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호 에세이] 그리기, 그 슬프고도 아름다운 '핵융합'

머리가 아닌, 가슴이 시키는 일
지적 능력에도 온도가 있다면, 그림을 그리는 능력은 차가운 지성(IQ)보다는 뜨거운 감성(EQ)에 훨씬 가까이 닿아 있습니다. 캔버스는 논리와 계산이 지배하는 수학판이 아닙니다. 본능이 꿈틀대고, 재료들이 서로 속삭이며, 화가는 그 대화를 거드는 '산파'가 되는 곳입니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는 예술 창작을 몰입(Flow)의 대표적 사례로 꼽았습니다. 그는 수십 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화가들이 붓을 잡는 순간 자의식이 사라지고 시간 감각을 잃으며 순수한 행위 자체에 흡수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것은 분석이 아니라 체험이고, 계산이 아니라 감각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미술은 너무나 '똑똑해졌습니다'. 조형 언어의 실험은 사실상 끝났고, 남은 것은 영리한 상업적 포장뿐입니다. 화가들은 저마다 개성을 외치지만, 결국 서로를 닮아가며 유행이라는 거대한 수조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떼가 되었습니다.

'핵분열'의 시대, 독극물이 된 예술
나는 지금의 미술계를 보며 문득 '핵발전소'를 떠올립니다. 아주 적은 자극으로도 세상을 뒤흔드는 힘. 인상파 이후 현대 미술은 가히 '정신계의 핵폭발'이었습니다. 세잔에서 피카소로, 뒤샹에서 워홀로 이어지는 흐름은 기존의 모든 조형 문법을 해체했고, 그 충격파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미술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폭발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습니까. 자유라는 이름으로 뿌려진 방종과 자기파괴. 그것은 예술가들이 스스로를 실험용 쥐로 내던지며 만들어낸 '방사능 낙진'이었습니다. 앤디 워홀의 팩토리(Factory)는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지웠고, 바스키아는 천재성과 자기파멸을 동시에 불살랐습니다. 비평가들의 화려한 언어유희로 포장된 텅 빈 캔버스들—이것은 창조가 아니라 파괴적인 '핵분열'입니다.
실제로 미국의 예술경영 연구자 윌리엄 베인브리지(William Bainbridge)의 조사에 따르면, 현대 미술 시장의 상위 1%가 전체 거래액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나머지 99%의 예술가들은 만성적 경제적 불안정 속에 놓여 있습니다. 시장은 예술을 선별하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브랜드화된 이름값과 투기 자본이 선택권을 쥐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폭발하는 전쟁광이 되기를 멈추어야 합니다. 대신, 내면의 1억 도가 넘는 고독을 견디며 스스로 빛을 내는 별처럼, '핵융합'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상처를 전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봉합하고 치유하는 에너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불가리아의 환희, 그리고 아내의 빈자리
진정한 핵융합, 그 뜨거운 예술적 체험은 어디서 오는가. 나는 문득 지난날 불가리아 여행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지휘자 이영칠의 초대로 날아간 소피아. 그곳에서 나는 꿈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국립미술관의 환대, 바흐의 선율이 가슴을 후벼 파던 플로브디프의 밤, 그리고 매일 식탁에 오르던 신선한 숍스카 샐러드와 향긋한 올리브유…. 모스크바 공항에서 맛본 진한 보르시와 스쳐 지나던 러시아 미녀들의 웃음소리까지, 모든 감각이 살아 숨쉬는 예술이었습니다.
그 충만한 행복을 안고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아내에게 자랑스레 떠들었습니다.
"짱구야, 정말 신나는 여행이었어! 세상에 그런 곳이 없더라."
아내는 내 들뜬 목소리를 들으며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러다 조용히, 아주 낮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 몫으로 나온 내 비행기 표는 어떻게 했어?"
아차,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국세 미납으로 출국 금지를 당해 공항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아내. 나는 그 아픈 상처를 "그냥 돌려보냈지"라는 무심한 말 한마디로 덮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가버렸습니다.
부엌으로 향하던 아내의 쓸쓸한 뒷모습.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불가리아에서 느낀 그 모든 환희와 예술적 감동이, 실은 가장 가까운 사람의 희생과 고통 위에 서 있었다는 것을.

붓은 사과(謝過)이자, 구원의 도구
진정한 그림은 상업적 성공이나 화려한 브랜딩에 있지 않습니다. 인테리어 소품처럼 벽에 걸려 눈요기나 하는 장식품도 아닙니다.
그리기(Drawing)는 타인에 대한 봉사 이전에, 나 자신의 비겁함과 못남을 마주하는 거울이어야 합니다. 내 안의 1억 도짜리 부끄러움을 견디며, 아내의 뒷모습 같은 타인의 슬픔을 끌어안는 '융합'의 과정이어야 합니다.
나는 오늘도 붓을 듭니다. 이것은 갤러리에 걸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나의 이기심을 참회하고, 고단한 삶을 지탱해 준 당신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나의 유일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기는,
비로소 내가 당신의 진정한 '한편'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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