  1947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나 1977년 가톨릭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한 후 197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인천가톨릭 조형예술대학을 정년퇴임한 뒤 동검도 채플을 설립했다. 독일 뉘른베르크 대학과 같은 대학원에서 미술 공부를 해 1982년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40여 차례 개인전을 가진 바 있으며, 여러 단체전에도 참여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드물게 재료와 장르를 넘나들며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메시지를 회화, 판화, 이콘화, 유리화, 조각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해왔다. 부산 주교좌 남천성당, 대구 주교좌 범어동성당, 부평4동성당, 구 서울역 로비, 숙명여대, 서강대, 카이스트 등 국내외 40여 곳에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했다. 서소문 성지 순교자탑, 강화 무명순교자탑, 당산철교 대형 벽화 등 청동조각상과 대형 조형작품도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이승하 시인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윤동주-청춘의 별을 헤다』『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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