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해설] 나희덕의 "존엄한 퇴거"
[이승하의 하루에 시 한 편을 52]
존엄한 퇴거
나희덕
2014년 10월 29일
기초생활수급자였던 최씨는
서울 장안동 다세대주택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되었다*
10월 말까지 집을 비워달라는 주인의 요청에
그는 퇴거신고를 하고 스스로 68년의 삶을 정리했다
함께 살던 어머니는 지난 3월에 돌아가셨고
그를 거둘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28일 이사, 29일 가스'라는 메모가 적힌 달력,
마지막 전기요금 고지서 위에 놓인 오만 원짜리 지폐,
봉투에는 백만 원 남짓한 장례비용이 들어 있었다
만 원짜리 열 장이 들어 있는 다른 봉투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
자신의 주검을 거두는 이들을 위한 밥값이었다
개의치 마시고, 라는 여섯 글자는
주름진 손을 가만히 내저으며 말을 건넨다
가난하지만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으로
모르는 이에게도 예의를 갖추려는 표정으로
개의치 마시고, 그러나
사람들은 차마 유언대로 국밥을 먹지는 못했을 것이다
주택공사에서 빌린 전세금을 제하고 나면
더 이상의 재산도 빚도 남지 않았다
완벽한 영점으로 돌아가는 것, 존엄한 퇴거였다
그의 집 앞에 매일 하나씩 놓여 있었다던 소주병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외롭고 쓸쓸한 마지막 편지」, 《시사IN》 374호, 2014. 11. 14.
―『시와 물질』(문학동네, 2025)

[해설]
또 한 명의 외로운 이가
인간은 때가 되면 혼자 가는 것이다.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임종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데 장례식장에 와줄 사람조차 없는 경우는 특별히 ‘고독사’라고 한다. 나희덕 시인은 최씨라는 이를 2014년 11월 14일자 《시사IN》의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해 10월 29일에 서울 장안동 다세대주택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된 기초생활수급자이다.
스스로 68년의 삶을 정리했다고 하니 자살한 것이다. 주인의 집을 비워달라는 요청에 응할 방법이 없었나 보다. 그런데 최씨는 염치를 아는 분이었다. 전기요금 고지서 위에는 오만원짜리 지폐를 놓고, 봉투에는 장례 비용에 필요한 백만원 남짓한 돈을 넣고, 또 다른 봉투에는 만원짜리 열 장을 봉투에 넣고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라고 써놓았다. 자기 시체를 처리해줄 이들의 수고가 마음에 걸려 밥값을 따로 챙겨놓고 숨을 거둔 것이다.
언론에서도 종종 쓰는 용어가 독거노인, 1인가구, 고독사, 혼밥 같은 것들이다. 65세 노령인구가 1천만이라는데 65세 이상 1인가구 수가 220만이라고 한다. 220만이 고독사의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 시의 최씨 노인은 참으로 깔끔한 분으로,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나 보다. 그도 어느 여성을 사랑했으리라. 친구들과 노래방에도 갔으리라.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성적표, 영장, 합격통지서 같은 것을 받았으리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하늘 아래 단독자로 남아서 외로움에 시달렸을 것이다. 집에서 나가라고 하는데 돈이 없으니 갈 데가 없다. 돈을 다 긁어 시체 치워줄 사람에게 수고비 조로 챙겨놓고 간 이의 사정이 안타깝다. 그런데 내 죽음도 최씨의 죽음과 크게 다를 리 없을 것이다. 우리 각자 그날이 오면 다 남겨놓고 가야 하는 것이다. 존엄한 퇴거를 하신 최씨가 태어났을 때, 어머니는 미역국을 드셨으리라.
[나희덕 시인]
1966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뿌리에게」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김수영문학상, 김달진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지훈문학상, 임화예술문학상, 미당문학상, 고산문학대상, 백석문학상, 영랑시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야생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파일명 서정시』『가능주의자』『시와 물질』, 시론집 『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한 접시의 시』『문명의 바깥으로』, 산문집 『반통의 물』『저 불빛들을 기억해』『한 걸음씩 걸어서 거기 도착하려네』『예술의 주름들』 등이 있다.
이승하 시인,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우리들의 유토피아』『욥의 슬픔을 아시나요』『생명에서 물건으로』『나무 앞에서의 기도』『생애를 낭송하다』『예수ㆍ폭력』『사람 사막』 등
평전 『청춘의 별을 헤다-윤동주』『최초의 신부 김대건』『마지막 선비 최익현』『진정한 자유인 공초 오상순』
지훈상, 시와시학상, 편운상, 가톨릭문학상, 유심작품상, 서울시문화상 등 수상
코리아아트뉴스 전문위원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